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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문화혁명> (7)영상물과 게임,새로운‘서사(敍事)의 틀‘ 만든다 |
작가-향유자 따로없는 '무한창작시대'이 세상 온갖 종류의 이야기(敍事·내러티브)들은 그 이야기의 구조가 있고,생성되고 전파되는 방식 상에 일련의 공통분모 또는 심층구조가 존재한다. 즉 이야기 안에는 그것을 지탱해 주는 요소인 사건-행위들이 있고,그것을 일으키는 인물들이 존재한다.그리고 당연히 사건과 인물은 시·공간적 배경을 벗어날수 없다. 이같은 ‘이야기 구성의 3요소’는 작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들을 배열하고,그것이 인과관계의 고리로 이어지도록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며,단일한 결말로 인도한다. 그렇다면 영화가 됐건 소설이 됐건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은 창작자→작품→독자로 이어지는 창작과 수용의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이제는 컴퓨터와 통신의 결합을 통한 전혀 새로운 멀티미디어 매체의 등장이 서사 패러다임 요소들의 틀을 파괴하거나,기존의 매체자체의 폐쇄성을 벗어 던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것은 새로운 매체가 주는 다양한 개방성과 유연성에 기초하고 있다.이러한 성격은 이제까지 개별쟝르들이 견지해 왔거나,자체 독립성의 근간을 이루어 왔던 요소들(틀)간의 가로지르기를 가능케 하면서 상호간에 대해 근본적인 변혁을 요구한다. 특히 서사 쟝르에 있어서는 이야기의 생산과 유통,수용에서의 양방향성이 가능해져서 그 파급 효과의 잠재력은 가히 위력적이다. 예컨대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묘미는 게이머를 다중(多重) 결말에 참여시키고,매체 운용 기술에 따라 난이도를 달리하거나,서로 다른 사건으로부터 서사를 출발할 수 있도록 하며,얼마든지 다른 지점-사건에서 서사가 매듭(Game Over)될 수 있도록 변화를 주기도 하고,두사람 혹은 그 이상이 서로 편을 나누어 경쟁을 할 수도 있는 개방성과 다양성에 기초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문자와 음영서사(음향과 영상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하는 방식)영역에서 상호 결합을 시도하면서 제3의 쟝르배태 가능성을 엿보거나,새로운 이야기하기 형태를 실험하는 단계를 거쳐 눈부신 발전과 변모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디지털 6mm 카메라로 찍어 인터넷을 통해 개봉했던 조영호 감독의 영화 ’영호프의 하루’(네오무비 제작)는 인터렉티브 무비의 효시로 기네스북에 오르기까지 했다.세 단계에 걸쳐 서사의 줄기를 관객이 임의로 선택할 수 있고,이를 통해 총 8개의 에피소드를 만날 수 있는 이 이야기는 그 완성도에 대한 평가 이전에 매체의 개방성을 인식하고 이를 이용,관객을 서사의 진전과 완성에 참여시킨 첫 번째 사례로 높이 평가해 줄 만하다. 조 감독은 현재 신작 ‘밀레니엄 살인 행진곡’을 역시 인터넷을 통해 순차적으로 개봉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나 완성도,관객을 만나는 방식 등 모든면에서 상당 수준에 올라와 있다. 아직은 시도되지 않고 있지만 수행 가능한 새로운 인터렉티브 서사형태로는 작가가 도입부의 사건과 상황설정,인물의 성격등을 문자적으로 제시하고 이후의 전개과정을 독자와 함께 풀어가며 수백-수천의 에피소드를 만들어가는 이야기하기 방식과 이를 다시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 공모를 통해 후속 상황을 이끌어 가고 영상화할 연출자를 선정,장비와 인력을 제공하며,완성된 영상물의 판권을 확보하는 등의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선 시나리오 자동 작성 컴퓨터 프로그램이 이미 개발,출시되어 있다.이젠 작가와 독자(관객)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누가 진정한 작가인가’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디지털 게임의 영역으로 관심을 확대해 보면 서사의 새로운 지평을 보다 확연히 발견할 수 있다.지난 96년 개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머드게임 ‘삼국지’는 대서사문학을 게임화하였다는 것 뿐만 아니라 방대한 양의 정보와 백과 사전적 지식을 프로그램 안에 담을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주목되었다. 이는 현재 2시간 내외의 길이로 제작되는 영화,애니메이션 등 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다량의 정보 수용이 게임 서사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현재 시중에 출시되어 있는 유형들을 보면,우선 한 게임 공간에 몇 명의 게이머가 참여하여 개인간 실력을 겨루는 ‘네트웍 게임’이 있다. 그러나 이 게임의 최대 단점은 한번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의 제한을 받는다는 것이다.반면에 ‘온라인 게임’은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참여할 수 있고,게이머들이 게임의 환경하에서 자기 캐릭터를 키우며 타인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스토리 진행을 따라가며 후속 사건을 맞이하기 위해 꼭 풀어야 하는 퀘스트 이벤트 위주로 게임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3D그래픽 게임들,여러 게임의 특장을 모아 제작되는 퓨전 형태들도 최근 출시되는 등 현재 40∼50여종의 각종 온라인 게임들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이들 온라인 게임은 그동안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논란거리였던 게임 소프트웨어의 불법복제문제가 원천적으로 제기될 수 없는 장점과 함께 현재 국내에 폭넓게 퍼져 있는 인터넷 게임방과 개인 컴퓨터의 전폭적인 보급이라는 사회적 인프라를 배경으로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갖춘 영상 분야이다.이제는 정부에서도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어 더욱 기대되고 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역량을 갖춘 좋은 ‘게임서사디자이너’와 전문 기획자를 육성하는 것 또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또 다른 서사방식으로서의 오페라에서도 첨단 테크놀로지와 무대 예술의 결합을 통해 전달과 수용의 매커니즘에 일대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98년 미국에서 선보인 디지털오페라 ‘몬스터 오브 그레이스(Monster of Grace)’(필립 글라스 작곡,로버트 윌슨 연출)는 75분의 공연 내내 3D 그래픽 영상이 스크린에 투사되며 음악이 연주되었고,배우(가수)는 한 명도 출연하지 않았다. 실질적인 사건을 추동해가는 인물이 무대에서 사라지고 대신 환상적 가상 세계의 영상이 이를 대신하는 체험은 많은 이들에게 미래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된 것이었다. 이처럼 급속히 변모하는 디지털 멀티미디어 매체 환경이 열어 놓을 엔터테인먼트의 결정판은 가상현실로 집약될 것이다. 그것은 이야기 읽기,듣기,보기라는 수동적 경험으로서의 서사 수용 문화가 ‘능동적 참여’로 바뀌어 가다가 가상 현실에 오면 ‘전폭적인 활동’으로 귀착되는 것에 다름아니다.이러한 기술적 진보도 그러려니와 이에 따른 사회적 파장과우리의 삶의 모습에 끼칠 파급력에 대한 존재론-인식론적 성찰,아울러 윤리교육 등이 함께 고려되면서 급변하는 미래에 대한 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서정남 동국대 교수·영화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