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탐구 디지털 문화혁명>
(11)인터넷시대의 역사적 의미
인터넷의 화두는 인간해방


인류가 막 페이지를 넘긴 20세기는 혁명의 시대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마르크스주의가있었다. 산업혁명으로 새롭게 탄생한 자본주의를 유지 발전시킬 것인가, 아니면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혁명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 지난 20세기를관통하는 인류사회의 주제였다.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사회주의권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1989년 동구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1990년 소련이 붕괴됐다. 그것이 마르크스주의 자체의 종언은 아닐지라도, 한 세기를 풍미했던 현실의 사회주의 실험은 일단 실패했다.

그리고 곧 이어 신자유주의의 시장원리에 기초한 ’세계화’의 물결이 전세계를 휩쓸었다. 디지털혁명과 그 대표적 표상으로서의 인터넷 또한 바로 그 시기에 폭발적으로 확산됐다.지금은 누구나 사용하는 WWW(월드 와이드 웹)가 1991년에 만들어졌고, 1993년에는 WWW 홈페이지를 보여주는 검색 소프트웨어 ’모자이크’가 공개됐다.

그리고 그것은 곧 ’넷스케이프’로 발전되어 인터넷의 확산에 불을 질렀다.1993년 전세계적으로 인터넷홈페이지는 불과 130개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나,지금은 세계적으로 인터넷 사용자가 1억명을 넘어선지 오래며 조만간 인터넷 주소의 수가 세계 인구수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이처럼 20세기 마지막 10년간의 인터넷 확산시기는 거의 정확하게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세계화과정과 일치한다. 이 시기 미국은 유례없는 호황을 지속하면서,지금미국의 자본주의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따라서 디지털혁명에 수반된 인터넷의 확산은 곧 미국화된 세계화의 관철과정으로서, 그것은 민족개념도 희석시키고 국가경제도 허물어 버리는 그야말로 가진 자, 힘센 자만이 승리하는 자본주의 모순의 정점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을 것이다.

역사에는 전성기도 있으며 변동기도 있다. 변동기는 이전 시대의 찌꺼기와 다가올 시대의새로움이 혼재하는 시기이다. 지금이 디지털혁명의 시대라면 무엇이 찌꺼기이며 무엇이 새로움인가?
지난 10년간의 표피적인 현상처럼 과연 신자유주의의 세계화과정과 인터넷은 그 성격을 같이하는 동반자일까, 아니면 하나는 찌꺼기이고 하나는 새로움으로 보아야 할까? 그것을 판별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도대체 인터넷의 확산을 가져온 동인(動因)이 무엇인가를 찾는 일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인터넷이라는 용어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인터와 네트워크의 합성어라 할 수 있는 인터넷은 그야말로 정보통신상의 망을 통하여 세계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을 자유자재로 연결하고 있다.

흔히 인터넷시대의 키워드라고 말하는 인터랙티브와 커뮤니티 또한 자못 의미심장하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단선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쌍방향의 특징과 다같이 알고 다같이 누리는 인터넷의 특징은 사실상 인류사의 전혀 새로운 경험이다.

’정보화’의 본질은 결코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산더미처럼 쌓인 정보의 엄청난물량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물량적인 측면보다는 어떠한 정보이든 누구나 쉽게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정보화의 진정한 본질이다.

결국 모두가 ’연결’되어 ’하나’가 되면서 정보 그리고 그것이 더 발전하여 의식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인터넷이 구현해 낼 수 있는 이 시대의 현실이요 희망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대중민주주의의 구체적인 실현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본주의체제를 완전히 바꾸고자 했던 마르크스주의의 현실적인 실험은 실패했다.

그러나 소수가 다수를 자본의 방식으로 불공평하게 지배하는 것을 시정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주의나 아니면 같은 자본주의 안에서의 시도일지라도 자본주의의 모순을 완화하고자 했던 많은 사람들의 개혁적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한 세기에 걸친 모진 갈등 끝에 이제 소수의 독점자를 무력화시키고 진정한 다수의 시대가 될 수 있는 형식적 그릇 곧 인터넷이 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디지털과 인터넷의 출현 또한 단순한 기술의 발전사로 보아서는 안된다. 그것은다수의 시대, 참다운 대중민주주의를 실현해야겠다는 대중의 결집된 열망이 사회적 동인이 되어 촉발된 기술사적 조응인 것이다.

왜 오늘날의 정보통신상의 발전과정이 필연적으로 디지털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는가? 그것은 기존의 아나로그방식으로는 다수·대중을 구현할 수없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10년간의 인터넷역사를 추적해 보면 독점·소수·단선의 입장에선 프로젝트나 기업은 몰락하였고, 공개·다수·공유·쌍방향의 입장에 선 것은 무한정 발전하였다는 것을 극명히 증명하고 있다.

’독점’이라는 것은 이 시대의 지향과는 어긋나는 정서요 행동양식이다.그런 의미에서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반독점법에 걸린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독점법·반상속법 등의법률 개정 또한 시대의 요구이다.

그러나 MS사의 최대위기는 이러한 반독점법 소송 차원이 아니다.MS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OSS)를 추구하는리눅스나 아파치이다.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이는 MS사도 열림·다수·공개의 가치관을 거부하면 조만간 몰락하고 말 것이다.이 시대 인터넷 열풍의 궁극적 승자는 기업과 산업이 아니라 인터넷 자체와 그 사용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혁명의 의미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지난 한 세기동안 ’낡은 형식’(독점 자본주의)과 치열하게 투쟁해 온 ’새로운 내용’(소수에서 다수로의 의미부여)이 마침내 자신의 뜻을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디지털방식과 인터넷)을 창출한 것이다.

물론 한동안은 전환기의 부작용으로 ’낡은 내용(소수·독점·일방적)’이 ’새로운 형식’을 교란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형식’의 본질을 미처 깨닫지 못할 수도 있겠다.

여기에서 한 가지를 유념해 두자. 인터넷은 과거와는 달리 새로운 내용을 담을 수 있는매우 유용한 도구이지만, 그것이 결코 모든 문제를 저절로 해결해주는 만능상자는 아니라는점이다. 인터넷은 하나의 좋은 그릇일 뿐이다.거기에 올바른 내용을 담는 것은 전적으로 지금 우리들의 몫이다.

이케다 노부오가 ’인터넷 자본주의혁명’에서 잘 갈파하고 있듯이,인터넷이 유행하는 지금의 시대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변화할 자본주의의 모습으로 미리 그려놓은 상황과 대단히 유사하다. 사실상 인터넷의 화두 ’공유·다수·쌍방향’은 마르크스의 화두 ’인간해방’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인터넷이라는 좋은 도구에 올바른 내용을 채움으로써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감에 있어, 그 주역은 자본가나 대박을 꿈꾸는 벤처기업이 아니라 그 동안 ’인간화·인간해방’을 위해 노력해온 사람들의 몫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개혁가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인터넷의 논리와 활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피와 고통이 수반되는 지난날 사회주의혁명과 같은 폭력적 형태가 아니라, 평화로운 방법으로 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는 방법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의 깨달음이나 노자의 도, 주역 그리고 더 나아가 무속의 굿이나 심지어 사주학·풍수에 이르기까지, 동양사상의 핵심은 ’관계’에 있다.인터넷의 핵심 역시 ’관계’이다.어쩌면 인터넷에 접속되어 있는 동안 인류는 지구 더 나아가 우주라는 선방(禪房)에서 관계를 화두로 하여 현대판 참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올바른 내용을 갖고 인터넷에 익숙해진다면 개인이나 사회 모두 ’열림·다수·나눔·공생’이라는 현대판 도의 깨달음에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김기덕 건국대 강사·역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