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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문화혁명> (16)만화는 멀티미디어 언어의 뿌리-디지털시대 만화의 새로운 의미 |
‘미스터 펀치’(원제는 ‘미스터 펀치의 비극적 희극 또는 희극적 비극’)는 1994년 영국의 닐 가이먼이 스토리를 쓰고 데이브 맥킨이 ‘멀티미디어식으로’ 그림을 그려 탄생한 그래픽 노벨(그림소설)이다.그래픽 노벨이란 본격적 문예작품처럼 길이가 길고 작품성이 있는 만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만화의 줄거리는 영국의 몰락한 장사꾼이자 인형극 흥행사인 한 노인의 생애와 그가 공연하는 ‘펀치와 쥬디’인형극의 내용 사이를 오가며 그 노인의 손자인 1인칭 화자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그러는 가운데 가족사의 비밀스럽고 어두운 과거가 점차 드러나는 것인데,만화식 드로잉과 회화,사진 영상,꼴라쥬,컴퓨터그래픽,인쇄 서체,손글씨 등의 효과가 시원하게 지면을 가로지르거나 농밀하게 교차하면서 이야기의 심리적 밀도를 살려내고 있다.매킨의 작업에서 멀티미디어적 표현기법은 독자를 심리적 여행 속으로 끌어 들이는 일종의 시각적 사운드트랙 역할을 한다.데이브 맥킨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음악은 최고의 추상언어다.그것은 직접적으로 파고들며,어떠한 여과작용도 없다.누구도 음악을 읽거나 해석할 필요가 없다.단지 듣기만해도 음악은 직접적으로 깊이 들어오는 것이다.만화의 중요한 단점의 하나는 사운드가 없다는 점이다.시각적 사운드트랙을 만들려는 것,이것이 나의 창작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도전이다.” 영화적 이미지와 음악은 실제로 데이브 맥킨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감성적’기반이다.이 점은 그가 버크셔예술디자인대학에서 디자인,일러스트레이션,영화를 전공했던 배경과도 관련된다. 멀티미디어적 감수성의 작가인 그는 지금 컴퓨터를 사용한 인터랙티브 그래픽 노벨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만화의 세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활짝 열어가고 있는 중이다.‘미스터 펀치’와 ‘거울’이 이미 인터랙티브 그래픽 노벨로 제작되었고,타임 워너 인터내셔널 웹 사이트의 디지털 스토리 감독으로서 디자인,일러스트레이션,애니메이션 제작에 간여하고 있는 중이다. 크리스 웨어는 올해 33살의 미국만화가다.그는 1993년부터 ‘애크미 노벨티 라이브러리’(‘최고 진귀품 도서관’이란 뜻)라는 이름으로 몇가지 연작 연작만화들을 출간해왔다.이 만화들은 이제까지의 만화의 서사 컨벤션을 가장 급진적이고도 도전적으로 재정의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가운데 중심 작품인 ‘지미 코리건-세상에서 제일 착한 아이’연작은 어렸을 적 이혼한 부모로부터 거의 버림받은 채 홀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조용하고 비사교적인 성격의 중년 독신자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다.이 만화에는 이렇다 할 스토리상의 기복이 없다.단지 일상적인 작고도 사소한 이야기들,시간과 시간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작은 순간들과 심리의 흐름 등을 위주로 하고 있다. 스토리의 순서를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전통적인 이야기의 구성 전략으로서의 플롯의 개념까지도 벗어나 있다.한 마디로 말해 그냥 끝이 없는 이야기,시작도 없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야기,어디에나 입구가 있고 그 출구도 어디에나 무수히 많이 존재하는 그런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독자들은 단일한 시간 순서가 아니라 비연속적,비순차적으로 제시되는 시각적 힌트들을 따라가면서 과거와 현재,회상과 현실,실재와 픽션 사이를 가로지르며 여행한다.‘웨어적 언어’속으로의 여행은 하이퍼텍스트 속에서의 비순차적 여행과 매우 닮아 있다. 인간의 연상작용과 비슷한 비순차적(non-sequential) 정보여행인 하이퍼텍스트에서 한 노드에서 다른 노드로 이르는 길이 다수로 존재한다.웨어는 자신의 만화의 구석구석에 그 하이퍼텍스트로 통하는 ‘연상’의 통로들을 무수히 많이 숨겨 놓았다. 만화가 그 복합적 구조 때문에 멀티미디어의 기반구조가 된다는 논리를 우리는 웨어의 만화에 이르러 비로서 이해하게 된다. 만화는 ‘뜻의 그림’이자 ‘이야기의 그림’이다.모든 그림의 매혹의 비밀은 이야기에 있다.이야기 없이 그림은 태어나지 않는다.만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미술사,종교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죽음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마법이고 아니마(anima)라면,모든 이야기,모든 그림의 핵심은 마법이다.형상과 이야기는 하나로 합쳐지고 서로 작용함으로써만 생명을 얻는다.이것이 세계의 비밀이자,모든 종교,모든 문화예술의 비밀이다.단지 정신적·상징문화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다.실용문화적 차원에서도 그러하다. 계몽주의자들의 백과전서 출간이 말해주듯이 근대 이래로 말과 그림의 결합은 지식의 전달이나 기술의 습득에서도 대단히 효율적임이 증명되었다.그림과 말의 상호 작용하는 역학 관계가 없는 어떤 문명도,종교·예술도 그리고 지식·기술도 이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그림과 말의 상호 결합이 낳는 힘의 핵심은 이처럼 ‘사로잡는 것’과 ‘잘 알게 해주는 것’에 있다.‘보여주며 말하기’는 모든 예술,모든 지식의 가장 강력하면서도 우월한 형태다.멀티미디어의 핵심도 바로 이것이다. 만화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표현 형식이면서 또한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적 소통형식의 기본 특징과 비밀을 가장 많이 함축한 언어 형식이자 문화 형식이다.만화는 광고,출판,교육,디자인,패션,건축,축제,팬시산업,테마파크,관광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영역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수단으로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 만화와 플래쉬 동영상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만화를 창작하고 즐기는 방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일찍이 맥루헌이 20세기말 세대들은 결과보다 참여를 원할 거라고 예언을 한지 30여년이 됐다.우연히도 맥루헌은 대중매체 중 두가지만을 ‘쿨 미디어’ 즉 시청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매체로 분류했다.그 하나가 텔레비젼이고 다른 하나가 만화였다. 만화는 예술이면서 또한 예술이 아니다.이 점이 만화의 큰 장점이요 다행스러운 일이다.만화는 미술관의 미술보다 훨씬 더 상호반응적이고 참여적이다.만화는 평등하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고 이것이 디지털 시대의 심적 상태랄까 문화적 본능과 잘 맞아떨어지는 본성을 갖고 있다. 만화는 저비용의 일인 제작 영화이자 아티스츠북이고 자유로운 낙서이자 대화방 같은 것이다. 만화는 21세기에 가장 어울리는 글로벌한 심적 상태,일종의 대중적 영매 같은 것이다. 유럽에서는 만화가 ‘제9의 예술’로서 주류 문예장르와 어깨를 겨룰만큼 확고한 힘을 갖고 있다.만화가 예술이냐 아니냐는 이제 거의 무의미한 질문이다.예술로서 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언어’로서 더 본격적으로 만화를 주목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로 지금 우리는 접어들고 있다. <성완경 인하대 교수·한국영상문화학회 공동회장·부천만화정보센터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