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관련 자료
글 수 34
| <디지털 문화혁명> (19)사용자 문학시대 열린다 |
기원전 20세기 바빌론에서 ’길가메시 서사시’가 나타난 이래 문학은 41번의 세기말을넘기고 살아남았다. 이같은 존속(存續)은 끝없는 과학 기술의 혁신에도 불구하고 문학이자신의 꿈을 새로운 형식으로 보존하고 적응해가는 과정이었다. ’문자’라고 하는, 살아있는 말을 공간에 정지시켜버리는 과학기술이 출현하자 문학은 구비문학으로부터 기록문학으로 변모했다. 기계로 활자 공간을 배열하고 사본을 대량생산하는 인쇄술이 나타나자 문학은 저자와 출판인, 편집인, 서점, 독자, 비평가, 학자, 교사라는 분화되고 전문화된 시스템속에 스스로를 재편했다. 작품의 전개방향 독자 맘대로 결정한다이제 문학은 ’디지털 미디어’라는 새로운 매체 환경을 맞아 또 한 번의 예술적 진화를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진화는 변화와 지속의 두 가지 측면을갖는다. 일찍이 이어령 교수는 디지털 미디어로 인해 문학이 직면해야 할 변화를 세 가지로 정리한 바 있다. 첫째는 멀티미디어화이다.멀티 미디어의 확산으로 문학 작품을 이루는 언어적 형상이 순수하게 활자적이던 시대는 끝나고 있다. 최근 전자책 출판에서 예견되듯이 소설에 음악, 그림, 사진, 동영상이 결합되고 색인이 아예 본문 속에 들어가 자유자재로 다른 문서의 주석(註釋)을 불러오는, 활자적·영상적·음악적·사이버 스페이스적 상상력의 통합이 이루어질것이다. 둘째는 하이퍼텍스트화이다. 하이퍼텍스트(hyper-text) 양식이 확대되면 작품은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인터넷 상의 작가와 독자라는 쌍방향 네트워크 위의 과정물로 놓이게 된다. 이 경우 작품은 닫힌 형식으로 완결되지 않고 독자의 선택에 의해 변화하는 비선형적(非線形的) 질서의 열린 형식으로 진화할 것이다. 셋째는 ’그로컬화’이다. 음악이나 미술과는 달리 문학은 세계화(글로벌화)와 지역화(로컬화)가 복합되는 그로컬화(Glocalization)의 역학 속에서 창작된다. 문학은 문화가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하는 최후의 보루인 민족어를 창작의 질료로 삼아 왔다. 영어가 국제적인 비지니스 언어로 경직되면 될수록 문학은 더욱 더 각각의 민족어로 세계화의 현실을 표현하게 될 것이다. 산업혁명후 도시화 겪으며,소설등서 '존재의 의미'추구이같은 멀티미디어화, 하이퍼텍스트화, 그로컬화는 20세기 문학을 뒷받침하던 삶의 현대성(모더니티)이 사라져간다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의 반영이다.지난 세기 우리가 익숙하게 쓰고 읽은 ’소설’은 자본주의적 현대화의 산물이었다.말하자면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사회 운용의 힘이 토지 자본으로부터 산업자본으로 이동하면서 토지에 근거한 집단들이 해체되고 인간이 개인으로 단자화(單子化)되는 시대의 서사 양식이었던 것이다. 고향에서 유리되어 익명의 도시에 내던져진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개인적인 주체 구성의 문제였다. 전통적인 세계의 인간관계와 가치관이 흔들리는 상태에서 현대화된 삶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맞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소설은 바로 이같은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을 담아줌으로써 현대문학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21세기의 정보혁명은 이같은 삶의 현대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사회를 운용하는 힘이 산업자본으로부터 정보통신 자본으로 이동하면서 산업사회가 만든 개인의 공간이 해체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과 더불어 나타났던 활자 매체의 은하계를 벗어나 디지털 이미지가 만드는 새로운 총체적 매체 환경의 우주 속으로 들어왔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은 개인으로 단자화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서 해체되고 복제된 뒤 다시 인터넷을 통해서 실용적, 친교적 공동체로 연결되게 된다. 하나의 자아를 가진 생활인에서 수십개의 디지털 자아(아이디)를 갖는 ’가상주체’로 해체, 재구성되는 것이다. '하나의 자아' 생활인 해체되고,수십개의 ID갖는 '가상주체'로이러한 변화는 단기적으로 전통적인 문학의 고상한 취향과 미학적인 문체, 현실 비판적인상상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디지털 미디어의 출현은 문학을 현대 예술의 난해성이라는 늪으로부터 건져올리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모더니즘 이후의 현대 예술은 집단적인 이해보다 개별적인 표현을 옹호하며 전문화의 길을걸어왔다. 그 결과 예술은 대중을 소외시키며 예술사에 대한 소양을 가진 특정 관객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난해한 영역이 되었다. 보드리야르는 20세기 예술이 어느 시대에도 볼 수 없었던 오만함을 가졌고 그 오만함은 현대 예술과 ’지적 사기’(전문가 범죄)를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판한 바 있다. 지나친 내면화의 경향로 독자들의 외면을자초했던 20세기 문학 역시 복잡하고 불투명한 현실에 대응한다는 미명 아래 스스로 복잡하고 불투명한 현실이 되어갔다고 말할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는 문학의 이같은 20세기적 한계를 보완해줄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는 예술적 커뮤니케이션의 수평적 확장과 민주적 상호작용, 예술 간의 장르적 양식적 통합을 야기한다. 이 과정에서 특정한 개인의 시점, 특정한 개인의 목소리, 특정한 화자를 통해 집단의 이야기를 분할하여 개인의 내면세계를 창조했던 소설의 방식은 크게 변화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서사의 본질 면에서 소설로부터 이야기로의 회귀라는 방향성을 보일 수 있다. 모든 이야기는 집단의 이야기였고 집단의 이상과 현실이 종합되어 있는 공동체적 일체감의 산물이었다. 산업시대에 불가능했던 이 이상과 현실의 종합이 수많은 디지털 자아들이 자유로운 삶의 비전과 취향에 따라 참여한 사이버 공동체에서는 새롭게 재구될 수 있을 것이. 또 서사의 형식 면에서 변화는 일찍이 로렌스 스턴, 마르케스, 보르헤스 등이 구상했던사용자 중심 문학(ergodic literature)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사용자 중심문학이란 작품을 읽는 독자가 작품 속의 각 단계에서 이후의 진행을 선택하는 문학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소설과 롤 플레잉 시뮬레이션 게임이 통합되는 것이다. 모든 서사는 상황과 인물, 그리고 관념으로부터 유래하는 모티브에 의해 진행된다.’오쟁이진 남편’이라는 하나의 모티브는 간부(奸婦)와 간부(姦夫)라는 공시적인 역학 관계와 불륜의 발견과 부부 갈등과 이혼 혹은 살인이라는 통시적인 변화 패턴에 따라 일정한 발전방향을 갖는다. 사용자 중심 문학은 이처럼 인간의 유전자에 저장된 행동 규범의 정보와 부합하는 상상력의 패턴을 만들고 그 비선형적이고 우연적인 질서 속에서자기만의 가상 인생을 창작해가는 문학이다. 인간은 어떤 면에서는 모두가 한 사람의 소설가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항상 사물에 자신의 심정과 상상을 투사시켜 더욱 친근하고 인간적인 이미지로 사실의 변형을 추구한다.사용자 중심 문학은 이같은 인간의 창조성을 격려하면서 소설가와 대중이 공유하는 삶의 비전들을 만들 것이다. 대중과 유리 '20세기 문학'보완,'사용자 중심의 문학' 실현될것디지털 미디어의 출현이라는 관점에서 필자는 이글에서 문학이 직면하게 될 변화의 측면을과도하게 강조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도 문학이 갖게 될 지속의 측면 또한 크다는 것을 부연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정보의 확대를 통한 지식의 형성에 주력하는 디지털 네트워크 때문에 종이 위에 활자로 고정되는 문학이 공감하고 상상하는 개인적 자아의 확대를 통한 인격의 형성에 주력하는 고급한 예술 내지 교육 행위로 더욱 부각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당대의 엄살과 풍문을 넘어 문학 본연의 꿈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을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모든 예술의 역사에는 위기의 시대가 있었다. 변화하는 과학 기술에 직면하여 익숙했던 문학 형식의 위축에 절망하지 않고 변화의 근저에 깔린 자기 시대의 역사적 에너지를 통찰할 때 예술의 위기는 기회가 된다. 이런 전향적인 정신에 의해 모든 인간적인 욕망들의 사랑스러움, 착한 감정들의 진실함, 인간 정신의 자유와 인간 의지의 숭고함을 추구하는 문학의 꿈은 디지털 시대에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이인화·이화여대교수·국어국문학·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