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관련 자료
글 수 38
| <디지털 문화혁명> (20)인문학과 인지과학의 미래 |
인간감성은 영원한 아날로그영역’디지털(digital)’이라는 낱말이 우리의 귀에 매우 친숙해졌다.오늘날 사이버 세계를 비롯한 첨단기술의 대부분이 디지털 개념을 바탕에 두고 있다.그러한 기술은 점차 인류의 삶을 지배하며 이른바 ’디지털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디지털 기술의 영향은 특정 전문가 사회뿐만 아니라 일반사회의 문화전반에 파고드는 추세다. 그런 점에서 그 동안 기술분야와 어느 정도 거리를 지녀왔던 인문학분야들도 이런 큰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이미 자동 번역-통역을 비롯해 적지 않은 영역에서 디지털 기술이 고전적 인문학 작업을 대신하고 있으며,날이 갈수록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조만간 문학이나 예술의 비평을 사람이 애써 하지 않고 간편한 기계를 시켜 매우 깊이 있고 정밀하게 해 낼 수 있으며,더 나아가서는 창작을 기계가 대신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의 가속적인 추세가 그대로 이어질 경우 인문학 분야도 머지 않아 대부분의 영역이 디지털 기술의 영향 아래 놓일 것으로 예측된다.그것은 단지 외부의 환경변화에 따른 수동적 현상만이 아니라 인문학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첨단기술을 도입하는 능동적 움직임에 의해서 더욱 파급력을 갖게 될 것이다.이런움직임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인지과학의 발전이다. 인지과학은 인간의 정신활동이나 신체기능을 추상적으로 다루지 않고,구체적인 기술로서 재현하려는 학문이다.이 때 가장 유효하게 원용되고 있는 것이 바로 디지털 개념의 기술이다.인간이 느끼고, 사고하고, 말로 표현하는 것을 추상적으로 뭉뚱그려 논하는 것이 아니라구체적 공식이나 절차로 환원시켜 원래의 기능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현재 단계에서 볼 때,인지과학은 그 동안 답보상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인문학의 진보에 큰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전통적으로 인문학의 핵을 이루고 있던 인간의 정신,언어,문화,사회 등의 과제가 그 동안 매우 한정된 형식으로 연구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변으로 문화비평을 즐기는 일부 논객들은 그 동안 인문학에서 문자언어로 지면을 통해 연구와 교육의 내용이 생산되고 소비되던 방식에서 점차 영상이나 음향 또는 그 밖의 언어로 하이퍼 또는 입체의 매체를 통해 수행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매우 떠들썩하게 인문학의 변화를 논하는 경우가 많다. 인문학자들의 연구생활이나 교육환경에 나타나는 그러한 매체의 변화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사실이다.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인문학의 내용 자체다.인지과학은 인문학의 옷을 갈아 입힐 뿐만 아니라 몸통까지 변화시켜 가고 있다. 그 동안 인간의 로고스,파토스,뮈토스를 놓고 끝없는 논쟁을 거듭하며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추상적 논리를 개발하여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관념론과 실재론, 인간주의와 반인간주의, 실존주의와 구조주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왔으나 이제는 말로만이 아니라 인간의 과학적 모사- 일종의 시뮬라크르(simulacre)-를 통해 매우 현실적인 토대를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인문학도 이제는 말로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결과물을 내놓아야 할 때가 됐다는 이야기이다. 많은 시람들은 이러한 흐름이 답보상태에서 헤매고 있는 인문학에 새로운 삶을 가져다주는희망의 빛이라고 여기고 있다.그에 대해 부인할 수 없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인간의 정신과 신체를 구체적인 형식으로 재현하려는 인지과학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현 단계의 인문학에 자극을 준다. 먼저 피상적으로 던지는 자극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연구주제를 제공함으로써인문학자들에게 새로운 논의거리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지만,조금 더 연구가 진척되어감에 따라 인문학도 자연과학처럼 기술적인 결과물을 내놓음으로써 기술문명시대의 흐름에 깊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나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듯이 인지과학도 나름대로 그림자를 지우는 측면이 있다.거시적으로 볼 때 인문학의 미래를 자칫하면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갈 위험도 있기때문이다.아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하고 있거나 일부 선각자들 사이에서는 알면서도침묵하고 있는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우선 디지털 기술에 동승하여 진전되고 있는 현재의 인지과학은 인간의 본질과 행복에 대한 물음에 정면으로 마주하여 고민하지 않으며 우회하고있다.우선 인간의 삶이나 학문연구에서 당장 편의를 위해 구체적 성과물을 생산하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반면 궁극적으로 그런편의가 인간의 행복에 어떻게 얼마만큼 기여하며 학문적으로 인간의 본질을 규명하는데 얼마나 타당성을 지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심각히 고민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재 디지털 방식의 인지과학은 전반적으로 기능주의 경향을 띄고 있다.이 때 말하는 기능주의란 어떤 노동이나 쾌락의 목적을 위한 편의 또는 수월성의 측면에서 인간의 역할,기능을 대신한다는 뜻이다.이러한 기능주의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인간은 기능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기능을 떠난 어떤 가치를 추구할 때도 있다. 눈이 내리거나 비가 오는 것은 기능적으로 때때로 인간에게 비효율적 현상일 수 있는 경우에도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끼며 환호하거나 눈물을 흘릴 수 있다.논리적으로 볼 때,디지털 방식으로도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감정의 대체효과를 기능적인 측면에서 산출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그러나 이러한 감성적 기술효과는 인문학의 심연에서 문제되는 정서를 충분히 담아 낼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아날로그의 세계가 남게 되는데,디지털에 너무 기울어 버리는방법론이나 문화는 아날로그와 같은 다른 요소들의 세계와 단절을 일으킨다는 문제가 있다. 사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은 기술적인 측면에서든 문화적인 측면에서든 서로 배타적이라기보다 상호 보완적인 관계일 필요가 있다. 어쩌면 디지털과 아날로그라는 두 가지 방식을 이분법적으로 대비시켜 이야기하는 현대사회의 담론 자체가 이미 디지털 문화에 너무 기울어있음을 시사하는지 모른다. 따라서 오늘날의 인문학이야말로 많은 지혜가 필요한 패러다임의 교차로에 놓여 있다. 구태의연한 수구주의는 빨리 버려야 할 것이다. 과도한 디지털 예찬론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아날로그 시대에 대한 디지털 시대의 인식론적 단절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디지털에 대한새로운 단절도 당연히 예상해야 한다.찾아 왔으니 맞아들여야 한다는 것과 찾아 온것이 어떤 의미를 갖기 때문에 어떻게 받아 드려야 한다는 자세는 매우 다르다. 인문학은 새로운 문화에 비판과 수용의 양면적 그리고 균형적 소명을 띄고 있다. 두 가지를 함께 고려하며 나아가야 할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하나는 과거의 타성을 벗어나인지과학과 같은 새로운 방법론과 영역을 개척하며 시대의 흐름에 동참해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가운데서도 주어진 시점의 문화를 깊이 분석하여 그 성격과 의미를 밝히며자신이 나아갈 곳의 타당성을 헤아리는 일이다.마치 뛰면서 생각하고 판단하며 기획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지금 숨가쁜 현실에 살고 있다. <주경복 건국대교수·언어과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