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글쓰기: 영상, 예술의 경계 허물어지다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대표 김연호

 

 

1. 들어가기에 앞서

디지털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신조어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어 현대인의 삶의 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 기술매체의 변화는 이렇게 일상과 인간의 예술 영역에도 그 영향력을 과시한다. 모 고등학교에서 조를 나누어 영화 한편씩을 제작해오는 것이 미술 숙제로 제시되었었다. 이것은 회화와 조각 등의 전통 미술 영역을 중심으로 가르치던 미술 교육에서 영상에 문을 두드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현재 디지털 문화의 영향력이 일반 대중에게 확산되고, 디지털 캠코더가 텔레비전과 같은 가전제품으로 점철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21C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는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는가? 글쓰기의 변화에 맞춰 예술에서의 글쓰기 표현양식은 어떤 변모를 보여주고 있는가? 디지털 패러다임은 매력적이고, 호감 가는 애물 항아리(덩어리)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의 과도기에 놓여 있는 현재, 디지털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인간은 사고의 확장, 감각의 확장까지 예언하고 있으며, 사고 전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기도 하다.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던 애니메이션은 디지털의 능력으로 컴퓨터의 손을 빌리게 되어 인간의 수작업보다 더 정교한 그림을 그려내고 있으며, 발터 벤야민이라는 이론가가 예언한 디지털 복제 기술로 인해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다양한 회화 작품은 인터넷으로 실제 보는 것보다 더 자세하고, 꼼꼼하게 감상 할 수 있기도 하다. 영화 역시 디지털의 능력으로 가상의 세계를 실제보다 더 현실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디지털의 기술력을 논하기보다 디지털이 가져온 예술의 대중화와 디지털로 인한 각 예술 영역의 해체화에 역점을 두려한다. 빌헴 플루셔는 <디지털시대의 글쓰기>에서 문자의 발달과 인쇄술이 인간이 선형적인 사고를 하는데 영향을 주었다면, 디지털 코드의 하이퍼텍스트는 인간의 선형적 사고를 비선형적 사고로 전환하는데 영향을 준다고 쓰고 있다. 이것은 선형적인 사고로 숨겨져 있던 인간의 감각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술에서 우리의 글쓰기는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그리고 변화된 글쓰기는 어떻게 사용가능한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영화에서의 디지털 글쓰기


영화 제작에서 디지털이 가장 파급효과를 보여주고 있는 부분은 편집과 촬영이다. 비선형적 편집과 컴퓨터와 호응을 하는 디지털 캠코더로 전보다 조금은 더 수월하게 제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디지털 캠코더의 대중화는 전문 영역으로서의 영화를 대중적으로 확대시키고 있다. 영화 장르 중 다큐멘터리는 비디오와 함께 그 역사를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차대전이 끝나고 자본주의와 산업의 물결 속에 서 있던 1965년, 소니 사가 자체 개발한 휴대용 비디오 카메라를 미국시장이 시판한 데서 다큐멘터리 비디오는 시작된다. 세계적으로 정치 사회적 격변 시기를 겪고 있던 시기인 만큼 그 변화와 개혁 운동의 개념에서 접근한 게릴라적 다큐멘터리는 역사적 현장을 기록하고 대안과 논쟁의 담론을 작품에서 보여줌으로써 사회를 고발하는 차원의 예술로 자리를 잡는다. 또한 다큐멘터리 비디오는 시네마베리테 스타일이 가지지 못했던 소수 노동력과 장비의 축소화로 인한 기동성으로 현장을 좀더 가까이 포착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최초 독립다큐멘터리 비디오인 <상계동 올림픽>을 필두로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의 수는 급성장하기 시작한다. 다양한 인권과 노동 현장을 포착한 다큐멘터리가 늘어나면서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제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창구도 생겨나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기록 방식 포맷은 8mm, 6mm, VETA, S-VHS, 16mm, 35mm 등 여러 포맷이 있지만 점점 6mm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S-VHS, 8mm 방식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에서 디지털 캠코더는 감독의 글쓰기를 반영하는 도구로 잘 활용되고 있다. 과거 신지식인이 펜과 지면을 통해 자신의 사상과 이념을 호소했었다면, 지금은 영상을 통해 그 사상을 내뱉고 현장에 직접 참여한다. 인문학에 있어서 '영상'의 물결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인문학에서도 '영상'과 접목한 다양한 예술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시대에서 펜의 역할을 자처하는 디지털 캠코더는 지면을 통해 예술문화를 창출했던 과거의 예술문화에 도전을 가한다.
그렇다고 문학과 회화 등 전통예술이 사라질 것이라는 건 섣부른 생각이다. 과거 회화에서 사진과 필름으로 새로운 예술영역이 생겨났지만, 지금도 회화는 여전히 그 자태를 뽐내고 있지 않은가. 다른 점은 각 예술이 크로스 오버된 형태로 새롭게 재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3. 각 문화 영역으로 파장된 글쓰기의 시도, 그 손에 쥐어진 도구 ‘디지털’

 

음악과 영상이 만난 뮤직비디오(music video), 영상과 문학이 만난 비디오시(Video poem), 영상과 무용이 만난 비디오 퍼포먼스(Video performance), 영상과 미술이 만난 싱글비디오아트(Single Video art), 인터넷과 영상문화가 만난 넷 아트(net art) 등 디지털이 영상에 가져온 영향은 새로운 예술의 도래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디지털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그 영향력을 과시하며, 글쓰기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영상은 이제 대중의 글쓰기가 되었다. 전문인, 예술인만의 글쓰기 방법이 아닌 것이다. 대중의 영상 글쓰기로 인해 ‘영상’은 각 예술 영역을 해체하고, 다양한 글쓰기 방식을 실험한다. 이성강 감독의 작품 은 극장과 갤러리를 오가며 상영되었으며, 다양한 미디어 아트 작품은 실험영화 또는 비디오라는 이름으로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와 인디비디오 페스티발에서 상영되었다. 웹에서 구현되는 넷아트 작가들 설은하(seoleuna.com), 장영혜(yhchang.com), 김태엽(taiyup.com), 권형우(movilemutant.com) 등의 웹 아티스트들의 작품 역시 영상물로 극장과 갤러리를 오고간다. 방송이나 인디밴드 락카페 영상물로 제공되었던 인디 뮤직비디오 역시 독립 영화제들인 레스페스트, 서울 뉴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인디비디오페스티벌), 서울 독립영화제, 서울 프린지페스티벌 - 암중모색-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며, 현재 영상이 갖고 있는 다양한 패러다임을 논의하게 한다.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인간의 확장>에서는 미디어가 인간에게 끼치는 그 영향력을 예견한다. 미디어로 퇴화된 인간의 시지각 능력이 되살아나고, 과거에 인간이 선망하던 능력이 조금씩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영상으로서의 글쓰기는 그 내용과 방식에 있어서 다양한 패러다임을 보여주면서 확장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조금씩 부각되고 있다.

독립단편영화에도 변화는 있다.


첫 번째는 이미지와 플롯으로 이루어진 단순화된 내러티브의 특징이다.


내러티브 중심의 영화에서 이미지와 컨셉 플롯으로 이루어진 단순화된 내러티브가 보여지고, 필름 독립영화에 비해 빠른 화면 전개가 그 전보다 많이 등장한다. 필름 독립영화가 롱테이크가 많은 반면 디지털 영화는 비교적 빠른 화면 전환과 많은 컷 수, 핸드헬드 기법이 많은 게 특징이다. 다큐멘터리 비디오에서 주로 쓰는 영상기법들이다. 비디오작품 <주자가 고독할 때>(김종국), <라라 라라라>한주희, <매일하루>(최주영), <10년의 셀프초상>(유지숙), <행복한 청소년 건강한 대한민국>(최진성)에서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이미지 화법 중심의 영상기법의 다양화이다.


실험영화가 싱글 비디오아트, 디지털 아트를 싸안으면서 다양한 이미지 화법을 선보이고 있다. 기존 필름 실험영화는 이미지로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방식을 선호하였다. <다우징>(김윤태), <현빈>(강미자), <눈물>(임창재) 등등 기존 필름 실험영화는 상징과 이미지화로 극을 구성하고, 느린 화법을 구사하였다. 그러나 현재 싱글 비디오 아트 계열에서 선보였던 미디어 기법들이 대거‘영상’으로 선보이면서 실험영화는 변화의 시점을 맞이하고 있다. <The tao of 7th train>(이승준), <콩한쪽>(조성주) 등이 그 작품이다.


세 번째는 디지털로 인한 애니메이션의 급성장이다.

 

독립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화법을 가지고 있음에도 기존에는 한정된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제작된 애니메니션만 소개되었었다.
‘디지털 시기’를 맞아 애니메이션 감독들의 작업 환경은 좀 더 알차게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게 되었고, 그 후 2D 애니메이션이 대거 각 영화제에 선보이면서 ‘애니메이션 열풍’을 낳기도 하였다. 이‘열풍 후 정부와 학교에서 독립 애니메이션을 지원하는 많은 방안이 논의되면서 독립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애니메이션 기법을 선보이게 된다. 2D 애니메이션, 3D 애니메이션, 셀 애니메이션, 페인팅 온 글라스 애니메이션, 핀스크린,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그레이 애니메이션 등의 기법이 제작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립 애니메이션에서 무한한 기법이 선을 보일 것이다.

 

4. 고급예술의 파괴, 대중이 앞장서다

 

서울 뉴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의 출품 장르 비율을 살펴보면, 영화/다큐가 47.93%, 미술이 10.69%, 애니메이션이 11.03%, 내가 만드는 장르가 11.72%, 탈장르가 11.03%의 비율로 나타났다. 영화/다큐 분야로는 극영화, 다큐멘터리, 실험영화로 장르를 나눌 수 있다. 미술 분야로 출품한 작품은 싱글채널 비디오아트, 미디어아트로, 내가 만드는 장르에는 영상에세이, 영상만화, 짜 맞추는 이야기, 스톱모션, 극실험 모션그래픽, 액션 환타지 블랙 코미디, 심리극, 드로잉 비디오, 포토에세이, 비디오 퍼포먼스 등으로, 탈장르에는 광고, 뮤직비디오, 비디오포엠, 웹아트, 페이크다큐 등으로 자신의 장르를 피력하고 있었다. 
독립영화는 이제 대중이 참여하는 영역으로의 길에 접어들었다. 과거 독립영화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에서 보여준 제작과 의식으로써의 독립영화의 의미는 현재 많이 퇴색되었다. 그러나 그 의미가 퇴색되었어도, 현재 독립영화는 대중이 그 자리를 메워 가고 있다. 보기조차 민망한 영상물이 쏟아지고, 새로운 영화 문법을 실험해보려는 젊은 혈기로 감독도 이해하지 못할 작품도 대거 영화라고 내놓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한국의 독립영화가 저급해졌다고 결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상업영화에 진출하려는 과정으로 독립영화를 한다고 손가락질 할 일도 아니다.
독립영화에는 상업영화가 결코 따라 올 수 없는 작품의 미학과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첫 작품에서도 도제 관습 없이, 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새로운 영화 코드를 실험할 수 있다는 것, 사회와 정부의 부조리에 대해 노래할 수 있다는 것,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 일인 시스템으로도 영상을 제작할 수 있다는 것, 독립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상징적 함의가 있기에 이것을 선택하느냐 마느냐는 본인이 결정할 일이다. 영상으로 글쓰기는 이제 과거 노트와 펜에 비유된다. 지금은 그 과도기에 있다. 이제 인터넷과 컴퓨터를 매개로한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앞에, 호모 사피엔스인 창의적 인간 앞에 ‘영상-디지털’이 중앙에 놓여있다. 디지털은 이제 우리의 글쓰기에서 빠질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참고자료
▶ 디지털 이론서
『디지털 영상예술 코드읽기』,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엮, 2003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 빌렘 플루서

▶ 디지털, 뉴미디어아트 관련 시민 참여 영화제 & 영상제 사이트
 퍼블릭 엑세스 시민 영상제 http://www.publicaccess.or.kr
 네마프 놀01다다 http://www.nemaf.net
 인디다큐페스티벌 http://www.sidof.org
 레스페스트 http://www.resfest.co.kr
 세네프http://www.senef.com

▶ 영상제작 노하우를 알 수 있는 사이트
필름메이커스커뮤니티 http://www.filmmaker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