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 뉴미디어 아트의 개념 및 역사적 고찰

2. 뉴미디어 아트의 지형도: 예술성과 상업성, 기술성과 창조의 위기

3. 통합과 변형으로의 뉴미디어 아트 그리고 영화의 지점

 

김연호 (계간 영화언어, 2003, 겨울호)

 

1. 서론 - 뉴미디어 아트(New Media art)의 개념 및 역사적 고찰


뉴미디어 아트는 21세기에 들어 더 다양한 지점을 선보이고 있는 예술영역이다. 이 예술은 접점과 융합, 탈경계, 이종교배(hybrid) 등의 특징을 가지며 가장 활발하게 다양한 지점의 예술형태를 선보이고 있다. 초기 미디어 아트는 1920년에 대두되어 1970년대의 대중매체(mass media)였던 책․잡지․신문․만화․포스터․사진․영화․라디오․텔레비전․비디오․컴퓨터가 작가의 작업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의 젊은 작가 역시 실험성과 도전으로 다른 영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미디어 아트는 빛보다 빠른 비트(bit)의 0, 1 binary code로 이루어진 디지털로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의 뉴미디어 아트의 발전은 한국 경제의 버팀목으로 자리잡고 있는 IT 산업의 부흥에 힘입은바가 크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해외의 뉴미디어 아트의 흐름과 차이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며, 젊은 작가들의 미디어 아트에 대한 관심과 도전 역시 유럽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경향은 아니라고 한다. 한국에서 미디어 아트라는 단어가 미술에서 개념화되고, 자리를 잡기 시작한지 약 8여 년이 지난 역사를 반추해보면, 지금의 미디어아트의 성과는 놀랍기 그지없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이전의 미디어 아트에서 볼 수 없었던 웹아트, 인터렉티브 아트, 가상공간 네트워크, 디지털 아트, 모바일 아트, 디지털 퍼포먼스, (디지털)비디오 아트, 디지털영화 등이 가미된 뉴미디어아트가 해외와 마찬가지로 동시대에 한국에서도 갤러리와 소극장에서 전시되고 있다. 또한 예전의 미디어 아트 역시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과 과학의 접목을 통해 뉴(New)라는 접두사를 선사 받게 되었다. 미디어 아트와 뉴미디어 아트를 나누는 경계선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는 이분법적인 용어로 결정되고, 그 사용가치와 양에 따라 결정되는 지극히 기술 과학적 방법론에 의존하고 있다. 미디어 아트 작가들은 기술 과학과의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기술지상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르디외와 같은 이론가는 오늘날의 미디어 아트 작가들을 엔지니어로 규정짓기도 한다.


한국에서 미디어 아트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후반부터이다. 서구의 미디어 아트 시기가 없었던 한국에서 뉴미디어 아트는 경제 성장과 더불어 함께 커나간 예술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뉴미디어 아트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디지털․인터넷(가상공간)․인터렉티브로 축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단언할 수 없다. 지금도 뉴미디어 아트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식의 실험을 통해 다른 장르나 매체를 끊임없이 자기화自己化하며 끌어들이고 있는 장르이기에 쉽게 판단하거나 결론을 낼 수 없다. 한국에미디어 아트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식의 실험을 통해 다른 장르나 매체를 끊임없이 자기화自己化하며 끌어들이고 있는 장르이기에 쉽게



2. 뉴미디어 아트의 지형도: 예술성과 상업성, 기술성과 창조의 위기


마이클 러시Michael Rush는 20세기의 미디어 아트를 개념화하면서 영화와 아방가르드 시네마를 빼놓지 않는다. 매체와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 비디오 설치미술, 디지털 아트라는 큰 범주가 있기 이전에 매체예술에서 영화는 오늘날의 미디어 아트에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미디어 아트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된다. 미디어 아트의 통합성엔 다양한 문화가 복합적으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아트는 다양한 장르에 걸맞게 소개되는 여러 지점에서 별개의 코드를 부여받기도 한다. 연예인으로 보자면, 이보다 더 한 엔터테인먼트는 없을 것이다. 이런 멀티 플레이를 하고 있는 미디어 아트를 체계화하고, 정립해 나가려면, 두 가지 관점에 대한 확실한 준거가 필요하다.


첫째는 예술성과 상업성의 관계 코드에 대한 인식의 지점이다.

, 정보는 그 사물에 대한 인식의 기준을 정한다. 오노요코는 한국 대중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이미 <비틀즈> 멤버인 존 레논의 아내라는 정보를 통해 익숙한 코드가 되었다. 즉, 예술가로 인식되기 이전에 대중문화의 정보에 의해 오노요코는 한국 대중에게 호기심, 선망,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대상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 전위예술가로서의 가치를 평가받기 이전에 이슈화로 유명인이 된 오노요코의 개인전 <예스 오노요코전>이 로댕 갤러리에서 전시되었을 때 미술 갤러리 역사상 최고로 많은 관람객 수인 6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대상에 대한 사전 정보는 그녀에게 예술가라는 새로운 인식틀을 한국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데 가장 큰 메커니즘으로 작용하였다. 벤야민 W. Benjamin은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체험은 정보로 변환된다고 한탄한다.ϨϨ͒ɘꘘ͒ɘꘘ͒ɘꘘ͒ɘꘘ

대상-비평-독자의 관계, 작가-대상-텍스트의 관계, 텍스트-비평-독자의 관계 속에서 예술 작품, 예술가, 예술 이론이 탄생된다. 예술 작품은 바로 규정짓기, 자리잡기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미셀 푸코의 이미지와 기호와의 관계에 대한 접근, 피에르 부르디외의 권력의 규칙의 종지부는 ‘인식’이기도 하다.

예술성과 상업성에 대한 문화권력 메커니즘은 자본과 결부된다. 상업적인 목적에 의해 공장에서 출고된 창조물은 자본과의 유착 관계에 의해 상품으로 인식하게 되고, 예술가에 의한 창조물은 예술의 장(場) 메커니즘에 따라 예술 작품으로 승화된다. 팝아트는 이 법칙을 역이용하여 대중코드를 창조물로 전환시켜, 예술 작품에 대한 인식의 메커니즘을 확장시킨 조류라 할 수 있다. 나비아트센터에서 열린 <속임과 환상으로 보는 미술 Fake & Fantasy>전은 작품에 대한 정보가 없는 관람객에게 상품과 예술품의 기준을 관람객에게 화두로 제시하는 그야말로 속임과 환상에 관한 전시이다. 대중이 상품과 예술품을 구별하는 기준은 그 창조물에 대한 정보로, 이 전시는 대상에 대한 판단틀이 어떻게 제공됐는가에 따라 인식이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하는 전시라 할 수 있다.

즉, 정보는 그 사물에 대한 인식의 기준을 정한다. 오노요코는 한국 대중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이미 <비틀즈> 멤버인 존 레논의 아내라는 정보를 통해 익숙한 코드가 되었다. 즉, 예술가로 인식되기 이전에 대중문화의 정보에 의해 오노요코는 한국 대중에게 호기심, 선망,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대상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 전위예술가로서의 가치를 평가받기 이전에 이슈화로 유명인이 된 오노요코의 개인전 <예스 오노요코전>1)이 로댕 갤러리에서 전시되었을 때 미술 갤러리 역사상 최고로 많은 관람객 수인 6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대상에 대한 사전 정보는 그녀에게 예술가라는 새로운 인식틀을 한국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데 가장 큰 메커니즘으로 작용하였다. 벤야민 W. Benjamin은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체험은 정보로 변환된다고 한탄한다.


한국의 뉴미디어 아트를 살펴보자면,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유통 경로가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에 대중과 좀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부재인 상황이다. 상업 영화와 독립 영화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유통구조를 갖고 있는데 반해, 뉴미디어 아트는 영역의 방대함과는 다르게 유통 구조나 시장이 없다. 즉, 뉴미디어 아트엔 작가의 생산은 있지만, 소비가 없다는 얘기이다. 작가의 뛰어난 기술력과 창조성만으로 ‘예술작품’이 창작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유통라인이나 정보력에서도 능력이 발휘되어야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스탠리 아로노비츠는 예술작품 자체의 상품화, 예술이 일정 대중을 관객으로 확보하지 않으면 주변화되고마는 규칙에 스스로를 종속시켜야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문제가 된다2)고 말하고 있다.


둘째는 과학의 기술성에 직면한 뉴미디어 아트의 창조성과 위기의 지점이다.

뉴미디어 아트의 특징인 디지털․웹(가상공간)․인터액티브는 과학의 기술성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초기 백남준이 텔레비전의 일방향성에 반기를 들고, 비디오아트, 위성중계예술, 레이져예술 등의 쌍방향 예술을 선보였지만, 이 역시 과학의 테크놀로지에 의존하고 있으면서 미디어 문화가 만들어 낸 상업적인 루트를 예술의 형식에 응용한 것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피필로티 리스트Pipilotti Rist는 대중 코드인 뮤직 비디오 형식을 차용한 작품으로 과학기술이 낳은 문화산업 코드를 예술 안에서 재생산하면서 미술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앤디 워홀 Andy Warhol은 작품에 미디어 방법을 내재화시킴으로써 기계적 복제의 전 구조를 물신화3)한다고 밝힌바 있다.

이제 예술은 테크놀로지뿐만 아니라 자본주의가 생산해낸 문화산업 구조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과학기술의 첫 번째 목표는 자본의 잉여가치를 내는 것이다. 자본이나 산업과 떨어져서는 과학기술은 발달할 수 없다. 여기서 탈자본을 지향하면서, 산업화된 첨단 과학기술을 예술적 창조성으로 직결시켜야 하는 예술가들 역시 일반대중과 마찬가지로 소비자가 된 것이다. 3D 프로그램 마야Maya, 어도비 프리미어Adobe Premier, 애플 파이널 컷 프로Apple Final Cut Pro, 미디어500Media500 등 기술자들이 발명한 프로그램을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엔지니어만이 아니라 미디어아트 작가들도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툴tool을 익히고, 배운다.

조지 루카스 George Lucas의 디지털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Starwars Episode>, 워쇼스키 Wachowski 형제의 <매트릭스 Matrix>는 작가주의를 떠나 영화산업에서 자본의 잉여가치를 재생산하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영화에 응용한 케이스이다. 예술영화 감독인 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영국여인과 공작 L'Anglaise et le Duc>, 라스 폰 트리에 Lars Von Trier <백치들 Idioterne>의 디지털 쓰임은 영화 필름 포맷의 헤게모니가 필름 메커니즘에서 디지털로 전환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일례이다. 매체 예술의 중심인 영화에서도 디지털 이데올로기인 테크놀로지의 마력은 피해갈 수 없다. 즉 기술결정주의는 어느 한 부분에만 집약되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 모든 예술에서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최신 기술을 누가 먼저 응용을 하느냐에 따라 예술의 창조성도 부각된다. 이제는 아날로그 도구가 아닌 디지털의 기술 정보를 제일 먼저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느냐’에 따라 예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법칙4)을 만들어 낸다.


독자적인 유통 구조를 갖고 있지 않은 뉴미디어 아트에 웹은 작가의 작품을 전세계 대중(네티즌)에게 보여줄 수 있는 대체 저장고이자, 가상공간이다. 인터넷의 인터페이스Interface와 네트워킹Networking은 사이버 문화를 창출하면서 가상공간의 재고 가능성을 보여준다. 물리적 공간에서 벗어난 웹(World Wide Web)은 무한 공간이면서, 제약을 초월하고, 더불어 웹의 하이퍼링크는 정보의 복합적인 중층 구조를 실시간에 환원하면서 즉시성과 신속성을 갖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나 웹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인식의 충돌은 물리적 공간이 아닌 가상현실 시뮬라시옹Simulation 세계, 즉 ‘재현’에 있다. 이전 물리적 공간에서의 실재에서 파생실재로의 사뮬라크르Simulacres가 아닌 바이너리 디지트 binary digit라는 형체가 없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구현된 시뮬라시옹 세계가 바로 웹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데리다 Jacques Derrida는 서구사상이 문자의 힘에도 불구하고, 음성언어를 추구하였고, 사이버 스페이스 Cyber Space의 프로그람programme5)을 통해 서기언어(書記言語) 에크리튀르Ecruture6)이 구현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음성언어 역시 사이버 스페이스에서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코드화된다. 웹에서 구현되는 모든 기호와 문자와 이미지는 디지털이라는 문자언어로 전환되면서, 인간의 물질적 공간을 가상복제7)하고, 현실réalité 세계에서 구현하지 못했던 상상의 세계까지도 디지털 일루션인 가상현실réalité virtuelle로 만들어 낸다. 팝아트가 복제 기술을 끌어들였다면, 웹은 가상복제를 실현하고 있다. 웹의 특성은 벤야민의 복제에 의한 고급예술의 붕괴나 맥루한의 미디어 확장에 의한 다원주의, 지구촌화에 더 접근하며, 예술이 갖고 있던 기의의 저의마저 붕괴해버리고 만다. 웹 갤러리, 웹 아트, 라이브 웹 캐스팅 퍼포먼스8) 등 웹을 이용한 작품은 소장으로써의 가치나 영구적인 보관이 아닌, 일회성, 반영구적인 특징을 지닌다. 작품의 완성도가 한시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되거나, 라이브 웹 캐스팅 퍼포먼스처럼 일회성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것이다.


공간으로 이루어지는 라이브 웹 캐스팅 퍼포먼스같은 형식이다. 제2회 서울 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2002)에서도 인터액티브 형식의 뉴미디어 아트 작품이 대거 소개되었으며, 대안공간 풀 갤러리에서 전시된 김민, 최민의 <노래방 프로젝트 Nr.1- (관람자의 독재)>(2003),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 갤러리에서 전시된 <The.Station>(2003), 창동 미술 스튜디오에서 개최되는 안드레아스 쾨프닉 <U-Boot Project>(2004) 역시 독일의 쾰른 아트페어(Art cologne)와 한국에서 동시에 개최되는 인터넷 망을 이용한 인터액티브 아트이다.ዀϨϨ͒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The'õt͡ʰ7ʰ7>(2003), 창동 미술 스튜디오에서 개최되는 안드레아스 쾨프닉 <U-Boot Project>(2004) 역시 독일의 쾰른 아트페어(Art cologne)와 한국에서 동시에 개최되는 인터넷 망을 이용한 인터액티브 아트이다.



3. 통합과 변형으로의 뉴미디어 아트 그리고 영화의 지점


빠르게 변모하고 있는 산업화된 환경에서 뉴미디어 아트는 스폰지처럼 모든 것을 흡수하고 체화(體化)하고 있다. 뉴미디어 아트라는 개념으로 오늘날의 영상 예술은 하나로 통합될 수 있다. 뉴미디어 아트 용어로 살펴본다면, 영화는 뉴미디어 아트의 한 영역에 귀속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뉴미디어 아트에 대한 자료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뉴미디어 아트와 영화간의 관계를 정립한 어떠한 이론서도 없는 실정이다. 그것은 미디어 아트의 역사가 짧고, 1960년대의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간의 혼란기에 이루어진 미디어아트에 대한 방대한 역사와 비평이 당시 한국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미디어 아트〈미술’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채 들어온 미디어 아트는 Media라는 기호가 갖고 있는 서구의 Media art의 유연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영화이고, 미디어 아트는 미술의 한 영역으로 인식될 뿐이다.

미디어아트와의 인접성이 있음에도 영화는 개념과 영역의 포용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문화란 문화전파와 통합, 접변을 통해 관계가 정립되고, 확장된다. 영화에서는 미디어 아트에 대한 연구를 비가치적인 생산활동으로 보거나 장(場)외의 연구로 보고 있다. 고전으로 명명되는 한국에 번역된 영화 서적이나 이론서에서 미술이나 미디어아트와의 역사적 연관성을 깊게 써내려 간 영화 서적이 없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 ‘인상주의 화가들이 아방가르드 영화를 제작했다’ 정도 - 그러나 영화의 탄생이 미술에 주는 충격이 컸던지 미술에서는 사진․영화의 탄생에 귀추하며 연관된 화풍이나 연관성에 대해 탐구한다.


자코모 발라 Balla, Giacomo9)의 <줄에 묶인 개의 동학 Dynamism of a Dog on a Leash>(1912), 루이지 루솔로 Russolo, Luigi10), <자동의 역동성 Dynamism of an Automobile>(1912-13),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ude Descending a Staircase>(1912)와 같은 아방가르드 Avant-garde 예술인 미래주의나 초현실주의 화법에서 영화 장치와 요소의 연관성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안달루시안의 개>, <황금시대>의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시인의 피>(1930) <비련 LꡑEternel retour>(1943) <미녀와 야수 La Belle et la Bte>(1945) <오르페우스의 유언>(1960)의 장 콕토 Jean Cocteau, <이성으로 회귀 Return to Reason>(1923), <Emak Bakia>(1926), <불가사리 Lꡑtoile de mer>(1928)의 만 레이 Man Ray 등 1920년대 후반의 아방가르드 계열의 예술가들은 영화를 제작한 영화 감독이자 매스 미디어뿐만 아니라 모든 재료와 방법을 차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미디어 아트 작가이기도 하다.

이후 1960년대 전위예술가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던 플럭서스 운동은 멀티예술, 문화의 크로스오버 등 인터미디어를 지향하며 전위예술, 비디오 아트,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예술운동을 펼쳤다. 이 당시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약 40여 편의 플럭서스 영화를 제작하였다. 백남준은 <영화를 위한 선 Zen for Film>(1962-1964)을 제작하였으며, 피터무어는 <얼굴을 위해 사라지는 음악 Disappearing Music for Face>(1966), 오노요코는 <눈 깜박임 Eyeblink>(1961), <번호 1 No.1>(1964), <자유 Freedom>(1970), 플럭서스의 창시자 조지 마키우나스는 <10피트 10 Feet>(1966)을 제작하였다.11) 플럭서스 영화는 이후 장뤽 고다르 같은 누벨바그 감독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이전부터 뉴미디어 아트는 미술 한 영역만의 흐름이 아니라 문화예술의 조류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뉴미디어 아트를 미술의 흐름만으로 간주하는 착오를 범한다. 그것은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예술조류에 대한 과도기 없이 정립된 채 들어온 예술의 수많은 기조와 운동이 문화 경계를 더 국견하게 만들며, 위계화해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의 뉴미디어 아트는 아직까지 몸은 모더니즘인데, 옷은 포스트 모더니즘을 지향한다. 이러한 본능적인 장의 보호주의는 분리된 예술의 장이 쉽게 섞일 수 없게 한다.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 토드 기틀린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더니즘은 통일성을 찢어버렸고, 포스트 모더니즘은 그 찢겨진 조각들을 즐겨왔다. 관점의 다중성이라 할 수 있는 모더니즘은 목소리의 완전한 분산이라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단초가 된다. 모더니즘의 콜라주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장르 통합을 가능하게 만들었다.”12)


뉴미디어는 문화적 모더니즘이 주변부로 전락시킨 다양한 문화적 틀을 수용한다. 뉴미디어는 노동, 인종, 여성, 소수문화, 동성애 등 포스트 모더니즘 시기에 일어난 다양한 인권․소수․대안문화 운동의 표현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광화문 촛불 집회 같은 퍼블릭 게릴라 전략에도 가장 많이 이용되는 매체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장르 통합은 뉴미디어 아트에 무한한 가능성을 준다.

그러나 영화가 쉽게 뉴미디어 아트에 합류할 수 없는 것은, 첫 번째는 독자적으로 형성된 100년의 역사가 있기에 그 정통성이 쉽게 해체될 수 없을 것이고, 두 번째는 다른 예술문화의 특성과 섞일 수 없는 ‘상업’ 영화만의 특수한 장이 커다란 문화산업이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앞으로 유통구조까지 디지털화되고, 디지털 위성 시스템으로 필름이 아닌 디지털 코드화된 영화가 위성망으로 전세계 극장에 전송되는 시대가 도래한다.

뉴미디어 아트의 미래 전망에 대한 몇 가지 가설을 해본다. 지금 현재 인터액티브 아트가 하듯이 영화가 스크린에서 나오거나, 인터액티브 퍼포먼스가 위성망을 통해 전세계 극장에서 전시되고, 디지털 멀티미디어 콘서트가 영화와 똑같이 전세계 극장에서 공연될 수 있을까. 자본구조와 직결되어 이 뉴미디어 아트가 이윤을 남긴다면, 영화는 새로운 모색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극장에서 이벤트 성으로 이루어진 ‘<헤드윅>과 콘서트’, ‘<록키호러픽쳐쇼>와 뮤지컬’이 아닌 아마도 상업 뉴미디어 아트인 채로 말이다.





그림 주석.


1. Matthew Barney, 크리매스터 CREMASTER 2  1999

2. Marcel Duchamp, 샘 Fountain, 1917

3. Pipilotti Rist, 픽켈포르노 Pickelporno, 1992

4. Eric Rohmer, 영국여인과 공작 L'anglaise et le Duc, 2001

5. The.Station전, 기획: 김혜란, 전시 작가: 김정한 박성선 이수정 이현진 조경란 조은지 최영준 최종범, 전시공간: 아트스페이스 휴(HUE), 2003

6. Giacomo Balla, 줄에 묶인 개의 동학 Dynamism of a Dog on a Leash C. 1912

7. Ono Yoko, 자유 Freedom, 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