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게임 스토리텔링의 서사 구조 연구(1)

- ‘영웅 서사’의 디지털적 변용을 중심으로 -


이 용 욱



1. 들어가는 말


이 논문은 컴퓨터 게임을 단순히 유희적 의미의 ‘놀이’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이야기하기)이 중심이 되는 디지털 텍스트로 상정한 후, 게임의 서사 구조가 지니고 있는 미학적 구조와 특징이 무엇인가를, 컴퓨터 게임 이전의 다양한 서사체와의 비교 분석을 통하여 양식화할 목적으로 제안되었다. 여기서 다양한 서사체란 ‘신화’ ‘전설’ ‘민담’ 같은 설화와 고소설, 현대소설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각기 다른 시공간의 서사체들과 컴퓨터 게임을 하나의 계열축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이들 모두가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 근본적으로 ‘이야기하기’로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게임의 이야기하기 방식은 문자 중심이 아니라 영상 중심이라는 점에서 기왕의 서사체와 차이점을 갖고 있지만, 그 이야기의 기본 틀은 문자 중심 서사체에서 출발했거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의 상당수는 소설이나 만화를 게임 시나리오의 원작으로 삼고 있으며, 툴킨의 환타지 소설 ������반지전쟁������은 유력한 게임 장르인 RPG의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1)

컴퓨터 게임이 인문학적 상상력에 그 시나리오를 의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컴퓨터 게임에 관한 연구는 주로 이공계 전공자나 게임 제작자들의 주도 하에 그래픽, 디자인, 인터페이스, 게임 엔진 등 기술공학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졌다.2) 이는 컴퓨터 게임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이 유희의 ‘수단’이나 ‘도구’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컴퓨터 게임은 21세기 정보화 사회가 탄생시킨 새로운 서사예술 장르이다. 그 탄생은 비록 기술의 발전과 진보에 힘입었지만, 20세기 초에 등장한 영화가 그러하였듯이, 예술성의 획득을 통해  기술과 예술의 경계에 서서 새로운 인문학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컴퓨터 게임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과 분석과 논의는 절실히 필요하다.

컴퓨터 게임 서사의 독창성은 컴퓨터 기술의 발전이 서사 형식에 미친 영향 관계로부터 그 논의가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 게임은 기술 의존적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의 서사체들은 기술의 발전이 서사 형식에 미친 영향이 극히 미미하였다. 구전의 시대에서 필사의 시대, 다시 인쇄의 시대로 기록의 저장 매체와 저장 방식은 달라졌지만 문자중심의 서사체들은 그 상상력을 기술이 아니라 현실세계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시대정신에서 찾았다. 따라서 컴퓨터 게임과 기존 서사체 사이의 공통분모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 ‘이야기하기의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 그 자체에서 찾아내야 한다. 이 같은 인식 하에 필자는 컴퓨터 게임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의 시도에 있어 한 가지 방법론을 제안하고자 한다. 컴퓨터 게임 서사의 독창성을 논의하기 전에 먼저 기존의 서사체와의 공통분모를 끄집어 낸 후 그 공통 자질들이 어떤 방식으로 컴퓨터 게임 서사 안으로 수용되었는지를 ‘이어쓰기’와 ‘고쳐쓰기’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다.3) ‘이어쓰기’에 대한 합의는 컴퓨터 게임이 기술의존적인 디지털 놀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왜 서사예술로 명명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될 것이며, ‘고쳐쓰기’에 대한 입장은 컴퓨터라는 물적 도구가 우리가 만들어낸 서사체의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시학적으로 지지해줄 것이다.

새로운 텍스트는 자신의 고유한 특징을 활용하는 독특한 표현 양식을 창출해냄과 동시에 기존의 표현 방식과 문화적 양식에 의존한다. 즉 어떤 유형이든 새로운 텍스트의 표현 양식은 일종의 혼성태로, 기존의 관습과 새로운 양식의 조합이다.4) 컴퓨터 게임 역시 ‘컴퓨터’라는 도구의 발명이 가능케 해준 새로운 텍스트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의 서사 문법이 변형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소설의 문법에서 중요한 것은 자아와 세계 사이의 갈등인데, 컴퓨터 게임의 시나리오 역시 갈등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갈등 구조라는 총론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전개 과정이나 해결 방식에 있어서 소설과 게임은 분명 다른 길을 가고 있다. 한 예로 게임에서 갈등 구조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데 ‘나’와 ‘세계’ 사이의 갈등이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나’와 ‘그’ 또는 ‘그들’ 사이의 갈등이다. 이때 ‘그(들)’는 동일한 게임 공간에서 활동하는 다른 유저를 지시한다. 전자의 갈등은 ‘나’의 일방적인 승리로 해결되어야 하는 단순한 서사인 반면, 후자의 갈등은 결코 해소될 수 없는 끝없이 그 결말이 연기되는 복잡한 서사 양상을 띤다. 소설 텍스트가 ‘나’와 ‘세계’ 사이의 외면적 갈등이나 ‘나‘와 ’나‘ 사이의 내면적 갈등을 재현한다면, 게임 텍스트에는 ’나‘와 ’그(들)‘ 사이의 갈등이 새롭게 등장한다. 이 갈등 구조를 ’타자적 갈등‘이라 명명할 수 있을 텐데, 외면적 갈등이나 내면적 갈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게임 서사만의 독특한 갈등구조이다.5) 갈등 구조가 기존의 관습이라면, 그 전개 과정이나 해결 방식의 차이, 낯선 갈등 구조의 등장은 새로운 양식이다.

이 논문에서 필자가 선택한 기존의 관습은 ‘영웅 서사’이다. 영웅 서사는 인류가 창조해낸 이야기 구조 중 가장 오래됐으며, 영향력이 있는 화소이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신화, 전설, 민담 등 설화문학에서 보편적이며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영웅 서사’는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 연극, 드라마 등 시대를 초월해 모든 서사 예술이 채택하고 있는 유력한 이야기 관습이다. 컴퓨터 게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오락실 아케이드 게임 시절부터 PC 게임, 최근의 인터넷 온라인 게임에 이르기까지 ‘영웅 서사’는 너무도 익숙하게 게임 서사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90년대 초 아케이드 게임 시장을 풍미했던 <철권 시리즈>의 영웅 캐릭터들, <원숭이섬의 비밀>이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등 PC 어드벤쳐 게임의 주인공들, RPG 게임의 새 장을 연 <디아블로 ⅠⅡ>의 전형적인 영웅 서사, 한국 온라인 게임을 선도하고 있는 <리니지>나 <뮤>의 시나리오가 의지하고 있는 중세 환타지 영웅담 등은 컴퓨터 게임 서사와 영웅 서사가 얼마나 밀접한 관련을 맺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컴퓨터 게임의 ‘1인칭 의사 체험 몰입 놀이’라는 구조적 특성은 유저로 하여금 현실에서 벗어나 지극히 비일상적인 세계와 만나, 그 세계 안에서 현실과 전혀 다른 ‘나’로 재탄생하게 되길 바라는 무의식적 욕망을 구체화시켜주고 그것을 활성화 시킨다. 현실과 비현실, ‘나’와 전혀 다른 ‘나’라는 모순적 거리를 익숙한 관습으로 메워주기 위해 컴퓨터 게임 서사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 구조인 영웅 서사를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기존의 관습은 컴퓨터 게임이라는 멀티미디어 텍스트 안에서 새로운 양식으로 변용된다. 영웅 서사는 아날로그적 전통이지만 컴퓨터 게임은 디지털 놀이이다. 따라서 아날로그적 전통은 어떤 형태로든 변용 과정을 거쳐야 디지털 놀이의 화소가 될 수 있다. ‘디지털적 변용’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이 가공 과정은 디지털 서사예술로서 컴퓨터 게임이 갖는 미학적 특징을 양식화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이제부터 기존의 영웅 서사가 디지털적 변용 과정을 거쳐 어떻게 ‘이어 쓰이고’ ‘고쳐 씌어졌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 영웅 서사의 구조적 특징


익숙한 관습으로서 ‘영웅 서사’의 구조적 특징은 ‘인물 기능’과 ‘여행 구조’에 따라 다음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2-1. 인물 기능 유형

형식주의자나 구조주의자들에게 있어 인물들의 양상은 오직 ‘기능적’일 수 있을 뿐이다. 이들은 어떤 외부적인 심리적 견지나 도덕적 견지에서 인물들이 무엇인가를 분석하고자 하지 않고, 오직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주인물들이 행하는 행위를 분석하고자 한다.6) 더 나아가 이들은, 한 인물이 이동하는 <행위의 영역>은 비교적 수적 적으며, 전형적이고 분류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블라디미르 프로프에게 있어서 인물들은 단순히 러시아 민담이 그들로 하여금 하도록 요청하는 기능의 산물이다. 즉 만약 외모, 나이, 성별, 생활상의 관심사, 지위 등등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차이일 뿐 기능의 유사성만이 유일하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영웅 서사>에서 주인공인 영웅이 텍스트 내에서 수행하는 행위를 범주화 전형화하면   ‘임무수행’, ‘낙원탐색’, ‘탐색모티브’의 세 가지 기능으로 목록화된다. 먼저 임무수행은 <영웅 서사>의 가장 오래된 형태이다.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신화와 민담의 영웅담은 대부분 임무수행 기능을 지닌다. 영웅이 치르는 신화적 모험의 표준 괘도는 통과 제의에 나타난 양식 곧 분리 - 입문 - 회귀의 확대판이며 이 양식은 단일 신화의 핵단위라고 명명할 수 있다. 곧 영웅은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경이의 세계로 떠난다. 여기에서 그는 엄청난 세력과 만나고 결국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다. 영웅은 이 신비스러운 모험에서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세계로 돌아온다.7) 주인물이 신이나 왕 또는 다른 인물에 의해 임무를 부여받고 그것을 완수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임무 수행은 임무의 성격에 따라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외면적 변화가 수반된다. 여행의 동기와 목적이 중요시되며, 여행지의 선택은 임의적이다.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오는 순환적 구조를 지니나, 임무가 타자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닌 자의에 의한 경우, 주인물은 돌아옴의 귀로를 택하는 대신 정착 또는 새로운 모험에로의 여로에 나선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후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향수가 흔적처럼 남아있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낙원을 꿈꾸며 살아가며, 개인은 물론 구조적인 모순과 관련된 집단적 차원의 좌절을 극복할 수 없을 때에 보상심리로써 그 같은 모든 문제가 제거된 낙원을 꿈꾸는 이야기의 출현은 당연한 것이다.8) 영웅서사의 두 번째 인물기능인‘낙원 탐색’은 인간의 힘으로 다시 회귀할 수 없는 낙원에의 열망을 초월적인 영웅의 힘을 빌어 이루어보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망의 소산이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모세 이야기’가 전형적인 낙원 탐색형 영웅 서사이다. 

‘탐색모티브’는 ‘임무수행’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 신화와 민담에서 광범위하게 보여지고 있는 형태이다. 서사문학에서의 탐색이란, 탐색 주체가 결여된 사물을 찾기 위해 장애요인을 제거해 가면서 여행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서의 탐색이란, 잃어버린 옷깃의 단추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그 어떤 것을 찾음을 의미하며, 전형적인 탐색담은 ‘탐색목적물’, ‘영웅’, ‘여행’, ‘시련’, ‘장애자’, ‘원조자의 여섯 가지의 필수적인 요소를 가진다.9) ’타계여행모티브‘나 ’지하 대적 퇴치설화‘ 등은 탐색모티브의 고전적 원형이며, 여행과 영웅과 탐색은 분리시킬 수 없다. 곧 여행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주인물(영웅)의 고독한 탐색인 것이다.

고대에 탐색모티브는, 주인물(영웅)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거나 자신의 적대자로서의 악을 퇴치하기 위한 길 떠남에 있어, 자아와 세계간의 불화를 해소하기 위한 외면적인 탐색이다. 여기에서 주인물은 신성(神性)을 지닌 완벽한 전인격체로 자아의 내부에는 아무런 불화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자신을 적대시하는 세계와의 불화만이 있을 뿐이고, 이 불화는 용(龍), 뱀, 마귀할멈 등 외면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그러나 현대소설에 오면 탐색모티브의 성격은 바뀐다. 주인물과 세계와의 불화는 여전히 존재하나 그 표현 방식은 다르다. 신화시대의 적대자는 분명히 모습을 드러내나, 산업사회의 적대자는 분명치 않다. 오히려 불화는 주인물의 내부에서 일어난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완전한 존재가 아니며, 세계와의 불화에 끊임없이 갈등하는 나약한 존재이다. 세계는 너무도 견고하며 반대로 자아는 왜소하다. 결국 현대소설에서 탐색모티브는 세계를 제압하기 위한 외면적인 탐색에서, 세계와 타협하기 위한 인간의 자의식을 좇는 내면적인 탐색으로 변화하게 된다. ‘자아탐색’이라 명명될 수 있는데 이것은 ’임무수행‘과 같이 일종의 통과의례적 성격을 갖는다. 신화시대의 통과의례가 적대적인 세계를 제압하는 외면적인 힘을 통해 이루어졌다면, 현대 산업사회의 통과의례는 세계와의 불화를 해소하기 위한 자아 성찰적 성격이 강하다.

‘자아탐색’은 여행의 동기나 목적보다는 떠남에 의의를 두며, 여행지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태와 매개자(체)의 역할이 중요시된다. 매개자(체)는 자아탐색모티브를 해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며, ‘자아탐색’에서 매개자는 신화나 민담에 등장하는 조력자(helper)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조력자가 주인물에게 적대적인 세계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외면적인 힘을 부여하거나 방법을 제시해 주는데 비해, <자아탐색>의 매개자는 주인물의 자아 성찰에 영향을 끼치는 내적 역할을 수행한다. 돌아옴의 귀로에서 주인물은 -임무수행 모티브와는 달리- 내면적인 변화를 수반하는 역동성을 갖는다.

   

2-2. 여행 구조 유형

캠벨은 세계의 신화, 전설, 동화를 면밀히 검토한 끝에 주인물의 신화적 모험의 과정은 ① 떠남 (격리departure) ② 통과 (입사initiation) ③ 회귀 (귀환return)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10) 이처럼 <영웅 서사>의 고전적 원형은 돌아옴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여행이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귀환을 필연적으로 강요하지는 않는다.

‘임무수행’에서 주인물은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 그곳에 정착할 수도 있으며,11) ‘낙원탐색’은 떠난 곳으로 돌아오기보다는 새로운 낙원을 찾아 끝없이 여행하기도 한다. ‘자아탐색’에서는 이야기의 진행에 돌아옴 자체가 빠지거나 생략되기도 하는데, 이는 ‘자아탐색’에서 여행의 과정과 그에 따른 주인물의 내면적인 변화가, 돌아옴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제 살펴볼 <영웅 서사>의 두번째 유형인 ‘여행 구조’ 유형은, 여행지에서의 돌아옴 여부에 따라 ‘정착’과 ‘귀환’, ‘미로’의 세 가지 층위를 갖는다. 이것은 다시 출발과 돌아옴의 의지 주체에 따라 ‘자의’와 ‘타의’로 세분된다. ‘인물 기능’ 유형이, 주인물이 수행하는 여행의 목적과 기능에 따라 분류되었다면, ‘여행 구조’ 유형은 출발과 돌아옴의 의지 주체가 자의냐, 타의냐 여행지에서 귀환하느냐, 정착하느냐, 아니면 다시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냐느냐에 따라 분류된다.

 ‘정착 구조’는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즉, 주인물이 머무르고 있던 곳이 그에게 적대적이거나, 그의 이상(理想)을 펼치기에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공간과 자아의 대립이 결국 주인물에게 출발의 의지를 마련해주며, 그의 여로는 이미 ‘정착’을 상정하고 있다. ‘정착’은 출발 의지에 따라, ‘자의 출발 정착’과 ‘타의 출발 정착’으로 세분된다. ‘자의 출발 정착’은 고대 영웅 신화, 특히 건국신화에서 대표적으로 보여지는 유형이다. 영웅은 자신에게 적대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로 나간다. 그의 여행은 일견 도피나, 저항을 포기한 안이한 대응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기실 그에게 주어진 시련은 더 넓은 세상에 대한 도전을 가능케 해 주는 입사제의의 변형된 모습이다. 자신에게 적대적이며 한편으론 안이한 세계에서 벗어난 영웅은 여행지에서 또 다른 시련에 봉착한다. 그러나 출발지에서의 시련이 영웅의 필요 조건이었다면, 도착지에서의 시련은 영웅의 충분 조건이다. 영웅은 두번째 시련에 맞서 싸워 이김으로써 명실상부한 영웅의 지위를 획득하며, 적대적인 세계를 자신의 세계로 만들어 버린다. ‘정착’은 자신의 세계를 획득한 영웅의 뿌리내리기이며, 그의 험난한 여로의 대단원이다. <고구려 건국신화>의 주몽이나, <백제 건국신화>의 비류와 온조, 고구려의 유리왕 등이 ‘자의 출발 정착’의 전형적인 영웅들이다. ‘자의 출발 정착’의 현대적인 형태는 1930년대 계몽주의 소설들인 이광수의 『흙』, 심훈의『상록수』등에서 발견되어 진다. 여기에서 주인물들은 건국신화의 영웅들과는 달리, 자신의 이상을 펼치기 위해 여행을 떠나며, ‘정착’은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의지의 발현이다. 

‘자의 출발 정착’의 여로가 도전과 모험의 성격을 갖는다면, ‘타의 출발 정착’은 패배적이고 무기력한 도피의 성격이 짙다. 이것은 출발의 계기나 의지 주체의 차이에서 기인하며,  뛰어들음과  내쫓김의 차이이다. ‘타의 출발 정착’은 ‘자의 출발 정착’과는 달리, 여행의 목적이나 정착지 그리고 여행의 임무 등이 뚜렷하지 않다. ‘타의 출발 정착’은 자아와 적대적인 세계와의 대립에서 패배하고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는 것이기에 출발부터 이미 비극성이 내포되어 있다. 이 비극성은 한편 출발지에 대한 회귀의 염원을 담고 있는데, ‘타의 출발 정착’에서 출발지는 고향 또는 영원한 행복의 공간으로서 낙원과 동일시 된다.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끊임없는 향수와 회귀 본능은 ‘타의 출발 정착’의 비극성을 가증시킨다.

‘귀환 구조’는 떠날 때 이미 돌아옴을 전제로 하며, 떠남과 돌아옴의 공간이 일치하는 구조이다. ‘귀환 구조’에서 여로의 시작과 끝의 갖는 공간의 동일성은 떠남이 돌아옴을 필연적으로 전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귀환 구조’는 여행의 목적이 뚜렷하며 여행의 목적지는 확실히 정해져 있다. 여행 도중 만나는 매개자(체)의 역할이 텍스트의 해석에 중요한 작용을 하나, 그것이 항상 주인물의 내면적인 변화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매개자(체)는 임무의 성취를 도와주기 위한 조력물의 성격을 갖는다. ‘귀환 구조’는 떠남보다는 돌아옴을 더 중시하며, 떠남의 공간과 여행지의 공간 사이의 내적인 거리가 돌아옴의 해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귀환 구조’도 의지 주체에 따라 ‘자의 출발 귀환’과 ‘타의 출발 귀환’으로 나누어진다. ‘자의 출발 귀환은 ’자의 출발 정착‘과 같이 그 연원을 신화나 전설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임무수행‘ 기능을 갖고 있는 대부분의 <영웅서사>는 ’귀환 구조‘를 갖는다.

‘임무수행’에는 임무를 부여하는 부여자와 임무를 수행하는 수행자가 존재한다. 부여자는  수행자에게 임무를 부여하며, 그에 합당한 보상을 제시한다. 수행자는 자의로 여행을 떠나며, 그의 귀환은 임무를 완수한 후에 이루어진다. 캠벨이 세계의 신화, 전설, 동화를 면밀히 검토한 끝에 주인공의 신화적 모험의 과정을 떠남 - 통과 - 회귀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나, 방 쥬네가 격리- 입사 - 귀환으로 영웅 신화를 나눈 것12) 모두 <영웅 서사>중 ‘임무수행’ 기능과 ‘자의 출발 귀환’을 근거로 이루어진 작업들이다.

‘자의 출발 귀환’의 설화적 형태가 ‘임무수행’ 기능과 연관되어 있다면, 그것의 현대적 양상은 ‘자아탐색’과 연결된다. 신화의 세계에서 적대적인 세계에 대한 탐색이 외부로 향해 있다면, 현대에 탐색은 오히려 내면 세계를 지향한다. 신화세계에서 적대자는 용(龍), 괴물, 마귀 같이 뚜렷한 형상으로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반면, 현대 산업사회에서의 적대자는 그 모습이 뚜렷지 않거나, 아니면 견고한 세계와의 대립에서 패배한 불안한 자아(自我) 곧 자기 자신이 적대자일 수 있다. 적대자가 외부에서 내부로 전이한 것은, 이제 인간이 제압할 수 있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실존적인 성찰이 근거가 된다.

‘미로 구조’는 귀환이나 정착과는 달리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유형이다.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은, 주인물의 여로가 뚜렷한 목적지는 갖고 있지 않으나 뚜렷한 목적은 갖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진다. 목적지를 찾기 위한 주인물의 끝없는 여로는 이미 비극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귀환이나  정착과는 달리 공간적인 지향점이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영웅 서사>의 하위 개념들을 정리해 보았다. 이상 여섯 가지 하위 유형들의 텍스트 자질들을 (+) (-) 표지로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도표에서 (+) 표지는 뚜렷하게 나타남을, (-) 표지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음을, (±) 표지는 뚜렷하게 나타날 수도, 불분명하게 나타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서사 구조>

 

임무수행

낙원탐색

탐색모티브

귀환 구조

±

  -

±

정착 구조

±

±

  -

미로 구조

  -

  +

±

                 

             

                                   <이야기 층위> 

 

임무수행

낙원탐색

탐색모티브

여행의 동기

+

  +

±

매개자의 등장

+

±

  +

여행지의 선택

  +

  ±

-

주인물의 변회

  +

±

±


3. 영웅 서사의 디지털적 변용 - 온라인 게임 서사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살펴본 <영웅 서사>의 구조적 특징이 기존의 관습이라면, 컴퓨터 게임 서사는 그것을 디지털적 변용을 거쳐 새로운 양식으로 재규정한다. 디지털적 변용 과정은 다시 ‘PC 게임’과 ‘온라인 게임’으로 나뉘어 그 양상이 다르게 진행되는데 이 논문에서는 온라인 게임의 디지털적 변용 과정에 초점을 맞춰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13)

먼저 온라인 게임의 영웅 서사에서 영웅은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자리바꿈한다. 영웅-주인공은 ‘그’가 아니라 ‘나’가 되며, 유저는 독자로서가 아니라 행위자로서 서사 진행에 능동적으로 개입한다. 전통적인 영웅 서사물에서 영웅-주인공은 혼자이지만 온라인 게임 영웅 서사물에서 영웅-주인공은 무수히 많은 불특정 다수이다. 온라인 게임의 필드 안에서 만나는 수많은 유저들이 각각 영웅-주인공의 인물 기능을 수행하며, 그들은 동일한 임무수행이나 목표를 놓고 경쟁하거나 협력한다. 전통적인 영웅 서사에서 임무 부여자나 조력자, 적대자의 역할은 온라인 게임 영웅 서사에 오면 NPC가 대신한다.14) 전통적인 영웅 서사에서 임무 부여자, 조력자, 적대자가 고정적이고 확정적인데 반해 온라인 게임 영웅 서사의 서사 상황에는 수많은 NPC들이 존재하는데 어떤 NPC를 만나느냐에 따라 서사는 자의적이고 임의적으로 진행된다. 임무 부여자, 조력자, 적대자의 선택은 전적으로 유저의 권리이며, 그 선택에 따라 동일한 필드 안에서 영웅-주인공들은 각각 다른 서사 동선을 소유하고 경험할 수 있다. ‘서사 동선의 소유’ 역시 온라인 게임 영웅 서사만의 독특한 변용이다. 유저는 게임을 즐기다 아무 때고 현실 공간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데, 이때 그동안 진행해왔던 서사 동선은 자동적으로 온라인 게임 서버에 저장된다. 다음에 다시 유저가 게임에 접속하였을 때 저장되었던 서사 동선이 ‘불러오기’를 통해 자동적으로 호출되고, 서사는 마지막 접속을 마쳤던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되어진다. 전통적인 영웅 서사에서 서사 동선은 독서 과정 중에 독자의 머리 속에 기억으로 저장되었다가 새로 독서를 시작하면 희미하게 복원된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은 그 기억을 컴퓨터가 대신 해 줌으로써 완전한 형태의 서사 동선을 아무 때고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주체적 행위자로서 서사에 참여하지만, 그 기억을 컴퓨터에 의지함으로써 온라인 게임의 서사는 전통적 서사의 아날로그적 기억을 디지털화한 DB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두 번째, 온라인 게임 영웅 서사의 인물 기능은 ‘임무수행’에 집중되어 있다. ‘낙원탐색’은 ‘임무수행’과 겹쳐져 나타나고, ‘자아탐색’ 같은 ‘탐색 모티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전통적인 영웅 서사를 온라인 게임 영웅 서사가 이어 쓰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 배경은 사뭇 다르다. 전통적인 영웅 서사에서 ‘자아탐색’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영웅이라는 설정 자체가 초월적이고 전인격적인 존재라는 신화적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온라인 게임 영웅 서사에서는 기술적인 한계와 관련이 있다. 온라인 게임의 소스는 ‘패턴’과 ‘루프’. ‘반복’에 의해 프로그래밍된다. 무수히 많은 경우수가 존재하기는 하나 A라는 행동에는 B라는 반응이 이미 구조화되어 있다. 따라서 그 기계적 설정 사이에 갈등이나 불안이 개입해 들어갈 여지가 없으며 영웅-주인공은 A라는 행동을 할 것인가 B라는 행동을 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는 있지만, 그 반응을 수정하거나 받아들이기를 거부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행동에 언제나 확신과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게임 서사의 진행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내면을 들어다 본다는 것은 회의와 불안의 소산이다. 전통적인 서사에서 영웅은 회의와 불안 같은 인간적인 약점을 극복하거나 초월하였기에 영웅을 칭호를 부여받을 수 있었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그런 영웅의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이미지가 ‘놀이’의 영역 안에 자리 잡게 됨으로써 ‘자아탐색’의 인물 기능이 기술적으로 매끈하게 봉쇄되었다. 놀이를 심각하게 고민하여 즐길 유저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전통적인 영웅 서사가 하나의 임무와 그 수행에 모든 서사를 집중하는데 비해, 온라인 게임 영웅 서사는 다양한 임무가 준비되어 있고, 하나의 임무가 끝이 나면 다시 새로운 임무가 부여된다. 그리고 그 임무수행은 끝없이 계속 진행된다. 만약 임무 수행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온라인 게임은 더 이상 게임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온라인 게임의 서사는 기실 임무수행의 서사이며, 아무리 어려운 임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유저에 의해 수행되고야 만다. 따라서 임무가 수행되면 그것으로 서사가 종결되는 전통적인 영웅 서사와 달리 온라인 게임 영웅 서사는 항상 새로운 임무를 마련해 놓아야 한다.15) 전통적인 영웅 서사가 공주를 구하가나 보물을 획득하거나 전쟁에서 승리하는 등의 퀘스트 중심의 임무인데 반해, 온라인 게임의 영웅 서사는 관습적인 퀘스트 수행에 더하여 레벨업이나 아이템 획득 등의 임무가 양식화되어 새롭게 부여된다. 그리고 이 임무들의 수행을 통해 영웅-주인공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강해지는’ 것이다. 전통적인 영웅 서사에서 ‘보상’이라는 의미는 공주와의 결혼이나 권력이나 부의 획득 등 권선징악적인 요소를 지니며 곧 서사의 결말을 의미한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 영웅 서사에서 ‘보상’은 결론이 아니라 강해지는 ‘과정’에 불과하다.16) 자신만이 영웅-주인공일 때는 강함을 비교할 대상이 없기에 현재 자신의 수준에 만족할 수 있지만, 온라인 게임 영웅 서사에서는 수없이 많은 영웅-주인공이 있고, 유저인 ‘나’는 항상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거나 비교당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강해지기 위해서는 임무를 수행하며 하며(그래서 계속 새로운 임무가 부여되어야 하며), 강해지고자 하는 욕망에는 끝이 없고(필드 상의 수많은 영웅-주인공들 역시 그 욕망을 위해 서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그 욕망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계속 새로운 임무가 부여되기 때문에). 따라서 전통적인 영웅 서사와 달리 온라인 게임 영웅 서사는 결코 완결될 수 없는 것이다.

네 번째, 전통적인 영웅 서사가 목적지가 분명한 귀환형 구조라면 온라인 게임 영웅 서사는 목적지가 없는 미로 구조이다. 목적지가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는 서사의 완결성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목적지가 존재한다는 것은 출발지도 역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출발지에서 임무를 부여받고,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목적지로 여행을 떠나고 목적지에 도착해 임무를 완수하면 다시 임무가 부여됐던 출발지로 보상을 받기 위해 귀환하는 것이 전통적인 영웅서사의 일반적인 관습이라면, 온라인 게임의 영웅 서사는 그 전개 방식이 결코 관습적이지 않다. 영웅-주인공은 임무를 부여받고 목적지로 향한다. 임무를 수행하면 다시 돌아와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 다시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는다. 떠난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점차 강해지면 영웅-주인공은 다시 새로운 임무 부여자를 찾아낸다. 그를 만나 다시 동일한 과정을 반복한다. 강해질수록 영웅-주인공은 거기에 맞는 새로운 임무 부여자를 찾아내야 하고, 임무에 맞는 새로운 목적지로 여행을 떠나야 하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서사는 끝도 없이 진행되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 영웅 서사에서 정착 구조는 결코 가능하지 않는데, 정착한다는 것은 곧 더 이상 게임을 진행시키지 않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가상 세계를 오로지 강해지겠다는 목적 하나로 끊임없이 여행하는 온라인 게임의 영웅-주인공은 정착을 거부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정체성이 놀이문화와의 결합을 통해 전형적으로 양식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통적인 영웅 서사에서는 주인공의 성별이 서사 진행에 큰 영향을 주지만, 온라인 게임 영웅서사에서는 주인공의 성별이 서사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전통적인 영웅 서사의 주인공은 주로 남성들이었다. 여성들은 남성 영웅에게 부여된 임무의 대상이거나 임무 수행의 보상으로 존재하였다. 남성 영웅들은 大義나 正義를 실현시키기 위해 당당하게 주어진 임무를 받아들이지만, 남성 영웅에 비하면 수적으로도 열세인 여성 영웅들은 아버지의 병을 고치거나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길을 떠난다. 그리고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도 남성 영웅들이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통해 완수하는데 비해 여성 영웅들은 남성 조력자의 도움이나 조언을 통해 비로소 완수하게 된다. 임무수행의 동기나 원인이 남성 영웅(大義나 正義를 실현)과 여성 영웅(孝나 愛情)에게 이처럼 다르게 나타나고 그 과정 역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성별에 따른 편견이 영웅 서사의 구조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 영웅 서사에서 성별은 유저가 선택해야할 수없이 많은 선택 사항중 하나일 뿐이다.17) 남성을 선택하나 여성을 선택하나 게임의 서사를 진행하는 데는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강해진다’는 목적 또한 두 성별 모두 동일하다. 온라인 공간의 익명성 보장이라는 문화적 배경이 온라인 놀이 문화인 게임에도 삼투되어 들어간 것이다.



4. 영웅 서사 텍스트 분석

      - 신화 ������바리데기������와 고소설 ������홍길동������, 그리고 온라인 머드 게임 ������천상비������


������바리공주』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안 무속 신화이다.18) 서사단락을 시간의 계기성에 따라

나누면 다음과 같다.


  ① 삼나라를 다스리는 어비대왕이 길대부인을 왕비로 맞는다.

  ② 복자의 말을 무시하고 혼례를 올려 딸만 여섯을 낳는다.

  ③ 일곱번째도 딸을 낳자  바리공주 라 이름을 지어주고는 강에 버린다.

  ④ 석가세존이 아이를 발견하고는 비리공덕 할아비와 비리공덕 할미에게 주

     어 키우도록 한다.

  ⑤ 바리공주가 15세가 되던 해, 어비대왕이 중병을 얻고 누우니  바리공주를

     만나고자 한다.

  ⑥ 아버지를 만난 바리공주가 아무도 안 가겠다는 약수를 찾아 길을 떠난다.

  ⑦ 무장승을 만나 이들 일곱을 낳아주고는 약수를 얻는다.

  ⑧ 무장승과 아들 일곱을 데리고  돌아오나 이미 어비대왕과 길대부인은 세

     상을 떠났다.

  ⑨ 가져온 약수로 부모를 다시 살려낸다.

  ⑩ 어비대왕은 바리공주에게 죽은 영혼을 저승에 인도해 주는 무당이 되도록

     해 주었다.19)


『바리공주』의 서사단락은 크게 둘로 나뉜다. ① - ⑤ 까지가 전반부이며, ⑥- ⑩ 까지는 후반부이다. ① - ⑤는 바리공주의 예사롭지 않은 탄생과 부모에 의해 버려짐,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통해 그녀의 영웅적 품성을 들어내고 있다. 기아(棄兒)모티브는 영웅에게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이 시련을 견디어냄으로써  -운명을 거부하고 운명을 만들어내는- 영웅으로서 인정을 받는다.) 고주몽,비류와 온조,석탈해 등은 모두 기아모티브를 통해 영웅의 품성을 획득한 인물들이다.

강물에 던져진 바리공주는 금거북이의 등을 타고 떠내려가다 석가세존에 의해 발견된다. 석가세존은 바리공주의 신성(神性)을 부각시켜주는 인물이며, 그녀를 맡아 키운 비리공덕 할아비와 비리공덕 할미는 그녀가 영웅적 품성을 닦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이다.20)

① - ⑤가 바리공주의 영웅적 품성을 드러내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면, ⑥ -⑩에서 바리공주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영웅의 명예를 획득하게 된다.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봉내방장 무장승의 양현수가 필요하지만 여섯 언니들은 그 험한 길을 아무도 안 가려 한다. 이에 바리공주가 홀로 길을 떠나게 되고 석가세존의 도움으로 무장승을 만난다. 그러나 무장승은 그녀에게 길 값, 삼(蔘) 값, 물 값으로 9년의 노동과 자신과 결혼하여 아들 일곱을 낳아주기를 요구한다. 이 요구를 모두 들어준 바리공주는 드디어 양현수를 얻게 되고, 그것으로 죽은 부모를 다시 살려낸다. 이 영웅적인 행위의 보상으로 바리공주는 무당이 되며, 그녀의 일곱 아들은 저승의 십대왕이 된다.

이 상 살펴본『바리공주』 신화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서사구조가 일치하는 형식상 특징이 발견되어 진다. 편의상 ① - ⑤의 서사단락을 ⓐ 형으로, ⑥ - ⑩의 서사단락을 ⓑ 형으로 나누어 서사구조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 ⓐ 형 >                                                         

   여행      금거북이     석가세존    비리공덕 할아비 비리공덕 할미 

   (버려짐)   (중개자)       (안내자)                    (조력자)      

                                                                       

   천민의 딸에서 일국의공주로 신분상승 (외면적변화)       귀환

                                 - 15 년 -

     < ⓑ 형 >                       

    여행       까막까치         석가세존                     무대승 

   (길떠남)     (안내자)         (중개자)                     (조력자)

                                                                            

   공주에서 죽은 영혼을 인도해 주는 신으로 지위상승(외면적변화)  귀환

                                 - 15 년 -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바리공주』 신화는 두개의 삽화로 이루어진,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새로운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영웅담이다. 이같이 한 텍스트 안에서 동일한 서사구조의 반복은 다른 영웅담에서는 발견되어지지 않는 독특한 것이며, 임무수행의 목적이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한 효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서양의 영웅담과는 변별되는, 우리 선조들의 유교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바리공주의 임무는 정치적 지배나 역사적 이념과는 거리가 멀다. 바리공주가 추구한 것은 인간의 생명이다. 그러나 단지 육신의 생명만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죽은 영혼들에 대한 왕생천도는 바리공주의 역할이 보다 근원적인데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그녀의 역할은 그녀가 지상의 왕국에서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엄청난 상황의 역전을 보여준다. 지상적 존재에서 천상적 존재로, 버려지는 존재에서 구원하는 존재로의 전환은 이를 위한 중재적인 힘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바리공주』신화에서는 윤리적인 효, 도덕적인 선의 관념으로 표출되었다.21)

������바리공주』신화는 부모의 병을 고칠 약수를 구하러 떠난다는 뚜렷한 여행 목적, 돌아오는 순환성, 그리고 보상으로 주어지는 외면적인 변화 등 전형적인 <임무수행>의 특성을 지니는 영웅담으로서 여성 영웅 서사의 전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텍스트이다.22)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임무수행>을 수행하는 설화중 [건국신화]는 여행지에 정착을 하며 주인물이 남성인 반면, [무속신화]는 출발지로 귀환하며 주인물은 주로 여성이라는 점이다. 이 변별성은 중요한 문학사회학적 의미를 지니는데, 즉 남성이 갖는 힘은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여 역사를 창조하고 이끌어나가는 추진력으로 표현되는 반면, 여성은 여자만이 지닌 출산에 대한 신성한 인식을 바탕으로 (바리공주나 당금애기 모두 사내아이를 출산한다) 가부장적 권위에 순응하거나 남성의 위대성을 부각시켜주는 보족적인 존재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이같이 설화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가부장적인 남성우월의식은 서사구조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다른 형태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고소설인『홍길동전』은 홍길동이라는 영웅을 중심으로 그의  일대기를 연대기순으로 서술한 영웅소설이다. 고대소설은 주인공의  출생에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생애가 연대기적으로 서술되며 인과관계가 중시되는 전통적인 플롯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서사적 자아와 세계의 갈등이라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영웅의 일생과 유교적 질서의 승리이다.우선『홍길동전』의 서사단락을 알아보자.

    

 ① 홍길동이 용꿈을 태몽으로하여,홍판서와 시비 춘섬 사이에서 태어나다.

 ② 재주는 뛰어나나 서자라는 신분적 모순으로 갈등하며 무술을 연마하다.

 ③ 홍판서의 애첩 초란의 음해로 위기에 빠지나,극복하고 집을 떠나다.

 ④ 도적의 무리에 뛰어들어 두령이 되고,'활빈당'을 만들어 의적이 되다.

 ⑤ 자신으로 인해 아버지와 형이 곤경에 빠지자 스스로 잡히다.

 ⑥ 병조판서를 제수받자,크게 감읍하고는 남해의 섬으로 떠나다.

 ⑦ 섬에 있던 괴물을 퇴치하고,율도국이란 나라를 쳐서 스스로 왕이되다. 

 ⑧ 홍길동은 천수를 누리고,그의 자손들은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다.


이상 정리한 서사단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홍길동전』은 영웅의 일생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영웅적인 주인공을 통하여 봉건적 질서를 확인하려는  윤리의식이 강하며 다분히 공식적인 구성을 하고 있다. 그러한 경향은 고대소설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플롯의 전개 역시 순차적 연대기적 전개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공식적인 구성은 민담, 신화, 역사, 전설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따라서 서사단락들 간에 인과관계만 설정이 되지 않는다면 플롯이라기보다 스토리를 정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은 집을 떠나면서 자신의 능력을 억압하는 신분제도와 중세봉건적 질서라는 명백히 그에게 적대적인 세계를 인식하였다. 그는 활빈당이라는 의적의 무리를 통해 중세봉건질서를 우롱했으며, 율도국을 통해 신분제도에 대한 통쾌한 복수를 하였다. 자의에 의한 임무수행이기에 율도국이란 새로운 땅에 정착하였고, 주어진 보상은 미천한 서자에서 일국의 왕이라는 신분의 상승이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천상비(http://www.1003b.com)는 하이윈에서 제작한 MMORPG로 2001년 1월에 오픈 베타 서비스를 실시하였고, 2002년 5월에 정식 상용화 서비스를 개시한 국내 대표적인 무협 온라인 게임이다. <천상비>의 게임 외부 서사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랑비 촉촉히 내리는 새벽 북망산 관도

생사를 건 탈출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두 명의 사내와 갓 세 돌을 넘긴 아이….


하루 아침에 정체 모를 복면인들에게 멸문지화를 당한 제일세가

그 마지막 남은 혈육을 지키기 위해 호법인 일주와 소룡은

어린 소가주를 품에 안고 피신 중이었다.

차가운 길 위에 붉은 선혈을 뿌리며 쓰러진 일주의 비명을 뒤로 한 채….

혈혈단신으로 남겨져 낙양성 왕대협의 손에 자라난 아이는

15년의 세월이 흘러 비로소 무림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 기나긴 풍운의 소용돌이를 짐작조차 못한 채….


천(天)·상(上)·비(碑)


그 전설을 향한 웅보(雄步)를 떨치게 된다.

 

게임 외부 서사와 별도로 마련된 게임 내부 서사는 3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막과 2막은 시나리오로 마련되어 있고, 3막은 추후 업데이트 예정이다. 1막은 다시 3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장의 시나리오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 1 막

Prologue 

차가운 빗줄기를 뚫고 생사의 탈출을 한 제일세가의 호법 일주와 소룡,

그리고 제일세가의 마지막 남은 혈육인 당신….

하루 아침에 정체 모를 괴영들에게 멸문지화를 당하고

이제 갓 세 돌을 넘긴 소가주(少家主)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차가운 길 위에 붉은 선혈을 뿌리며 쓰러져 간 일주를 뒤로 한 채

어린 소가주(少家主)를 품에 안고 어둠을 향해 내달리는 소룡의 가슴은

서러운 분노로 일렁인다.


제 1 장 무림출도 (武林出道)

붉디 붉은 꽃잎처럼 낙양성 관도에 뿌려진 일주와 소룡의 피의 의미를, 아니 그 존재조차 모른 채 왕대협의 손에 키워진 당신의 과거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느덧 희미한 기억으로 스러져 간다.

왕대협은 어느덧 장성한 당신에게 무림에의 출도를 권하고,

혈기와 호기심에 가득 찬 철없는 당신은 낙양성 주변에서의 수련을 시작으로 무림인으로서 첫 발을 딛게 된다.

수련 중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된 북망산의 요기를 쫓아간 당신, 그리고 북망강시황과의 일전으로 알게 되는 무림에 드리운 어둠의 그림자.

당신은 천하무림을 위해 음모를 파헤쳐보지만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힘에 대한 강한 욕구가 당신을 무의 세계로 조금씩 더 깊게 빠져들게 한다.

숨겨진 왕릉 지하석실, 장군묘에서의 모험으로 내공이 깊어지게 되어 점점 더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붙은 당신은 낙양 일대에서 악명 높은 산적두목 양철심까지 물리치게 된다.

양철심을 물리치고 얻게 된 무기에서 무공의 기본을 깨우치자,

이것을 계기로 천하에 떠도는 무수한 전설과 비사를 찾아

당신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 그것을 알고 싶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


게임 외부 서사와 게임 내부 서사를 살펴보면 <천상비의 서사>는 일반적인 무협지의 서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무협지 줄거리를 요약해 놓은 정도의 빈약한 서사가 시나리오의 전부인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리데기������나 ������홍길동전������과 비교해 보면 서사의 짜임새나 구성 면에서 <천상비>는 서사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하다. 그러나 실제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게임 내부 서사의 빈약함이 사실은 유저로 하여금 다양한 선택과 판단, 결정을 할 수 있게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게임 내부 서사는 주인공에게 주어진 임무를 간략하게 설명해 놓은 것에 불과하며 유저가 어떤 방식으로 플레이 하느냐에 따라 실제 게임 서사는 개개인마다 다르게 경험되며 다른 방식으로 완성된다. 영웅-주인공이 능동적인 행위자 ‘나’임으로 주어진 임무도, 임무 수행에 따른 보상도 유저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서사를 만들어 나가는 책임이 유저 자신에게 있다는 의미이며, <천상비>의 주어진 서사가 빈약하고 허술하지만 오히려 텍스트에 대한 몰입의 강도가 전통적인 영웅 서사에 비해 더 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천상비는 남 · 녀 캐릭터의 성별을 유저가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캐릭터의 그래픽이 달라질 뿐 성별에 따른 어떠한 차별도 없다. 또한 남 · 녀 간에는 결혼을 할 수 있으며 결혼 후 기타 무공을 하나 더 배울 수 있다. 성별의 차이는 없는 대신 캐릭터의 성격과 배우는 무공에 따라 다양한 캐릭터로 육성할 수 있다. 천상비에는 정파와 사파라고 불리는 성격이 있는데, 성격은 게임의 단순한 진행을 조금이나마 차이를 두어서 흥미를 유도하고, 재미를 얻게 하고자 하는 것임으로 성장이나 능력치 차이는 없다. 정파, 사파는 서로 다른 무공을 배우게 되고 퀘스트가 다르게 진행되며 성격이 다른 방파에는 가입을 할 수 없다. 필드 상에서 정파-캐릭터는 파란색으로 사파-캐릭터는 분홍색으로 구분된다. 또한 천상비는 검(劍) · 도(刀) · 창(槍) · 조(爪)라는 직업의 종류가 있다. 처음 캐릭터를 만들 때 검, 도, 창, 조 중 한 가지를 선택하면 게임 시작 시에 그 종류의 기본 무기가 주어진다. 무기는 각 직업의 종류별로 50여 개가 넘게 존재하며 조 > 도 > 창 > 검 > 조의 상성관계가 있다. 이 상극 관계는 PK시에 적용이 된다. 그러나 상극관계가 전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캐릭터의 특성치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생긴다. 성격에 따라 사용하는 무기에 따라 시전하는 무공에 따라 유저는 각기 다른 서사 상황을 경험하거나 만들어 나간다. 주어진 임무가 있고 그 임무만 완수하면 서사가 완결되는 전통적인 영웅 서사에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서사 양식인 것이다.

지금까지 분석해 본 결과를 표로 나타내보면 다음과 같다.

 

바리데기

홍길동

천상비

서술형식

연대기적 서술

연대기적 서술

연대기적 부분 서술

플롯 형태

단일 플롯

단일 플롯

복합 플롯

여행을 떠남

자의

자의 반 타의 반

자의

적대세계 인식

인식 못함

인식함

인식함

임무의 목적

효(孝)

충(忠)

강해짐(强)

임무의 성격

가부장적 이데올르기에 순응

중세 봉건 질서에 대한 반발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

임무의 결과

지하세계의 여신이 됨

율도국이라는 이상국가를 건설

타인보다 강해짐

서사의 완결

완결됨

완결됨

완결되지 않음

시점

3인친 관찰자

3인칭 관찰자

1인칭 행위자

 



5. 나오는 말


<컴퓨터 게임>을 위시하여 <웹아트>, <플래쉬 애니메이션>, <하이퍼 텍스트> 등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물적 도구와 공간적 지반의 마련이 탄생을 가능케 한 신(新)예술은 기왕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혁명적으로 전복시키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와 변별하기 위해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 명명할 수 있는 이 새로운 서사 방식은 서사의 과정에 독자(또는 관객)를 참여시키며, 닫혀있는 텍스트에서 열려있는 텍스트로, 문자 중심에서 문자와 영상, 음향의 복합 매체 중심으로, 선형적 구조에서 비선형적 구조로, 그동안 우리가 관습이라 여겨왔던 양식들을 파괴하며 새로운 서사 문법을 만들어내고 있다. 비록 초창기이긴 하지만, 그리고 작금의 상황이 자본주의 사회와 정보화 사회의 과도기적 좌표에 위치해 있기는 하나,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대한 인문학적인 관심은 21세기 인문학의 지평을 확장 확대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정보화 사회가 탄생시킨 새로운 서사체인 ‘컴퓨터 게임’이, 20세기 초에 탄생한 영화예술이 한 세기만에 문학을 능가하는 가장 대중적인 서사예술로 자리 잡았듯이,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고 대중적인 장르로 부상할 것이라는 확신 하에, 문학 연구 방법론을 적용하여 컴퓨터 게임의 스토리텔링 구조를 ‘영웅 서사’라는 관점에서 양식화해 보고자 하였다. 논의의 허술함과 이론적 약점은 추후 지속적인 연구와 발표를 통해 보완해 나갈 것이며, 아무쪼록 이 논문을 계기로 우리 인문학 분야에서도 컴퓨터 게임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열정이 시도되었으면 한다.


1) 국내 온라인 게임의 선두주자격인 ‘리니지’는 신일숙의 동명 만화가, ‘바람의 나라’는 김진의 만화, ‘열혈강호’는 양재현의 만화, ‘드래곤 라자’는 이영도의 환타지 소설, ‘묵향’은 전동조의 무협소설이 각각 원작이다.


2) 인문학자들에 의해 출간된 게임 연구서는 국문학자인 최유찬의 ������컴퓨터 게임의 이해������(문화과학사, 2002)와 영문학자인 류현주의 ������컴퓨터 게임과 내러티브������(현암사, 2003)가 있으나, 두 권 모두 전문서라기보다는 개론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3) 이때 공통 자질은 ‘화소話素’라는 용어로 치환될 수 있을 것이다. 기존 서사체와 컴퓨터 게임 사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의 핵 단위가 바로 화소이다.


4) 이인화 외 공저, ������디지털 스토리텔링������, 황금가지, 2003, p.59. 재인용.


5) 컴퓨터 게임 스토리텔링의 구조를 양식화하는데 있어 ‘타자적 갈등’은 중요한 시학적 단서가 될 것이다. 컴퓨터 게임 서사의 ‘갈등’ 구조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본 논문의 주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으로 다음 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6) 시모아 채트먼 저, 김경수 역,『영화와 소설의 서사구조』, 민음사, 1992. p.133.


7) 조셉 캠벨 저, 이윤기 역,『세계의 영웅 신화』, 1989, p. 34.


8) 강진옥 저, ‘한국설화에 나타난 낙원과 낙원상실’ ,『문학과비평』, 1991년 봄호, p.184.


9) W.H 오든 저, 김병욱 외 역,『문학과 신화』, 대방출판사, 1983, p. 182.


10) 조셉 캠벨 저, 이윤기 역,『세계의 영웅 신화』, 대원사, 1989, p. 34.


11) 고대의 건국신화에서 주인물은 일상적인 세계에서 분리되어, 자신과 적대적인 세계를 제압하고 그곳에 새로운 일상적인 세계를 만든다. 주인물의 임무는 귀환을 전제로 하지 않으며, 그가 세운 나라는 새로운 출발지가 된다. 고구려와 백제의 건국신화를 떠올려보라.


12) A.VAN.GENNEP 저, 전경수 역,『통과의례』,을유문화사, 1989, p.40.


13) 동일한 디지털 서사임에도 불구하고 PC 게임과 온라인 게임의 변용 과정상의 차이는 단독형, 단방향, 결말추구형의 선형적 구조를 지닌 PC 게임과 실시간 쌍방향의 인터랙티브한 상호 작용을 전제로 하는 결말지연형, 비선형적 구조의 멀티플레이 온라인 게임의 서사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14) NPC는 Non-Player Character의 약자로 몬스터나 상점주인, 마을사람들 등과 같이 유저가 조종할 수 없는 게임 상의 캐릭터를 일컫는다.


15) 국내 온라인 게임 업체들이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여 내놓은 ‘에피소드’는 임무 수행의 새로운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경과할수록 유저는 점점 강해지고 그에 따라 게임의 재미도 삭감될 수밖에 없다. 게임의 재미를 지속시켜 유저로 하여금 그 게임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계속 새로운 임무를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임무는 퀘스트의 수행이나 새로운 유니크 아이템의 획득, 물리적 수치의 증가인 레벨업 등 다양한 형태로 부여된다.


16) 퀘스트를 수행하면 금전이나 아이템의 보상이 있고, 유니크 아이템의 착용이나 레벨업을 통해 영웅-주인공은 그런 보상을 받지 못한 다른 유저에 비해 훨씬 더 강해진다.


17) RPG 게임인 <디아블로>의 경우에는 아예 직접 자체의 성별이 고정되어 있다. 아마존이나 소서리스를 직업 클래스로 선택한 유저는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여성의 성별을 갖고 게임 서사를 진행시켜야 한다. 그러나 남성 직업 클래스인 바바리안이나 팔라딘이나 여성 직업 클래스인 아마존이나 소서리스는 모두 동일한 임무를 수행하고 동일한 보상을 받는다. 성별에 따른 차별이나 불이익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1:1 PK에서 원거리 공격 캐릭인 여성 직업 클래스가 훨씬 더 유리하기도 하다.


18) 바리공주란 무녀가 주관하는 사령제 행사에서 구송되어 오던 신화로서, 바리란 버리다 에서 유래한 것이다. 지방에 따라서는 이 신화를 바리데기 또는 베리데기라고도 부르는데, 베리(바리)데기란 버려진 아기라는 뜻이 된다.


19) <바리공주>의 텍스트는 김태곤 저,『한국의 무속신화』(집문당,1985)에서 인용하였음.


20) 버려진 영웅을 데려다 키우는 조력자의 흔적은 비리공덕 할아비와 비리공덕 할미 외에도 석탈해를 데려다 키운 아진의선 할머니나 외디프스를 맡아 키운 양치기 노부부 등 전 세계 신화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21) 김열규 저, ‘한국무속신앙과 민속’,『한국무속의 종합적 고찰』, 고대 민족문화연구소 출판부, 1982, pp.87-89 참조.


22) 『바리공주』신화와 유사한 플롯을 지닌, <임무수행>이 보여지는 여성 영웅 신화로는 ������석본풀이』신화와『당금애기』신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