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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력을 키우는 읽기기술
프롤로그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읽고 쓰기'에서 '해석과 표현'으로
최근 젊은이들 중에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특히 대학생의 학력저하 문제는 학회나 연구회에 참석한 대학교수들의 입에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화젯거리이며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최근에 해가 갈수록 두드러지는 학생들의 학력저하 경향은 가히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세간에서는 간단한 수학문제도 못 풀어서 쩔쩔맨다든가, 역사나 지리 상식이 희박하다고 한탄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 중에서도 리터러시(Literacy: 읽고 쓰는 능력)가 가장 크게 퇴화한 것 같다. 그러나 리터러시가 떨어지는 것이 과연 학생만의 문제일까? 비즈니스 세계에서 활약하는 직장인은 과연 괜찮은 것일까? 리터러시란 말은 문자(letter)나 문학(literature)의 어원과 한 뿌리로 문자를 읽고 쓰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읽기, 쓰기, 연산능력을 모두 겸비한 사람은 매우 드물다. 구텐베르그의 인쇄술이 발명된 이래 이 리터러시는 국력을 좌지우지했다. 그리고 국민들의 읽고 쓰는 교육에 앞장선 국가는 당연히 선진공업국으로 발전했다. 즉 리터러시가 부강한 국가와 국민의 기반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선진국은 국민의 기본적인 교육을 기반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리터러시에 대한 요구도 바뀌었다. 지금부터 현대 직장인에게 필요한 리터러시는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로 하자.
이해력이 부족한 직장인과 학생
다수의 기업과 자치단체에서 컨설팅과 연수를 하던 나는 게이오(慶應)대학에서 새롭게 설립한 사회교육기관인 마루노우치 시티캠퍼스(MCC: Marunouchi City Campus)의 교장직을 맡았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젊은이뿐만이 아니라 중견 직장인의 리터러시가 거의 바닥을 맴도는 현실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가령 연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저명인사를 초청해서 소수의 참가자들과 세미나를 개최하곤 한다. 세미나를 마치고 나서 진행 책임자로서 수강생들에게 감상을 물어보면 한결같이 재미있었다, 유익했다라고 답한다. 그래서 어디가 어떻게 재미있었는지, 업무에 활용 가능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메모한 강연 내용 외에는 한마디도 못한다. 한 술 더 떠서 조금만 깊이 파고들어 질문해도 초청강사가 말한 기본 취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즉 말의 표면적인 의미는 알아도 논의의 개념이나 뼈대, 행간에 숨은 뜻은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논의를 발전시키는 것은 고사하고 요점을 파악해서 요약하는 것마저 불가능하다. 이것은 치명적이다. 대체 읽는 능력은 어디로 종적을 감춘 것일까? 이해력이 없는 직장인이 과연 고객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을까? 상사의 지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 부하직원이 제출한 제안서의 요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새로운 계획을 위해 정보를 해독할 수 있을까? 학생들이 교사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지 오래다. 나 역시 뼈저리게 통감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도 상사, 부하직원, 고객, 거래처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것 같다. 책이나 신문기사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정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이것은 위기다. 대체 어떻게 하면 이해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이해하지 못하면 사고의 기술은 기를 수 없다
그럼 향후 직장인에게 필요한 리터러시는 무엇일까? 단순히 문자를 읽고 쓰는 기본능력은 입시를 위한 중등교육 과정에서 충분히 훈련해 왔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리터러시는 문자를 읽고 쓰는 표면적인 능력이 아니라 심오한 의미의 읽기(해석,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와 쓰기(표현, 취지의 정확한 전달)이다. 즉 행간과 이면, 취지를 읽는 것은 문장이나 글자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의견 발표나 설명도 단순히 글자를 쓰는 것이 아니다. 심오한 수준의 리터러시가 요구된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상급 리터러시(advance literacy)라고 부른다. 이러한 상급 리터러시가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임은 두말 하면 잔소리다. 리터러시의 저하는 본인은 물론이고 미래사회의 불행이다. 요컨대 수험공부에 유용한 읽고 쓰는 능력이 아니라 지적 활동을 지탱하는 심오한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글자를 읽는 것, 이해하고 해석하며 글자를 쓰는 것뿐만이 아니라 표현하고, 설득하며, 공감하도록 만드는 능력을 단련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도성장기에서 거품경제기를 거치는 동안에는 왜 해석능력과 표현능력을 별로 문제 삼지 않았을까? 그것은 기존에는 주어진 업무나 과제에 대처하는 방법만 모색하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제시해준 명쾌한 문제의 해답만 찾으면 되었을 뿐 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거나, 그 문제의 적합성 여부를 음미하고자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즉 '어떻게(how)'에만 주목하고 '무엇을(what)'의 부분은 지시에 따르면 그만이었다. 하물며 상황에 숨겨진 본질이나 활동의 의미를 파악하는 '왜(why)' 따위는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거품경제기는 지나갔다. 우리는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도래할 정보사회를 선도하려면 시대를 읽는 능력, 시대를 의미 있게 만드는 구상능력을 습득해야 한다. 리터러시가 없는 사고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말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적 활동의 대부분은 말로 이루어진다. 지적 활동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개념이다. 개념은 잡다한 각종 이미지와 말을 일정한 관계로 연결해서 단순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때 읽거나 구사하는 능력이 없으면 지적 활동은 빈곤해진다. 아무리 사고의 기술이나 지적 생산의 기술, 혹은 최근에 유행하는 정보입수 기술이나 정보 정리법을 가지고 있다한들 그 바탕이 되는 이해력이 부족하면 애써 얻어낸 산더미 같은 데이터도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다. 사고력의 기본은 이해력, 소화력, 독해력이다. 따라서 사고력이 결여된 사람들을 거느린 기업이나 국가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유능한 인재의 조건
또 한 가지 다른 관점을 제시해 보자. PC나 전자 메일을 주판처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논의는 나름대로 정착했다. 앞서 말한 리터러시인 읽고 쓰기와 대비되는 이야기다. 지난 몇 년간 젊은 세대와 중견 직장인들의 PC와 전자 메일 사용은 완전히 보편화되었다. 정보사회에서 도태되기 싫어서 기를 쓰고 컴퓨터를 비롯한 디지털 미디어의 조작 기술을 습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 기업에서 자주 듣게 되거나 기업의 중역들이 한탄하는 진짜 이유는 컴퓨터 조작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컴퓨터를 조작할 줄은 알아도 일처리는 엉망이고, 전자 메일을 보낼 줄은 알아도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점은 학생을 지도하고 있는 나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최근 학생들의 컴퓨터 조작 기술은 수년 전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조작만 할 줄 알았지 공부는 엉망이고, 연구와 프로젝트 수행 능력도 변변치 않다. PC와 네트워크의 급속한 보급으로 우리는 조작 기술의 습득에만 열을 올렸다. 전자 메일을 보낸다든지, 편리한 웹 사이트를 알거나 디지털 프리젠테이션(DTPR: Desk Top Presentation)만 알아도 유능하다고 감탄하며 추켜세웠다. 한마디로 PC의 조작만 가능하면 귀한 인재로 대접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술이 보편화된 순간, 정작 중요한 것은 조작 기술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다. 조작 기술은 필수이고 그 기술로 디지털 미디어에서 입수한 정보를 활용할 줄 알아야 유능한 인재로 평가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조작 기술을 가진 기술자가 아니라 업무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앞으로도 조작 기술은 업무처리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할 테지만 조작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유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유능한 인재의 기본조건은 읽고 쓰는 능력이다. 물론 그러한 능력을 갖췄다고 반드시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리터러시가 떨어지는 사람치고 유능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적어도 유능한 사람은 읽고 쓰는 능력도 탁월하다. 그리고 리터러시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이해력만큼은 반드시 단련해야만 한다.
세 가지 지적 탐구능력
지적인 활동 중에서 지적 탐구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1. 현지조사능력: 인터뷰 등 각종 조사 기법에 의해 현장에서 실제적이고, 직접적으로 진행하는 탐구능력 2. 자료조사능력: 도서관이나 웹 사이트를 이용하여 문헌이나 지적 정보를 검색ㆍ탐색하는 탐구능력 3. 실험조사능력: 사고실험이나 모의실험(시뮬레이션) 등을 포함한 한정된 조건하에서의 탐구능력
직장의 경우는 이 중에서 실제적이면서 직접적으로 취재하는 현지조사가 중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현지조사에서 얻은 취재 데이터를 모종의 형태로 가공해서 지적 생산물로 만든다.
세 가지 지적 활동은 실제와 가상의 쌍방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지적 구축물,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지적인 기호체계(문자ㆍ그림ㆍ화상ㆍ영상 등)로 가공한 생산물(예를 들어 문헌)을 해독해서 정보를 얻기도 할 것이다. 이것은 넓은 의미의 자료수집이다. 본래 자료수집은 종이매체에 실린 지식이 전부였던 시대에 도서관이 소장한 방대한 문헌에서 지식을 탐구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때로는 실험실에서 플라스크와 같은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머리 속으로 연상하면서 결과를 유추하는 멘탈시뮬레이션(mental simulation)이나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 현지조사, 자료조사, 실험조사의 세 가지 활동이 현실세계뿐만이 아니라 가상(사이버) 세계에서도 이루어지므로 6가지(3×2)의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그림 0-1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