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연구에서의 ‘글쓰기’ 문제


趙  寬  熙*



1.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1), 조음 기관을 통해 만들어진 공기의 울림으로 전달하는 ‘말’과 문자로 표출하는 ‘글’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말을 하는 것과 달리 글을 쓴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청산유수로 말을 퍼부어대는 웅변가도 편지글 한 줄을 쓰기 위해 날밤을 새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억은 누구나 갖고 있게 마련이다. 오죽하면 글쓰기의 어려움을 자신의 뼈를 깎아 펜을 만들어 자신의 피를 찍어 써내려 가는 것으로 비유하기까지 했겠는가. 약간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없지는 않으나, 그런 대로 글쓰기의 고심참담을 직절하게 표현해 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甲戌本 ������紅樓夢������ 卷首에서의 “보매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모두 피인지라, 십년의 신고가 심상하지 않더라”2)는 말은 앞서의 말에 대한 同工異曲인 격이라 하겠다.

  돌이켜 보면 짧은 시간 사이에 글쓰기의 도구도 많은 변화를 겪어 왔는데, 그러한 변화는 시간이 갈수록 라이프 사이클이 짧아지는 경향이 있다. 손으로 공들여 원고지를 메꾸어 나가던 시절에 타자기는 글쓰기의 색다른 경지를 맛보게 해주었다. 타닥거리는 기계음에 또박또박 글자가 찍혀 나오는 경이로움은 손의 수고로움을 어느 정도 덜어주었다는 안도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경이로움말고라도 타자기가 가져다 주는 글쓰기의 효율 역시 무시할 수가 없다. 글쓴이의 고등학교 동창 가운데에는 무협지를 쓰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무협지를 쓴다는 것이 워낙 틀에 박힌 일인지라 사실 작품 구상이 끝나고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갈등만 제시되면 그 다음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게 마련인데, 그 친구 말로는 손으로 원고지를 긁어대면 하루에 기껏해야 일 이백장 정도면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데, 타자기로는 그 서너 배의 효율을 올릴 수 있다는 거였다.3)

  이 타자기를 대신한 것이 개인용 컴퓨터의 워드프로세서이다. 하지만 타자기와 컴퓨터 사이에 과도기적으로 끼어든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전용 워드프로세서였다. 이것은 8비트 칩을 기본 씨피유(CPU)로 장착하고 열전사 방식의 프린터까지 달려 있어 어디든 휴대하고 다니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써서 출력까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메모리가 작아 한꺼번에 많은 글을 쓸 수 없었고, 모니터 화면도 대 여섯 줄밖에 보여주지 못해 무척 답답했으며, 프린터는 수동으로 한 장씩 공급해 주어야 했으므로 한꺼번에 백 장쯤 출력하려면 그로 인한 수고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저런 이유로 줄여서 ‘워프’라고 불렸던 노트북의 선조격이 되는 이 기계는 짧은 전성시대를 끝내고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본격적인 글쓰기의 혁명은 역시 개인용 컴퓨터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초반 아이비엠이 당시로서는 유망한 벤쳐 캐피탈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을 잡고 인텔사의 씨피유를 장착한 개인용 컴퓨터를 내놓았을 때, 전지구적으로 현재와 같은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리라 예상한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개인용 컴퓨터를 가까이한 것은 그로부터 약 10여 년의 시간이 지나 우리가 흔히 ‘엑스티XT’ 컴퓨터라고 불렀던 8088 XT 씨피유를 장착한 개인용 컴퓨터가 나온 80년대 후반이다. 이후로 80286, 80386 계열의 씨피유를 장착한 286이니 386이니 하는 컴퓨터들이 그야말로 정신못차릴 정도로 빠른 속도로 우리 곁을 스쳐가더니 이제는 펜티엄 투 씨피유를 장착한 멀티미디어 피씨가 우리의 오감을 사로잡고 있다. 이러한 컴퓨터를 이용한 글쓰기는 이미 대중화의 단계를 넘어 일상화되어버린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제는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컴퓨터 없는 글쓰기를 생각할 수 없다. 자신의 생각을 펼쳐보이기 위해 “정확히 20일동안 쑤셔박혀 200자 원고지 일천매를 긁”4)어대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김병익은 손으로 글을 쓰다가 컴퓨터로 전환하기까지의 과정을 언급하면서, 그것이 단순한 손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차원에서 벗어나 글쓰기에 대한 태도와 그 안에 담긴 내용에까지 변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과 그것을 얼마든지 소비할 수 있을 때 글쓰는 사람의 태도가 같은 수는 없으며, 글씨를 쓰기 위해 먹을 갈고 붓을 다듬던 시절과 만년필이든 볼펜이든을 쉽게 잡아 가볍게 글줄을 휘갈길 수 있는 때의 마음 가다듬는 자세가 다를 수밖에 없다. 전날의 문체가 장중하고 유려한 것은 그 당시의 삶과 그 의식의 차이에도 있지만, 필기 도구의 성격과 그 용지의 다과에도 유래될 것이란 짐작은 그리 황당한 것만은 아니다.5)


그리하여 “그 하찮은 기술적 숙련성의 차이가 일으킨 결과는 의외로 크다”6)고 할 수 있다.


  워드프로세서에 익숙해진 후 자판을 앞에 놓고 글을 쓸 때에는, 게임으로 컴퓨터의 초보를 익히던 때의 습성으로 놀이를 하는 듯한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앉고, 그래서 원고지든 타자기의 백지든 종이를 대할 때 달겨들던 압박감이 사라지며, 잘못된 문장은 언제든 쉽게 고칠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간단히 지워버릴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감돌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글씨 쓰기에서의 손가락에 대한 자의식이 없어지고 그것의 문자화 속도가 머릿속의 사유 속도와 거의 같다는 점은 내면 의식의 표출에 즉각성과 솔직성을 부여하리라는 짐작까지 들게 한다.7)


이것은 컴퓨터로 글쓰기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다. 자판 위에 놓인 손가락은 “원고지 위에서 멈출 줄 모르는 분홍신처럼” “下筆不能自休(붓을 한번 대면 저절로 멈추는 법이 없다)”8)의 경지를 벗어나 “打字游於交融(打字를 하면서 나와 他者가 하나로 녹아 합쳐지는 경지에서 노닌다)”으로 훌쩍 비상하는 것이다. 컴퓨터로 글쓰기는 분명 이제껏 인류가 맛보지 못했던 글쓰기의 경이로움을 열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듯 장황하게 사설을 늘어놓은 것과는 무관하게, 이 글에서 논의하려는 것은 그렇듯 신산스러운 수작업으로부터 문명의 이기(?)9)를 이용한 편리한 글쓰기로의 여정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컴퓨터를 비롯한 기계들의 짧은 라이프 사이클은 그 가격으로 보아서는 일 개인의 재산 목록의 상위권에 충분히 랭크될 만한 것들을 여타의 일회용 물품처럼 한번 소비하고 마는 소모품으로 격하시켜 버리고 말았다. 이제 우리에게는 더 이상 오랜 세월 갈고 닦아가며 대를 물려 쓸 ‘내구재’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내구재의 상실은 우리에게 그 만큼의 경제적인 부담을 지웠을 뿐만 아니라 사물을 대하는 우리의 인식마저도 흔들어 놓아 버렸다. 이제 영원한 사랑 따위는 유행가 가사에나 등장하는 구두선이 되어 버렸고, 지식은 하나의 패션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한때 리얼리즘의 열풍이 젊은 학도들의 머리와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 놓더니 포스트모던의 환멸이 그 모든 회의를 쓸어가 버린 것일까? 그리고 문득 새삼스럽게 마주친 세기말이다.



2.



  세기말, 또는 새로운 밀레니엄의 벽두에 선 인문학이 안고 있는 가장 큰 화두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풍문이다. 하지만 이 말은 사실상 우리의 심금을 그다지 울리지 못하고 있다. 우선 실제로 우리의 인문학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게 정확한 근거가 있는 사실판단인지, 또는 그렇다면 역으로 이제까지의 인문학은 상대적인 태평성대를 구가해 왔다는 얘긴지 하는 등등의 의문은 차치하고라도, 현재 우리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도대체 위기상황에 처해 있지 않은 게 뭐가 있는가 하는 부질없는 생각마저 드는 게 사실이다. 나아가 역사적으로도 위기가 아닌 적이 있었던가? 秦始皇의 ‘焚書坑儒’야말로 역사적으로 가장 엄혹했던 또는 치명적이었던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었던가? 明淸代의 숱한 禁書에 관한 칙령들뿐만 아니라 가깝게는 文化革命의 단순무식한 문화 압제를 포함해 아직까지도 ������金甁梅������가 공개적으로 일반에게 유포되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현실은 또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지. 몇 백 년 전 씌어진 <������金甁梅������序>에서 東吳의 弄珠客이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었다.


  [이 작품의 의도는] 대개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권계를 하고자 함이지, [그렇게 하라고] 권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었다. “금병매를 읽고 연민의 마음이 생기는 사람은 보살이고, 두려운 마음을 갖는 자는 군자이며, 즐기려는 마음이 생기는 자는 소인이다. 이를 배워 모방하려는 마음을 갖는 자는 금수일 따름이다.”10)


그렇다면 ������금병매������를 아직도 일반 사람에게 유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보살이나 군자보다는 소인이나 금수에 해당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인문학의 위기가 色情書의 禁制로 흘렀으니 논의가 곁길로 뻗은 감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인문학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한 가닥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은 어느 시대고 위기 상황을 연출해낸 것은 권력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 권력이나 경제력에 바탕한 금권력일 수도 있고, 좀체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문화 권력일 수도 있다. 또는 이 모든 권력의 총합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권력을 정당화하거나 거기에 기생하여 왕성한 자기증식을 해 왔을지도 모르는 ‘글쓰기’이다.11)

  ‘글쓰기’의 문제는 생각만큼 단순하지가 않다. 월터 J. 옹은 글을 쓴다는 것이 사람들의 의식을 재구조화한다고 주장하면서, “문자에 익숙한 사람들이란 선천적인 능력보다는 쓰는 기술에 의해서 직․간접적으로 구조화된 힘에 힘입어 그 사고과정을 형성시킨 인간을 말한다”고 하였다.12) “쓰기는 어떠한 발명보다도 더욱 강하게 인간의 의식을 변형시켜”13) 온 것이다. 그리고 글쓰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실적인 힘으로 전환되게 된다. 에코의 다음과 같은 언명은 글쓰기가 단지 사실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적 현실을 통제하고 정당화하는 하나의 권력으로까지 승화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글쓰기는 정보를 기록하기 위해 고안되었으나 즉시 이데올로기적 기능도 넘겨받기 시작했다. 제의(祭儀)를 찬미하고 법을 확정하고 특권을 강조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글이 쓰여졌다. 글쓰기는 급속하게 권력의 도구가 된다.……속인들의 눈엔 사서 즉 도서관의 수호자들은 한 구석에 눌러앉아 전혀 생색도 나지 않는 일에 몰두하느라 수천년 동안 글쓰기의 비밀을 잊은 듯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은 자신의 역할에 관해 자부심에 넘쳐 있고 허영심이 강하며 언제나 왕이나 파라오의 근처에 머물고 있다고 자만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온갖 규정을 새로 고안해내고 필사기술의 규칙을 바꾸고 글씨도 아주 작게 써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글의 내용이 애매모호할수록 이들이 누리는 권력은 커지고(이것은 참으로 떨쳐버리기 힘든 유혹이다) 수수께끼 그림을 복잡하게 그릴수록 이들의 중요성도 늘어나게 된다.14)


곧 글쓰기는 본래 권력을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그런 까닭에 태생적으로 권력 지향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秦始皇이 焚書를 했던 것은 자신의 통치 이념에 반하는 모든 글들을 없애려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焚書를 면한 것은 醫藥과 占卜, 農桑에 관한 실용서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秦始皇의 의도가 실패로 돌아갔듯이 글쓰기의 권력화는 항상 글쓰기 자체의 생명력을 죽이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中國文學史에서는 이러한 예를 수도 없이 찾아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중국문학에서 가장 정통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詩이다. 주지하다시피 중국문학사에서의 詩의 起源은 대개 民間에서 찾아진다. 곧 중국의 전통적인 古詩는 ������詩經������의 <國風>과 漢代의 樂府詩의 전통을 이어받은 五言이나 七言 계통의 古詩가 魏晋南北朝 시대를 거치면서 문인들의 손에 의해 다듬어진 뒤, 唐代에 이르러 고도로 완정된 형식미를 갖춘 近體詩로 확정되게 된 것이다.15)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近體詩’라는 명칭이다. 현재로부터 천 몇백 년 전에 나온 詩가 현재까지도 ‘요즘 형식의 시’라는 의미를 가진 ‘近體詩’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는 데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唐代의 ‘近體詩’가 현재까지도 그 때와 똑같은 형식으로 계속 창작되고 있는 것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곧 그 때나 지금이나 ‘近體詩’가 갖고 있는 역사적인 가치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近體詩’가 唐代에 이미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올라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는 완벽한 문학 양식이었다는 말도 되지만, 역으로 그 생장은 멈추어 버렸으나 그 생명력만큼은 단절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온 살아있는 화석으로 변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연 ‘近體詩’가 완성된 唐代 중엽 이래로 민간에서는 竹枝詞를 비롯한 民歌 형식의 詩의 異形態들이 등장해 완정한 형식의 틀 안에서 고사해버린 詩를 대신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이 ‘詞’이거니와, 이 詞 역시 송대 중엽 이후 진행된 格律化에 의해 그 생명력이 소진되자 민간에서 散曲 등이 다시 등장함으로써 그 생명력을 이어갔다는 것은 중국문학사에서는 더 이상 常識으로도 치부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한 마디로 글쓰기가 하나의 문화 권력으로 자리잡게 되는 순간 그러한 권력을 바탕으로 글쓰기가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번영하는 것이 아니라 쇠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권력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러한 권력과 글쓰기가 결합하는 방식은 어떠한 것인가? 또는 우리가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혹은 우리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고의로 그것에 대해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곧 앞서 글쓰기의 방식으로부터 시작된 글쓰기에 대한 문제 의식은 내용적인 데까지도 그 범위를 확장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학문의 세계에서 논문이라는 형식의 글이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을 고려할 때 글쓰기의 문제는 학문을 대하는 태도와 그것을 채우는 내용 등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된다.16)



3.



  여기에서 한 가지 지적해두어야 할 것은 우리의 학문을 주로 규정짓는 것은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근대 이후 서구의 영향 하에 받아들인 학문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학문을 운위할 때에는 이러한 서구의 지적 전통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서구의 근대적인 학문이 기대고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이성을 긍정하고 그것에 보편적 가치를 둔 합리주의이다. 곧 학문은 이성의 힘으로 합리성의 이름으로 그 정당성이 부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학문의 외연인 논문이라는 형식의 글쓰기 역시 이성과 합리성에 기반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 이 인식의 객관적인 표현, 논리적인 주장과 증명 등에 가치를 부여하는 계몽주의 이래의 근대적 합리성의 이념이 논문의 이상적인 구성을 결정하고 논문의 담론양식을 규정하는 것이다.17)


한편 이성과 합리성에 기반한 논문은 그 나름의 독특한 형식을 요구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그 문체이다. 논문의 문체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덕목은 투명성으로, 이것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그것은 ‘논문에서 사용된 개념들은 분명하게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과 ‘가능한 간명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라’는 것이다.18) 따라서 논문의 문체가 기피하는 것은 과다한 수식어를 사용한 복문과 그 함의를 분명하게 알 수 없는 비유적인 표현이나 구어적인 표현이다. 논문에서는 하나의 생각을 하나의 문장에 담고 가급적이면 화려한 만연체보다는 건조체로 쓸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논문의 합리성을 다른 무엇보다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논문의 구성원리이다.


  일반적으로 논문은 서론, 본론, 결론의 세 부분으로 나뉘고, 각 부분은 문단을 단위로 다시 나뉜다. 이상적인 문단은 주제문으로 시작하고 결문으로 끝나야 하며, 문단 내의 모든 문장을 하나로 묶어주는 통일성과 인접한 문장들을 긴밀하게 엮어주는 연관성을 갖추어야 한다. 문단의 첫 문장은 그 문단의 주장을 담는 주제문이어야 하고, 마지막 문장은 주장을 반복해서 확인하는 결문이어야 한다. 주제문과 결문 사이의 모든 문장은 주제문과 관련됨으로써 문단에 통일성을 주어야 하고, 앞 뒤 문장이 서로 연결됨으로써 문단에 긴밀성을 부여해야 한다. 이러한 문단구성의 원리는 논문 전체의 구성원리이기도 하다. 서론은 논문 전체의 주장을 밝혀야 하고, 결론은 그 주장을 확인해야 하며, 본론은 논문의 주장을 통일성과 긴밀성을 갖고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19)


위의 인용문의 내용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오는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인 듯이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플로트는 전체여야 하며, 전체는 시작․중간 그리고 끝을 가진다”20)고 말했는데, 한 마디로 “플로트란 인과관계가 있는 일련의 사건들”로서, “각 사건은 개연성 또는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그 앞의 사건에서 기인하며, 동일한 법칙에 따라 그 다음의 사건을 낳는” 것이다. 개연성과 필연성이야말로 이성과 합리주의가 추구하는 기본 요소가 아니던가?

  하지만 논문이 추구하는 “합리성은 대상세계의 우연적인 면을, 일관성은 다원적인 면을, 통일성은 복합적이고 중첩결정적인 면을, 논리성은 합법칙적이지 않은 면을 구조적으로 억압하고 관심 영역 밖으로 배제하기 쉽고”, 아울러 “서론 본론 결론의 구성은 결론을 향한 단선적인 전개를 강요함으로써 대상세계의 다선적이고 다면적인 면을 충분히 존중하기 어렵게 만드는” 한계를 갖고 있다.21) 또 “논문의 이상적인 문체가 전제하는 투명성은 언어의 물질성과 사회성을 억압함으로써, 논문이 담아내는 사고의 성격을 미리 규정하고, 그 사고의 한계를 바라보게 하는 비판적 거리를 제거”하게 된다.22)

  이렇듯 논문의 합리성과 이성주의는 양면성을 띠고 있는데, 따라서 일반적으로 말하여지는 논문에 대한 반성은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귀결된다.


  합리성을 기본 이념으로 하는 논문양식이 꼭 필요한 것이라는 데에는 이론(異論)을 달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서 위와 같은 구성원리를 갖는 논문이 유일한 혹은 최적의 양식인지는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합리성을 기본원리로 하는 논문양식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일정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는 면이 있지만 다른 방식의 이해를 구조적으로 차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합리성에 기반을 두는 논문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객관적 접근과 논리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결국에는 그것에 대한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지식만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고 허용하기 마련이다.23)


곧 문제가 되는 것은 “논리적 연결이나 명쾌한 문체를 그것 자체로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전략적으로 선택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 중의 하나일 뿐이므로 유일무이한 절대적인 척도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는 것”이다.24)

  그렇다면 논문이라는 글쓰기 행위는 결국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 곧 세계관의 문제로 귀결되게 된다. 이것은 나아가 세계를 넋을 놓고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규정하고 궁극적으로 만들어 나갈 것인가라고 하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주체의 개입을 요구한다. 이것은 논문이 갖고 있는 제도적인 힘으로 발현되는 바, 이것이야말로 앞서 논의한 글쓰기와 권력과의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논문을 쓰는 순간 논문의 주체는 “‘객관적 진리’를 소유할 권리와 소유하고 있다는 권위, 그리고 그 권위를 부릴 수 있는 권력”25)을 부여받게 된다.



4.



  그러나 그러한 권력의 바탕이 되는 합리성은 분석이라는 이름 하에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이 앞서 말한 세계관의 영향을 받게 되면 논리적 전개과정이 지배와 피지배의 수직적 구조로 나타나게 된다.


  논리적 구분의 대상이 된 개념들과 논리적 종합의 대상이 된 개념들은 심리적 간섭을 강력히 받게됨으로써 개념들의 수평적 평등성이 배제되고 그 대신 수직적 불평등성이 철학자들의 논리적 사고의 방향을 조종하였다고 해석된다.

  말하자면 “분단시키고 통치하라!”(Divide et impera!)는 고전적 지배요령이 서양논리학의 영역에서도 “구분하고 포섭하라!” 또는 “양분하고 종합하라!”는 말로 바뀌어 그대로 통용되어 왔다. 고전적 통치의 수법은 ‘양분법적 수직논리’, ‘포섭적 수직논리’, ‘변증법적 수직논리’ 속에 이미 그와 같은 분리 또는 분단과 포섭, 또는 지배의 수직적 구조가 반영되어 있다.26)


이러한 수직적 구조가 반영된 학문은 먼저 앎을 삶으로부터 분리하는 작업을 시도하게 된다. 이렇듯 삶으로부터 유리된 앎이라고 하는 것은 더 이상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실체가 아니라 이 세계를 초월해 존재하는 신화나 전설로의 신비화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신비화는 학문을 담아내는 그릇인 논문에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권력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적인 힘, 권력을 부여하게 된다.27) 아울러 그러한 힘은 앎이 삶으로부터 유리되면 될 수록 더욱 커지는 경향이 있어, 그 만큼 앎을 다루는 사람은 자신의 앎을 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노력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정작 놀랍게 생각해야 할 것은 앎을 다루는 사람들의 집단이기주의이다. 그들은 권위를 누리기 위해 삶에 접근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앎이 삶에 접근할수록 그들의 배타적 전문주의는 도전을 받게 돼 있다.……그런 풍토에서 앎의 길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삶과 앎이 서로 따로 놀수록 학문의 수준이 높아지는 걸로 생각하게 된다.28)


이러한 생각은 거꾸로 지식의 수용자들에게도 피드백되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거품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는 지식은 현실과 동떨어져야만 무겁고 품위 있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함부로 끼어들 수 없는 이야기를 해야 권위를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그러하다. 그런 생각은 글쓰기에 그대로 나타난다. 하기야 지식에도 여러 종류가 있을 것이고 남이 모르면 모를수록 가치 있는 그런 지식도 있을 게다. 자연과학의 경우에 그러하다.29)


  이렇듯 학문을 현실로부터 유리시켜 신비화하는 과정을 통해 학문은 하나의 제의로 발전하게 된다. 논문이라는 것은 학문을 경배하는 필자에 의해 제단에 봉헌되는 하나의 제물이며, 그러한 제의를 통해 현실 세계를 지배하는 허위의식false consciousness이 만들어지게 되고, 이 허위의식이 다시 권력을 창출해 내는 일련의 과정이 간단없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제 학문이 자신의 삶으로부터 유리된 앎을 희롱하는 지적 유희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은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문제는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알려줄 ‘잠수함 속의 토끼’30)가 부재하거나 있더라도 소수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학문의 세계에서 위와 같은 권력 창출의 과정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학위 논문이 될 것이다. 학위 논문은 흔히 자동차 운전 면허에 비유된다. 운전 면허를 따야 자동차를 몰고 거리로 나설 수 있듯이 학위가 있어야 학자로서 인정을 받고 나아가 대학에 자리를 얻어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 운전은 면허를 따고 나서 다시 새롭게 배우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학위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벌어진다. 학위 논문과 학문성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 그 뿌리를 같이 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심사하는 과정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문성과는 별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학위 논문의 심사과정을 간단하게 일별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학위가 필요해31) 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학생은 지도교수의 무지를 충분히 감안해 그의 눈높이에 맞추어 논제를 선정하고 내용을 채워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지도교수로부터 쏟아져 나올 수준 이하의 황당한 질문 공세에 당혹감을 금치 못하다가 초장부터 논문 쓸 의욕을 잃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찌 그뿐이랴!


  ‘쓰기’보다는 ‘보기’와 ‘듣기’에 재빠른 세대, 정보체계의 다변화․활성화에 따라 더욱 가속(加速)되는, 혹은 저속(低俗)해지는 표절과 짜깁기의 행태, 논문쓰기를 대학의 공공연한 스캔들로 방치해두면서 초보적인 글쓰기의 훈련도 마련하지 않고 있는 제도적 방기, 제 스스로 학생들의 글쓰기를 지도할 수 있을 정도의 고민과 경험을 저축하지 못하고 있는 교수들의 학문행태, 몇몇 수입된 원전의 유통만으로 학문성을 전유할 수 있다고 믿는 타성적 문약(文弱) 등.32)


그리고 본격적으로 심사가 진행되면 점입가경이다.


  심사가 시작되면 위원들은 기회가 왔다는 듯 표현, 낱말, 토씨를 물고 늘어진다. 또는 가설이 어떻고 검증이 어떻고 한다. 과학성을 따진다. 각주와 참고문헌의 형식이 어떻다는 둥 op. cit.가 어떠하며 ibid.가 어떠느니 한다. 서구인들이 정해 준 약속의 체계, 또는 이른바 ‘보편’에 편입되려는 가엾은 노력인지도 모른다.……그래서 논문의 내용이 우리의 도서관과 그 관련기관의 현실과는 완전히 겉도는 것인데도 형식만 맞으면 통과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젊은 연구자들은 그 분위기에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게 된다. 평소 연구자 자신이 쌓아온 상식과 교양의 체계, 관찰의 내용, 대화의 내용, 현장으로부터 얻어 읽게 된 보고서와 계획서 따위는 과학의 이름으로 연구의 영역에서 추방된다. 연구자는 갑자기 지금까지 일상에서 사용하던 언어의 체계를 벗어나 이른바 과학의 언어를 채택함으로써 자신을 역사와 사회 속에서 연대의 줄이 끊긴 미아로 전락시켜 버린다.33)


그런 식으로 난타당하다 보면 도대체 자신이 논문을 쓰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심사를 맡은 위원들이 쓰는 것인지 헷갈리게 된다. 그래서 학위 논문을 준비하다 보면 그 과정이 결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양상과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결혼과 학위 논문은 ‘나’를 배제하고 벌어지는 일가 친척들과 심사위원들의 한바탕 한풀이 굿이고 푸닥거리인 것이다. 그리고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잘라버린다?

  혹자는 이렇게 말하는 글쓴이의 주장이 너무 심한 것이 아니냐, 너무 편벽된 것이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또는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정확한 수치를 들어 제시해 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34)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학위 논문 심사과정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들, 이를테면 무예를 배우러 고수를 찾아가거나 아예 머리깍고 소림사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마땅히 치러내야 할 통과의례initiation로서의 의미를 새삼 강조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은 살아가면서 한번은 치러야 할 홍역과 같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위 논문 역시 제대로 된 학자를 배출하는 정규 과정으로써 강호의 무림 고수들에게 공인을 받는 것이다. 글쓴이 역시 학위 논문이 갖고 있는 그러한 긍정적인 의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그들이 과연 고수인가?35)

  앞서 논문이 학문이라는 신성한 제단에 바쳐지게 되면서 벌어지는 신비화의 과정에 대해 언급한 일이 있거니와, 이러한 신비화는 그러한 제의의 주체인 학자들, 보다 구체적으로는 교수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행해진다. 우리 사회에서 교수라는 직함이 그 실제에 비해 터무니 없이 부풀려져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교수들은 그의 인간성이나 학식과는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그들의 말은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왜 신비화인고 하니, 바로 그들의 인간성이나 학식이 정확한 수치를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검증받은 적이 없음에도, 또 그들 가운데도 성격파탄자나 모리배, 사기꾼 뺨치는 인간들이 충분히 있을 수 있음에도 사회적으로 거의 터무니없을 정도로 무조건적인 존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36)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신비화라기 보다는 하나의 허위의식이다. 하지만 여기에 우리 사회의 이중성이 깔려 있기도 하다. 대개의 사람들은 교수를 겉으로는 존경하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여간 경멸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행여 그들이 사소한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그들도 똑같은 인간인지라 부득이하게 저지를 수 있는 사소한 실수가 어떤 때는 그 사람을 결정적으로 파멸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엄하신 교수님들께오서는 공연히 어깨에 힘주고 다닐 일만은 아니다. 그러한 떠받들림 속에 감추어져 있는 비수가 언제 자신을 난도질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우리의 잘난 교수님들을 가리키는 호칭 가운데 별로 영예롭지 못한 표현이 있는데, 그것은 ‘폴리페서polifessor’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폴리페서’란 본래의 의미인, ‘정치적인 교수political professor’라는 말 그대로 정계나 관계로 진출하신 분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무관하게 공부엔 전혀 뜻이 없으면서 대학 내부의 권력 투쟁에 몰두해 자기 파벌이나 키우고, 대학 밖에선 권력에 줄을 대 권위와 영향력을 행사하며,37) 제자들 먹고 살 길을 열어준다는 미명 하에 여러 인맥을 동원해 교수 자리를 놓고 치열한 암투를 벌이는 재미로 세상사는 보람을 느끼는 그런 교수를 의미한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공급에 비해 수요가 부족한 것이 교수라는 자리인지라, 이들이 꼭 부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마지막 예의 경우, 현실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떳떳하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자 무릇 幾何리오? 그러니 ‘폴리페서’도 나름대로 학계에서는 필요악인가?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인 문제이고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그들이 가는 길이 정도는 아니라는 데 ‘폴리페서’들의 비극이 있다. 그들이 현실적으로 효용 가치가 있다 하나 결국 그 최후는 자못 비감하기 때문이다.38)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들끓어도 정작 정승이 죽으면 찬 바람이 감도는 것이 세상 인심인 것이다. 사후에 들리는 저 수군거림을 들어보라. “그 교수가 원래 학문적으로야 별 볼 일 없었잖아? 그저 제자들 몇 명 자리잡아 준 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자들이 따랐던 거지.” 이렇게 말하면서 모진 놈 옆에 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을까 두려워 하는 심정으로, 예수의 처형을 앞두고 손을 씻고는 “나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모르쇠를 질러 놓던 빌라도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니 정작 불쌍한 사람은 실력이 없어, 보다 정확하게는 단지 공부를 좀 게을리했다는 이유 때문에 제자들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지 못하고, 무엇보다 자기자신에게 떳떳치 못한 못난 스승들 자신인지도 모른다.39)

  이야기가 많이 곁가지로 흘렀다. 사실 이들 ‘폴리페서’들의 본질을 밝히고 그들을 성토하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다른 데 있다. 이들에 의해 학위 논문 심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통해 또다른 ‘폴리페서’가 확대재생산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학위 논문이라는 게 무언가? 앞서도 말했듯이 한 사람의 학자가 마음 놓고 학문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확보하는 데 필요한 허가증, 또는 면허증이 아니던가? 자본주의 사회든 그 이전의 전통 사회든 학문을 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이 경제력인 것은 불변의 이치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경우는 학문에 필요한 정보의 양이 워낙 방대한지라 그러한 정보에 접근하기 위한 물적 토대가 없이는 새로운 創見은 고사하고 기존의 연구 성과마저도 뒤쫒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런 까닭에 그러한 물적 토대 확보에 필요한 자격증 역할을 하는 학위 논문은 학자로서 입신하려는 교수 지망자들의 목을 죄는 三藏法師의 ‘緊箍呪’40)이다. 지도교수라는 삼장법사가 외는 주문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게 논문을 준비하는 대다수의 예비 학자들의 운명인 것이다. 그러니 이런 논문에서 어떤 창의적인 생각이나 기존의 이론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기대하기란 애당초 무망한 일이 될 것이다. 학생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폴리페서’로 길러지는 것이다.

  분위기 파악이 전혀 안 돼 있는 아둔한(?) 학생들은 그러한 권력에 거스르다가 칼침을 맞는 것이 강호의 생존 논리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그것은 워낙 강고하게 기존의 학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이미 고황이 되어 버려 아무도 그로 인해 아픔을 느끼지도 않거니와 설사 아픔을 느끼더라도 이미 빈사에 이르른 학문 세계를 일으켜 세울 엄두가 안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이야기는 지하로 잠입해 그런 일도 있었다더라는 식의 야사가 되기도 하고 전설이 되기도 한다.

  한편 학위 논문 심사를 둘러싸고 들리는 아름답지 못한 풍문 가운데 하나는 그 냄새가 워낙 고약한지라 아무도 입에 올리려 하지 않는 ‘접대’의 문제이다. 학위 논문 심사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접대’는 작게는 ‘저녁 식사’로부터 바쁘신 가운데 오가느라 고생하신 데 대한 대가라 할 ‘거마비’까지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사려 깊으신 심사위원님들은 아직 대학에 자리를 잡지 못한 제자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이미 현직에 있는 논문 제출자들과 ‘식사 대접’의 수준과 ‘거마비’에 차등을 두는 인정을 베푸는 여유도 있어 과부집 달라 빚이라도 내서 학위과정을 마쳐야 할 가난한 제자들을 감읍케 하는 일도 있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학위 과정 중에 있는 학생들은 교수들을 잘 접대해서 <착실한> 학생임을 증명받아야 따돌림을 받지도 않고 순조롭게 졸업할 수 있었다. 노력이나 재주에 관계없이, <접대>를 제대로 못하면 차후에 돈과 지위로 통하게 될 채널에서 영영 쫒겨나는 것은 물론 졸업의 전망조차 불투명해졌다. 지도 교수가 은밀히 앓고 있는 치질, 성병, 혹은 심지어 조루(早漏)를 발설하는 학생은 그날로 끝장이었다.……자연히, 접대할 돈으로 책을 사고 인사 치레할 시간에 글을 쓰는 학생들은 교수들의 눈 밖에 나게 되었고, 대다수의 학생들은 교수들의 시선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충량(忠良)하지만 머리가 좀 모자란 학생들은 자신들의 지도교수를 더욱 즐겁게 해드릴 심산이었는지, 지도교수를 넘어서 외국에 유학하거나 다른 대학에서 학위를 마친 동료들을 <전과자>라는 명칭으로 불러댔다. 거푸 네 번이나 논문 심사에 떨어진 후 대접할 돈마저 구하지 못한 어느 학생은 약을 먹고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다.41)


그러니 무사히 별탈없이 학위를 취득하자면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모두 무화시키고 철저하게 마음을 비울 수밖에. 진정 이 땅에서 학위 논문을 쓴다는 것은 모진 놈 때려죽여 말 잘 듣는 자동인형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학위 과정을 이수해 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지적을 가슴 깊이 공감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형식성을 빌려 권위를 세우는 심사, 그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서 논문이라는 형식성과 공모해야만 하는 학생들의 허위 의식은 이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땅에서 시행되는 논문쓰기라는 형식은 학자의 문턱에 서성이고 있는 학생들을 지배하기 위한 기존 학자들의 통제 장치로 전락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누구나 인상을 찌푸리면서 통과 의례를 치르지만 일단 통과하기만 하면 못 본 체하는 재래식 변소 같은 것, 바로 이것이 그들이 숭배하는 논문인 것이다. 다소 심하게 평하자면, 현재 이 땅의 대학에서 시행되고 있는 논문 제도는 <논문의 학문성>보다는 오히려 <논문이라는 학문성>을 따지기 위한 방식으로 타락하고 있는 듯하다.42)



5.



  중언부언하다 보니 그럭저럭 꽤 멀리 온 것 같다. 이제 들뜬 감정도 차분히 가라앉히고 주위를 다시 돌아볼 시간이 된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의문을 던져본다. 우리에게 학문은 무엇인가? 우리는 학위 논문을 왜 쓰는 것일까?


  우리는 왜 글쓰기를 하는가? 무엇 때문에 학술논저를 내는가? 석박사학위를 얻기 위하여? 승진과 재임용을 위하여? 그런 과정을 다 거친 사람들은 그저 습관적으로? 학자입네 하는 권위를 세우기 위하여? 유희삼아? 장난삼아? 과연 우리에게 있어서 글쓰기란 이처럼 여유작작한 지적 놀이일 수 있는가? 그것은 과연 형식과 관문앞에 바치는 연중의 행사요, 제사에 지나지 않는가? 과연 그것이 다인가?43)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제사장이 되어 참여하는 제의가 어찌 그런 세속적인 의미에만 묶여 있을 것인가? 하지만 너무도 지고한지라 衆人들의 무분별한 環視가 불경스럽게 느껴져서일까? 우리는 자신의 논문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왈가왈부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학관’들과 그들의 ‘가엾은 아이들’은 남의 논문을 잘 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니 거의 읽지 않는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자신이 논문을 쓸 때에 자신의 주제와 관련된 논문들을 챙겨놓고 그때서야 읽을 뿐이다. 모두 다 그런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 그런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왜? 논문은 ‘재래식 변소 같은 것’ 또는 ‘헌법 조항 같은 글’이기 때문이다. 자기도 알고 남도 알고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뻔한 소리에 형식의 갑옷을 입힌 그 근엄한 글을 무슨 재미로 읽는단 말인가?44)


서로가 앞만 바라보고 있다. 아무도 옆을 보려 하지 않는다. 아무개가 글을 한 편 썼다는 것은 머나먼 풍문으로 치부해야 하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비판이나 칭찬이 이루어지는 것은 서로가 열적은 일이 되어 버렸다.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있는 참새들처럼 일렬로 나란히 앉아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눈치로 알고 있지만 그닥 쳐다보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아닌 대상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푸코를, 데리다를, 제임슨인지 제이미슨인지를……45) 

  무엇이 그렇게도 두려운가? 남들이 자신의 논문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아니 핏대를 세운다. 식민지 백성의 불쌍한 정조이다. 내지의 지도교수에게 당한 기억이 너무 강해서일까? 이 정도면 일종의 신경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정신적 외상?46) 떳떳하지 못할 게 무엇이고, 감출 게 무언가?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해 가리기 아닌가? 그럴 양이면 무엇 때문에 논문을 발표했는가? 자기 혼자 보고 즐길 일이지. 그것은 오만이다. 비판하는 상대방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자기기만이다. 그리고 나르시즘이다. 그러한 학문이 걸어야 할 길은 뻔하다.


  그러나 그들은 대체로 외제의 주(註)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논문 한 편, 그것도 논문중심주의와 원전중심주의의 강박에 휩싸인 채 자신의 몸을 숨기면서 씌어진 논문 한편을 연중행사처럼 바치는 것으로써 한 해의 심오함을 마무리할 뿐이다. 글과 뜻의 긴장 사이에 개입한 학문실존의 역사와 그 책임은 아무래도 잘 보이지 않는다.47)


그렇게 해서 나온 논문이 걸어야 할 길도 뻔하다.


  나의 실망은 컸다. 상식으로도 뻔한 내용을 가설이라고 세워 놓고는 요란한 설문과정과 통계처리과정을 거쳐 증명인지 뭔지를 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양의 문헌을 짜깁기하는 것도 통상 있는 일이었다. 서양의 문헌을 우리 현실에다 대입하여 맞는지 틀리는지를 알아보는 경우도 많았다. 논제와 문제제기 자체를 아예 서양문헌에서 빌어온 것으로 의심이 가는, 그래서 우리 현실에서는 절박성이 그다지 없는 경우도 눈에 많이 뜨였다.48)


그래서 우리에게는 진지한 토론의 역사가 부재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아프지도 않은데 신음 소리를 내야 하는 억지춘양식의 남의 다리 긁는 일이 되어버릴 것을 무엇 때문에 따지고 든단 말인가? 별 시답지 않은 것 갖고 목에 핏대 세우는 것은 저자거리의 장사치들이나 할 짓이고, 모름지기 인의군자라면 은인자중할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어허, 그러고 보니 뭔가 낌새가 수상쩍다. 예전에 그 많던 상놈들은 다 어디로 갔을꼬?

  그러나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아프지 않은 데도 신음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이 전신으로 번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가 되기 전에 아프다고 이야기하는 게 역사적으로 지식인에게 주어진 임무와 사명이 아니었던가?


  지식인의 일차적 자격 조건은 비판이기 때문에 지식계에서 비판의 제기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국의 지식계에서는 그 비판의 수위마저 조절되고 있다. 즉 이익 유대 공동체의 안위를 해칠 수 없다는 것이 상한선이다. 그 결과 현실적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는 도덕군자적으로 이상화된 추상적 비판만이 횡행한다. 언론의 추적-고발성 보도들도 근본적인 유대 구조를 다치지 않아야 한다. 여기에 크고 작은 사회문제의 진단과 토론에 동원되는 전문가 집단도 마찬가지다. 부실 건설, 관료 부패, 금융 부조리, 교육계 부조리 등등 수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비판되지만, 그러한 문제들에 관련된 구성원이 속해 있는 이익의 유대망은 다쳐서는 안 된다. 문제가 삐져 나올 때는 전지 가위로 정원수 다듬듯 위로 드러나는 부분만 살짝살짝 잘라주어야 한다. 뿌리와 줄기가 썩고 있는 것을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 모두들 그 썩는 즙을 달게 핥아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책임있는 사람들은 광고 문안같이 간결한 말의 유희로 문제의 핵심을 피해가고, 또한 광고 문안 같은 도발적 발언들은 광고 효과만큼 빠르게 대중 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진다. 이제 이 사회에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우리’의 이익이 있을 뿐이다. 끼리끼리 뜯어먹자판이다.49)


그렇다! 우리의 학문이란 것도 그런게 아닐까?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는 고마운 신. 우리는 그 신 앞에 무릎 꿇고 앉아 한없는 은혜에 경배를 드리는 아뉴스 데이(신의 어린 양들).

  이 시점에서 한 벽안의 의사가 자신을 향해 내뱉았던 사자후가 떠오른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의 건강 유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의사라고 부르지. 그러나 이러한 개념대로 실천하고 있는 의사들이 도대체 얼마나 되겠소? 그렇다고 그것이 의사들만의 잘못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오.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잘못이지. 우리는 모두들 어느 도시 어느 거리에서도 상수도, 하수도, 오물수거, 전기공급 같은 서비스들은 당연한 일로 생각하오. 그런데 의료 서비스에 대해서는 그렇게들 생각하지 않는다오. 그것이 바로 문제요. ‘건강의 권리’ 이것이 무시되고 있단 말이오. 따라서 사람들은 이 의료 서비스를 가게에서 통조림을 사듯 구입하는 것이라오. 몇 달러 몇 센트를 주면서 말이오. 병원이라는 것들이 그런 장사를 하면서도 거들먹거리는 거야. 그러니 양복점하고 다를 게 뭐가 있겠소? 재봉사가 헌 코트를 수선해주는 식으로 우리 의사들도 팔다리를 수선해주고 있을 뿐이지. 이것은 분명 본래의 정신에 맞게 의학을 실천한다고 볼 수가 없소. 그저 장사를 하고 있을 뿐이오. 따라서 새로운 의료개념, 보편적 보건개념, 새로운 의사개념이 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오.50)


글쓴이 자신도 잠시 할 말을 잊게 된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작은 이익에 연연해 하고 사소한 데 감동하고 그랬지만 정작 아파해야 할 대상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지는 않았는지…… 사람 좋은 웃음이나 흘리고 다니면서 자기를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世說들에 귀를 쫑긋 세우고 마음 조렸던 적은 있지 않았는지……



6.



  여기까지 글을 써내려오다 보니 지리멸렬하게 끌어오던 텔레비전 연속극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는 작가처럼 가닥이 잡히질 않는다. 신이 오른 무당이 작두 위에서 갖은 사설들을 퍼부어대듯 수많은 비판의 말들을 쏟아냈지만 정작 수습이 어려운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이제 바야흐로 작두에서 내려올 때가 된 것이다.

  우선 밝혀두어야 할 것은 이 글이 무슨 논문 폐기론 정도로 읽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글쓰기에는 그 나름의 역사성이 있다. 흔히들 明淸 시대의 八股文 하면 기계적으로 튀어나오는 말들이 있다. 팔고문은 明淸 시대에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문인들이 익혔던 문장의 형식으로 전통적인 儒家의 경전들에 대한 朱子의 해석을 정해진 문장 격식에 따라 서술하는 것이다. 따라서 입신출세를 목표로 한 당시의 학자들은 누구나 八股文을 익혀야 했다. 그러나 과거에 급제하기가 그리 쉬웠겠는가? 요즘 고시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고시에 매달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입신출세의 유일한 길인 과거 시험은 글줄이나 읽었다는 선비들은 모두 참여하는 그야말로 국가적인 대사였다. 그렇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과거 시험에 급제해 관도에 들어선다는 것은 시쳇말로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당시에는 사람마다 글공부, 팔고문 익히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후대의 사가들은 팔고문이 당시 지식인들의 비판의식을 마비시키는 사상적인 족쇄 역할을 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는 보다 냉정하게 팔고문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팔고문이 수백 년 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데에는 모름지기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며, 그 점에 대한 조명도 부정적인 평가와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팔고문의 실체를 제대로 밝혀낼 수 있는 것이다. 팔고문은 명청이라는 시대적 역사적 산물이기에 그것은 그 나름의 잣대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의 논문 양식은 그 나름의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나치게 서구를 숭배하고 그 앞에서 주눅들어 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서구 중심의 사고 체계와 그 형식적 틀인 논문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비판해서도 곤란하다. 그러한 형식의 글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기능과 현실적인 의의가 분명히 있을진대, 그것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것 역시 독단이 될 것이다.


  이 글이 백안시하는 것은 논문중심주의이지 논문이 아니다.……논문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논문이라는 형식 자체를 일방적으로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논문이라는 형식성이 학문성을 전유할 수 있다고 믿는 허위 의식과 강박 그리고 이를 가능케 만든 문화 역학을 교정하자는 발상이다.51)


  인문학 연구에서 이러한 허위의식과 강박을 깨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는 당연하게도 가열찬 비판정신이다. 비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곳에서는 적당한 타협과 서로의 눈속임이 있을지언정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발을 붙이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앞서 말한 ‘끼리끼리 서로를 뜯어먹고 사는 먹자판’만이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된다. 우리는 다만 눈을 질끈 감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52) 비판과 토론이야말로 우리의 머리 위에 들씌워져 있는 ‘緊箍’의 테를 깨는 유일한 방법일 터이다.53) 그런 의미에서 글쓴이는 때로 ‘다수결’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다수결의 횡포’와 ‘중우정치’의 폐해가 심히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우리는 ‘다수결’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그것은 자체 내에서 합의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미리 포기했기 때문에 성급하게 이루어내는, 공동체의 부재에서 비롯하는 행동이며 관습이다. 다수결의 법칙은 실은 공동체를 만들어 갈 사고력, 대화의 근거를 마모시키는 악순환의 고리였다.……토론이 억제된 사회에는 두 종류의 소리가 있을 뿐이다. 외부에서 온 권위적 목소리와 ‘웅성거림’이 그것이다.54)


그 결과 홀로 자립하지 못하는 식민지 백성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의 경험에서 오는 지식보다는 권력을 가져다 주는 남들이 만들어 낸 ‘큰 이야기’”이거나 “통성기도”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55)

  그러므로 논문이라는 글쓰기에 있어 중요한 것은 논문의 주체를 세우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논문이라는 양식의 글이 “객관적인 지식을 중립적으로 전달하는 소극적 매개가 아니라, 특정한 종류의 인식을 특정한 종류의 지식으로 만들어 특정한 편향과 함께 구성하는 적극적 주체”56)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논문의 주체는 합리적인 주체이기도 하다.


  논문의 주체를 합리적인 주체로 전제하는 것이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논문양식에 이 전제를 드러내지 않고 당위의 형태로 탈바꿈시켜 인위적인 것을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기제가 작용하기 때문이다.……논문양식이 논문의 주체를 합리적인 주체로 위장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는 논문에서 논문의 주체를 일인칭 대명사 ‘나’로 지칭하는 것이 기피된다는 사실이다.……그러나 논문양식은 그 생략을 통해서 주관적 주장을 객관적 논증으로 격상시킨다.……‘학문적이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주체’로만 보더라도 논문의 주체는 국지적인 입장에 서있을 뿐인데, 논문의 양식은 이 국지성을 드러내지 않고 숨겨버린다.……따라서 논문주체는 ‘일상적이고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주체’로서 가져야 하는 특정한 이념과 복수적이고 때로 모순적이기도 한 이념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 않고, 그 이념이 허용하는 입장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사용을 금지하는 논문양식은 논문주체가 ‘학문적이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주체’라는 전제를 당위로서 강용하면서, 실제로 그것이 국지적이고 이념적인 입장에서 나론 것이라는 사실을 억압하고 은폐한다.57)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논문을 쓰고 있는 주체의 확립이고, 그러한 주체의 확립을 통해서 우리 학문 활동의 주요 무대인 논문이라는 형식의 글은 학문적 실천으로 승화될 것이다. 이 글에서 글쓴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학문적 실천이 꼭 논문이라는 형식으로 규정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역으로 이것은 “논문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양식으로 쓸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58)이기도 하다. 글쓴이는 그것을 대안 논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자 한다.59) 이러한 대안 논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논문에 연구의 결과를 제시할 뿐 아니라 그 연구를 가능하게 한 여러 전제들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논문이 어떤 시각에 의해 씌어지고 어떤 현실적 맥락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이념을 전제하고 어떠한 전략적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등에 대한 메타 논평을 논문의 내용에 포함시킴으로써, 논문구성이 표방하는 합리성이 보편적으로 유효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줄 필요가 있다.60)


  진리의 세계로 가는 길이 어찌 외길뿐이겠는가? 삼라만상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을진대, 무심해 보이는 牛溲馬勃도 나름의 우주적 질서를 가지고 있는 것. 인간이 제 분수를 모르고 무지와 아집에 사로잡혀 독단에 빠질 때 이미 파국의 길로 크게 한 걸음 내딛게 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상한 일이다. 왜 꼭 그런 겸허함은 ‘懷才不遇’의 ‘發憤著書’로부터 배우게 되고,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잎이 진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61)일까?


              강가에서


                                  김수영


저이는 나보다 여유가 있다

저이는 나보다도 가난하게 보이는데

저이는 우리집을 찾아와서 산보를 청한다

강가에 가서 돌아갈 차비만 남겨 놓고 술을 사준다

아니 돌아갈 차비까지 다 마셨나보다

식구가 나보다도 일곱식구나 더 많다는데

일요일이면 빼지 않고 강으로 투망을 하러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반드시 4킬로가량을 걷는다고 한다.


죽은 고기처럼 혈색없는 나를 보고

얼마전에는 애 업은 여자하고 오입을 했다고 한다

초저녁에 두 번 새벽에 한 번

그러니 아직도 늙지 않지 않았느냐고 한다

그래도 추탕을 먹으면서 나보다도 더 땀을 흘리더라만

신문지로 얼굴을 씻으면서 나보고도

산보를 하라고 자꾸 권한다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는데

남방샤쓰 밑에는 바지에 혁대도 매지 않았는데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고

그는 나보다도 짐이 무거워 보이는데

그는 나보다도 훨씬 늙었는데

그는 나보다도 눈이 들어갔는데

그는 나보다도 여유가 있고

그는 나에게 공포를 준다


이런 사람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다 그처럼 살고 있는 것같다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같다

나는 이렇게도 가련한 놈 어느사이에

자꾸 자꾸 小人이 돼간다

俗돼간다 俗돼간다

끝없이 끝없이 동요도 없이



< 참고한 글들 >



C. 카아터 콜웰, ������문학개론������, 을유문화사, 1973.

甲戌本 ������紅樓夢評������ <凡例>, ������紅樓夢資料匯編������, 天津;南開大學出版社, 1983.

강준만, <‘기지촌 지식인’을 질타하는 김영민의 글쓰기 혁명--따로 노는 삶과 앎의 결혼을 위하여>, ������인물과 사상������ 제3호, 서울;개마고원, 1997.8.

강준만, <한국은 서울대를 유일신으로 모시는 광신적 사교집단?>, ������인물과 사상������ 제1권, 서울;개마고원, 1997.1.20.

김병익, <컴퓨터는 문학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새로운 글쓰기와 문학의 진정성������, 서울;문학과지성사, 1997.

김영민, <글쓰기․인문학․근대성>, ������열린지성������ 제3호, 서울;교수신문사, 1997 겨울.

김영민, <기지촌의 지식인들>,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서울;민음사, 1996.

김영민, <논문중심주의와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서울;민음사, 1996.

김영민, <복잡성과 잡된 글쓰기: 글쓰기의 골과 마루>,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서울;민음사, 1996.

김용옥, ������여자란 무엇인가������, 서울;통나무, 1986.

김정근, <문헌정보학 연구에서 ‘실천적’ 글쓰기란 무엇인가>, ������열린지성������ 제3호, 서울;교수신문사, 1997 겨울.

신광현, <대학의 담론으로서의 논문―형식의 합리성에 대한 비판>, ������열린지성������ 제3호, 서울;교수신문사, 1997 겨울.

쓰쓰이 야스타카, ������다다노 교수의 반란������, 서울;문학사상사, 1996.

움베르토 에코, ������글쓰기의 유혹������, 서울;새물결, 1994.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어떻게 쓸 것인가������, 서울;이론과실천, 1991.

월터 J. 옹,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서울;문예출판사, 1995.

윤노빈, ������신생철학������, 서울;학민사, 1989.

이원태, <폴리페서 신드롬>, ������정치비평������ 창간호, 1996.

이필렬, <과학의 민주적 통제를 위하여>, ������녹색평론������ 제37호, 대구;녹색평론사, 1997.11.

임상우, <비판적 지성과 책임의 윤리>, ������문학과 사회������, 94년 겨울호.

조혜정, <문화적 자생력 기르기>, ������열린지성������ 제3호, 1997 겨울.

테드 알렌, 시드니 고든, ������닥터 노먼 베쑨������, 서울;실천문학사, 1991.

허세욱, ������중국고대문학사������, 서울;법문사, 1986.


 * 祥明大學校 中語中文學科 助敎授


 1) 언어학에서는 넓은 의미의 ‘말language’과 좁은 의미의 말을 구별하는 경향이 있다. 넓은 의미의 말이라 함은 각자의 생각을 표출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 곧 음성을 통한 말뿐만 아니라 手旗, 모르스 부호, 이것을 응용한 야간에 배와 배 사이에 의사 전달을 위해 불빛을 깜박이는 것, 또는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까지가 모두 넓은 의미에서의 말에 속한다. 반면에 좁의 의미에서의 말은 사람의 조음기관을 통해 발화된 것만을 가리킨다. 혹은 이것을 말language과 언어학linguistics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2) “字字看來皆是血, 十年辛苦不尋常.” 甲戌本 ������紅樓夢評������ <凡例>, ������紅樓夢資料匯編������, 天津;南開大學出版社, 1983. 100쪽.


 3) 무슨 삼류 소설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친구는 정력적으로 자판을 두들기다가 불치의 병으로 삼심대 초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버렸다. 혹시 글쓰는 사람들에게는 한 사람이 평생에 쓸 수 있는 글의 분량이 정해져 있는데, 그 양을 다 채우고 나면 제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오롯이 손털고 일어나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4) 김용옥, ������여자란 무엇인가������, 서울;통나무, 1986. 274쪽.


 5) 김병익, <컴퓨터는 문학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새로운 글쓰기와 문학의 진정성������, 서울;문학과지성사, 1997. 58쪽.


 6) 김병익, 같은 책, 59쪽.


 7) 김병익, 같은 책, 59쪽.


 8) 김용옥, 앞의 책, 274쪽.


 9) 그러나 글쓴이 자신은 컴퓨터가 과연 문명의 이기인지에 대해서 별로 긍정적이지 못한 입장을 갖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차후에 따로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상론하지 않기로 하겠다.


10) “蓋爲世戒, 非爲世勸也. 余嘗曰: 讀������金甁梅������以生憐憫心者, 菩薩也; 生畏懼心者, 君子也; 生歡喜心者, 小人也; 生效法心者, 乃禽獸耳.”


11) 잘 알려진 대로 푸코는 그의 담론 이론을 통해 권력과 지식의 연계론에 대해 설파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권력이라고 하는 것은 지식에 의해 가장 효과적으로 운용되고 창출된다고 한다.


12) 월터 J. 옹,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서울;문예출판사, 1995. 123쪽.


13) 월터 J. 옹, 같은 책, 123쪽.


14) 움베르토 에코, ������글쓰기의 유혹������, 서울;새물결, 1994. 102-103쪽.


15) “先秦 시대의 ������詩經������, ������楚辭������ 등 전통문학 형식의 절충에다, 先秦 이래로 전래되어 온 民歌가 樂府에 采入되고, 다시 文人은 樂府를 모방한 외로, 문학의 진화력과 내적 수요에 의한 것이다.” (허세욱, ������중국고대문학사������, 서울;법문사, 1986. 138쪽.)


16) “매체는 메시지’라는 마샬 맥루한의 주장은 매우 유효하다.……즉 형식이 내용을 얼마든지 지배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글쓰기의 문제는 형식의 문제인 동시에 내용의 문제다. 글쓰기 문제는 곧 학문의 문제인 것이다.” (강준만, <‘기지촌 지식인’을 질타하는 김영민의 글쓰기 혁명--따로 노는 삶과 앎의 결혼을 위하여>, ������인물과 사상������ 제3호, 서울;개마고원, 1997.8. 287쪽.)


17) 신광현, <대학의 담론으로서의 논문―형식의 합리성에 대한 비판>, ������열린지성������ 제3호, 1997 겨울. 13쪽.


18) 모범적인 논문 글을 쓰고자 하는 데 필요한 덕목들에 대해서는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어떻게 쓸 것인가������(서울;이론과실천, 1991)를 참고할 것. 이 책은 논문, 특히 학위논문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훌륭한 지침이 될 만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으므로 일독을 권한다. 그러나 글쓴이의 이 글은 에코의 책 등에서 제시되고 있는 모범적인 논문 글들에 대한 비판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역으로 별 탈없이 순탄하게 학위논문이 통과되어 조속한 시일 내에 제도권 학문의 세계로 편입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이 글이 독약이 될 수도 있으니, 잘 헤아리기 바란다.


19) 신광현, 앞의 글, 12-13쪽.


20) 이 부분은 ������시학������의 제7장 첫머리 부분의 내용을 압축 요약한 것이다.(C. 카아터 콜웰, ������문학개론������, 을유문화사, 1973. 17쪽.) 보다 구체적인 것은 ������시학������ 제7장을 참고할 것.


21) 신광현, 앞의 글, 14쪽.


22) 신광현, 앞의 글, 20쪽.


23) 신광현, 앞의 글, 13-14쪽.


24) 신광현, 앞의 글, 26쪽.

    “지금의 우리에게 논문은 표현과 전달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학문성>이라는 우리의 생명력을 독점함으로써 우리의 생존을 좌우하는 독재자이다. 이미 우리의 학문은 논문에게 바치는 연중 제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논문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선택하거나 폐기할 수 있는 <하나의(a)> 방식이 아니라 학자로 행세하려는 자라면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하나뿐인(the)> 방식이다.” (김영민, <논문중심주의와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서울;민음사, 1996. 17쪽.)


25) 신광현, 앞의 글, 18쪽.


26) 윤노빈, ������신생철학������, 서울;학민사, 1989. 43쪽.


27) 우리가 대중음악을 이야기할 때, 흔히 듣게 되는 ‘전설적인 록그룹’이니 하는 말을 떠올려 보라. 이 때의 ‘전설적인’이라는 끌리셰cliché는 유명한 음악인들에게 붙여지는 시니피앙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매니아들 사이에 통용되는 일종의 기호인지도 모른다. 그런 상투적인 기호를 주고받으면서 해당 록그룹이나 가수는 진짜 전설이 되고 신비화되며, 그런 과정을 통해 하나의 문화 권력으로까지 떠받들여진다.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그들이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수다스러운 매스콤을 통해 부풀려지고 왜곡되어 어린 백성들을 지배하는 것이다.


28) 강준만, 앞의 글, 283-284쪽.


29) 강준만, 앞의 책, 288쪽.

    자연과학의 경우는 이필렬의 <과학의 민주적 통제를 위하여>(������녹색평론������ 제37호, 대구;녹색평론사, 1997.11.)를 참고할 것.


30) ������25시������의 작가 게오르규가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과 의의에 관해 언급하면서 든 비유이다. 잠수함 속은 시간이 가면서 공기가 희박해지기 마련인데, 토끼는 그런 상황 변화를 인간보다 빠르고 예민하게 감지한다. 그래서 잠수함에는 토끼를 태우게 되는데, 한 사회 내에서의 지식인들 역시 ‘잠수함 속의 토끼’와 마찬가지여서, 현실의 부조리나 억압적인 상황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민감하게 반응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자 책무라는 것을 말한다. 魯迅은 이러한 상황을 ‘鐵屋中的吶喊’이라는 비유로 설파하기도 했던가?


31) 필요하다는 표현에 주목하기 바란다. 학위라는 것이야말로 근대 이후 받아들인 서구적인 학문 방식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 숨쉬는 현실적 요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학자의 길을 걷겠다고 나선 한 사람의 토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사람에게 학위는 인식론적 차원에서 왈가왈부를 따질 수 없는 정언 명제가 아니라 존재론적 차원에서 수많은 갈등과 망설임을 동반하는 핍박에 다름아니다. 곧 학위는 자본주의 시대에 학인들이 생존을 위해 갖추어야 하는 존재 조건인 셈이다.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전통 시대의 학인들에게 무슨 박사 학위 같은 것이 있어 그들 나름의 학문 세계를 일구었겠는가 하는 회의가 온몸을 휩싸고 돈다. 그런 의미에서 서푼 값어치도 없는, 개도 안 물어갈 교수라는 직책에 목을 매고 있는 자신에 대한 서글픈 자조가 우리의 참담한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새삼 ‘다섯 말의 쌀(五斗米)’ 앞에 선 자신이 불쌍해진다.


32) 김영민, <글쓰기․인문학․근대성>, ������열린지성������ 제3호, 1997 겨울. 79쪽.


33) 김정근, <문헌정보학 연구에서 ‘실천적’ 글쓰기란 무엇인가>, ������열린지성������ 제3호, 1997 겨울. 85쪽.


34) 정확한 수치를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증거라고 하는 말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글쓴이가 이 글의 후속편격으로 준비하고 있는 다른 글에서 상론하기로 하겠다. 여기에서는 단지 근대화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여러 담론들의 결정론적, 환원론적 입장들에 대해 글쓴이는 그 반대의 입장에 서 있다는 것만 밝혀두기로 하겠다.


35) “문부성에는 비교적 우수한 관료가 있어서 말이에요, 이 사람들은 대학 교수의 90%는 목을 잘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전혀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죠.……미국의 어느 SF작가가 SF 작품 대회에서 ‘SF의 90%는 쓰레기다’라고 말했습니다. 전원이 뜨끔하던 차에, ‘어떤 것이든 90%는 쓰레기다’라고 말했죠.”(쓰쓰이 야스타카, ������다다노 교수의 반란������, 서울;문학사상사, 1996. 64쪽.)


36) “우리는 대학교수라고 하면 비교적 합리적이고 양심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의 집단이기주의는 정치인들 못지 않거니와 그들은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 고집을 부린다는 점에서 가장 악성의 집단이기주의를 갖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강준만, <한국은 서울대를 유일신으로 모시는 광신적 사교집단?>, ������인물과 사상������ 제1권, 개마고원, 1997.1.20. 182쪽.)


37) ‘폴리페서’에 대해 자세한 것은 이원태의 <폴리페서 신드롬>(������정치비평������ 96년 창간호, 231-240쪽)을 참고할 것.


38) “원전의 땅에 대한 근거 없는 강박과 외경에 휩싸여, 읽고 번역하고 베끼고, 또 읽고 번역하고 베끼면서 평생 단 한번도 자신의 체험을 자신의 말로 진지하고 힘있게 내뱉지 못한 채 기껏 정년퇴임기념논문집이나 한 권 얻어 미지근한 미소를 품은 채 무덤 속으로 입장하고 마는 삶을 ‘학문’이라 부를 수는 없다.” (김영민, <복잡성과 잡된 글쓰기: 글쓰기의 골과 마루>,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서울;민음사, 1996. 199쪽.)


39)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른 사람은 나중에라도 오히려 살이 찔 수 있지만, 선비가 속되면 고칠 수 없다(人瘦尙可肥, 士俗不可醫)”는 말이 효력을 잃는 것은 아니다.


40) ‘緊箍’는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孫悟空을 통제하기 위해 그의 머리 위에 씌워놓은 테이다. 삼장법사가 ‘緊箍의 呪文’, 곧 ‘緊箍呪’를 외우면 그 테가 孫悟空의 머리를 조여 맥을 못추게 하는 것이다.


41) 김영민, <기지촌의 지식인들>,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서울;민음사, 1996. 86쪽.

   참고로 글쓴이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우리의 이웃인 대만에서는 석사 논문이건 박사 논문이건 심사는 엄격하게 하지만, 우리 식의 식사 대접이나 이런 것은 없고, 다만 논문 심사가 완전히 끝나 논문 통과가 확정되는 날 지도교수가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거나 자기가 돈을 내서 밖에서 저녁 한 끼 먹는 것으로 끝난다. 우리의 관행에 대해 글쓴이가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 물어보면 누구나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데 공감을 하면서도 이제까지 그래왔는데 어떻게 그 현실을 벽을 깰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말을 맺곤 한다. 우리의 스승들은 제자들을 위해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저녁 식사 자리 한번 가질 만한 애정을 갖고 있지 않단 말인가? 그 정도 애정도 없다면 거꾸로 그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도 말 일이다. 제자들의 일방적인 존경만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인 것이다. 제자들이 무슨 봉이라도 된단 말인가?


42) 김영민, <논문중심주의와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서울;민음사, 1996. 28쪽.


43) 김정근, 앞의 글, 86쪽.


44) 강준만, 앞의 책, 292쪽.


45) “데리다의 책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고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괴로울 때 꺼내 보는 숨겨 둔 보석이나 실크 블라우스일까?” (조혜정, <문화적 자생력 기르기>, ������열린지성������ 제3호, 1997 겨울. 52쪽.)


46) “기지촌 양공주들의 몸을 위한 약은 마이신이지만, 기지촌 지식인의 정신을 위한 약은 <허위 의식>이라는 좀 묘한 놈이다. 허위의식이란 삿된 방식으로 정당화된 신념의 콤플렉스라고 정의할 수 있다.” (김영민, <기지촌의 지식인들>,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서울;민음사, 1996. 68쪽.)


47) 김영민, <글쓰기․인문학․근대성>, ������열린지성������ 제3호, 1997 겨울. 72쪽.


48) 김정근, 앞의 글, 84쪽.


49) 임상우, <비판적 지성과 책임의 윤리>, ������문학과 사회������, 94년 겨울호. 146-147쪽.


50) 테드 알렌, 시드니 고든, ������닥터 노먼 베쑨������, 서울;실천문학사, 1991. 112쪽.


51) 김영민, <논문중심주의와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서울;민음사, 1996. 23쪽.


52) 한 동네에서 똑같이 가난하게 살던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돈을 많이 벌었다. 다른 한 사람이 그에게 가서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나?” 그가 말했다. “한 십년 동안 돼지처럼 살게나.” 다른 사람이 또 물었다. “그 다음엔?” 그가 대답했다. “그 다음엔 아주 간단하네. 이미 돼지가 되어버렸으니까.”


53)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라는 개념을 진리와 사회 비판의 준거로 삼고 자신의 논지를 펼쳐 보인 바 있다. 그가 말한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란 이해 당사자들이 서로 대립되는 현안에 대해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발언의 기회를 고루 부여받아 결론이 날 때까지 토론을 해보는 것을 가리킨다.


54) 조혜정, 앞의 글, 43쪽.


55) 조혜정, 앞의 글, 44쪽.


56) 신광현, 앞의 글, 37쪽.


57) 신광현, 앞의 글, 16-17쪽.


58) 신광현, 앞의 글, 36쪽.


59) 이 말은 참교육을 지향한 “대안 학교alternative school”나 기존의 의학에 대한 불신에서 나온 “대체 요법alternative therapy”과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


60) 신광현, 앞의 글, 18쪽.


61)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也.” (������논어������<자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