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서사 텍스트의 미래 |
| [기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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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학술저널담비, 강덕화 master@dambee.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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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대학원신문 147호] 원고지 위에서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이 움직임과 멈춤을 반복한다. 그 위에는 그만의 흔적이 남는다. 다시 거기에는 어지러운 교정부호가 붙고 첨가와 삭제가 이루어진다. 긴 시간이 지나고 난 후 완성된 육필 원고의 난삽함은 독자들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디지털 코드가 등장하면서 글쓰기 환경은 변하고, 그 원고에 서린 아우라를 만나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는 모니터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삽입과 삭제, 자르기, 복사하기, 붙이기가 계속된다. 디지털 코드가 초래한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변화는 서사물의 재현 형식, 그리고 저자 - 독자의 관계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난다. 디지털 코드는 자유로운 글쓰기의 무한 공간을 제공한다. 그러자 은밀한 곳에서만 떠다니던 이야기들이 그들만의 카테고리를 만들어 부상한다. 그들은 거리낌 없이 ‘저자’를 자처하고 나선다. 그리고 거기에 머무는 순간의 행복감을 만끽하면서 자신들의 문법을 강령으로 삼는다. 그들에게 저자와 독자의 구분은 어떤 의미도 없다. 독자는 저자의 글쓰기에 간섭을 하고, 저자는 그 간섭을 즐겁게 받아들인다. 서사물의 무거움 여부가 그들의 교유(交遊)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단지 활달한 소통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의 목적은 인터랙션(interaction)에 기반한 글쓰기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그 자체일 것이다. 이러한 디지털 코드가 만들어낸 새로운 형식의 서사물이 하이퍼텍스트 소설이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하이퍼텍스트 소설은 선형성의 전복에서 출발한다. 순차를 벗어나 페이지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여러 노드(node)들은 HTML로 조밀하게 연결된다. 서사는 한 지점에서 출발해 복수의 노드를 향하고 각각의 노드에서 또 다른 서사가 다시 시작된다. 사건은 연쇄적으로 분화하고, 동영상과 음악, 그리고 이미지 등이 결합하며 서사의 규모는 점점 확산된다. 독자는 그 서사가 만들어낸 미로에 갇히곤 한다. 지속적인 클릭으로 끝없이 순환하면서 결말에 도달하지 못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는 거기 체류하는 시간 동안 현실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영영 빠져나가지 못할 듯한 불안감을 동시에 체험하게 될 것이다. 하이퍼텍스트 서사, 실체는 없고 담론만 그런데 하이퍼텍스트 서사에 대한 논의는 실체가 전무한 상황에서 담론만 무성하게 펼치고 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텍스트가 부재한 상황에서 관념, 또는 상상으로만 디지털 서사를 만나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1천1백여 개의 텍스트 단위(text spaces)와 2천여 개의 링크, 그리고 40분 이상의 OST를 갖고 있는 마크 아메리카(Mark Amerika)의 그래마트론(Grammatron)과 같은 텍스트가 있을 때 하이퍼텍스트 서사에 대한 이론적 탐구가 생산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디지털 서사에 관한 연구가 기존의 문학 연구와는 다르고, 새로운 서사의 세계에 대한 탐험으로 여기는 이들은 디지털 코드와 접촉한 텍스트를 모두 디지털 서사로 분류하고 싶은 욕망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자들을 종이책의 지면에서 LCD 화면으로 가져온다고 해서 디지털 서사텍스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소설, 재현의 매체가 옮겨졌을 뿐 최근 유명 작가들의 소설이 인터넷 블로그에 연재가 되면서 화제가 되고 있고 그 작품들은 ‘인터랙티브 소설’로 분류되고 있다. 그것은 디지털 서사의 지위를 부여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러한 분류는 재현의 매체가 종이에서 웹으로 옮겨 온 것뿐이기 때문에 부적절하다. 즉 그들의 작품을 종이책의 공간 밖에서 만난다고 해서 디지털 서사의 분류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또한 그것이 뜻밖의 ‘정찬’이어서 품격이 수용되는지 여부와도 무관하다. 원고지에서 종이책으로 가는 도중에 블로그의 공간을 거친 이유가 단지 저자의 권위에 복속하는 짧은 덧글을 받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인터넷에서의 클래식한 글쓰기’의 실현을 위해 재현 매체를 다양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디지털 서사텍스트가 부재하는 시대에 있음을 자인해야 한다. 아마도 미래의 텍스트를 맞기 위해 담론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애써 위안할 수도 있다. 곧 도래할 그 서사는 저자가 뿌려놓은 의미의 분편들을 주워 조합해가는 수동적 독자가 아니라 ‘참여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독자의 출현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형적 서사의 가치가 부정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더욱이 거장에 의해 형성된 광휘 가득한 웅장한 서사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삶의 깊은 허무를 만나고 때로는 위안을 받으며 자신을 둘러싼 속악한 세계와 맞서는 힘을 얻기 때문이다. 디지털 서사와 선형적 서사의 공존 그 디지털 서사텍스트는 선형적 서사와 공존하는, 그러면서 디지털 코드라는 편리한 도구로 만들어진 보다 정치하고 흥미로운 서사물이어야 할 것이다. 수많은 스토리라인이 겹쳐지면서 모듈성의 구현이 가능한 서사, 문자와 영상이 현란하게 조합 되면서 독자와 사용자들을 서사의 세계로 몰입시키는, 그래서 뉴미디어의 특성을 함유하면서 독자를 서사의 바다에서 끝없이 항해하도록 하는 그런 서사이다. 그 때 독자는 그것을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주변에 떠다니는 서사의 조각들을 조합하면서 디지털 서사텍스트가 조성한 매혹의 길에 발을 조심스럽게 내딛을 것이다. 강덕화 /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박사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