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인문학, 상상력을 키워야 산다"

기사입력 2008-05-26 03:55 |최종수정2008-05-26 06:58 기사원문보기
기술·예술·지식 통합한 '테크네 인문학'추구해야

연세대 미디어아트硏 학술대회


인문학과 과학기술 사이의 '지식 대통합'은 인문학을 위기에서 기회로 바꿔놓을 수 있을까?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소장 임정택)가 22·23일 이틀 동안 개최한 설립 10주년 기념 학술대회 '테크네 인문학을 향하여'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참석 학자들은 학술회의 개막식에서 '테크네 인문학 선언'을 했다. 그리스어인 '테크네(techne)'는 기술·예술·지식을 통합한 개념이며, '테크네 인문학'이란 인문학을 기반으로 지식·예술·기술의 통합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인문정신은 인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과학자가 건강한 인문정신을 결여하면 과학이 인간과 자연을 황폐화하는 도구로 전락하며, 인문학자가 인문학의 울타리에 갇혀 과학과 기술에 무지하다면 세계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삶과 죽음, 인간과 기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미래에 인문학과 테크놀로지는 새로운 통합과 소통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소측은 또한 "인문학은 최대의 기회"라고 주장했다. 현실적으로 인문학이 위축된 상태긴 하지만, 학문의 역사를 볼 때 인문학은 늘 위기를 맞았으며 그 위기는 서구의 르네상스나 조선의 실학처럼 인문학의 부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임정택 소장은 "기술문명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다시 인문학을 찾을 것이고, 인문학에게 필요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역발상"이라고 말했다.

학술대회에 발제자로 참석한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인문학적 통찰은, 인간이 기술을 지배한다든가 지배당한다는 관점을 탈피해서, '우리의 일부분으로서의 기술' '기술의 일부분으로서의 우리'를 생각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을 비판하기 전에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며, 인문학은 이를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상원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HK연구교수는 산부인과의 초음파 기술을 통해 임산부가 태아에 대한 정서적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을 예로 들며 "현대적 테크네와 인간이 상호작용하는 한 전형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테크네 인문학은 이처럼 인간과 기술이 만나는 세계와 씨름하며, 인식적·존재적 의미를 파헤치고 인문학의 새로운 막을 열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연구소측은 인문학의 '기회'가 될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서 '상상력'을 주목했다. 상상력이야말로 기술 강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는 상상력에 관한 한 초보 단계에도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소는 상상력 교육 콘텐츠를 개발해 초등학생에서 대학생에 이르는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고, 성인과 전문경영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상력 CEO' 과정도 계획하고 있다.



2008년 5월 23일 연세대에서 열린 '테크네 인문학을 향하여' 학술대회의 토론 모습. /유석재 기자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