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문화혁명>
(6)제3의 공간‘마음의 생태계’
최근에 필자가 보았던 컴퓨터가 통제하는 인공지능(AI)의 가상 세계를 묘사한 영화들 중 압권은 단연 ’매트릭스’였다.이 영화는 우리에게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일상 삶 전체가디지털 세례를 받아 ’매트릭스화(化)’되었을 때 과연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즉 실재성과 가상성 사이의 ’문지방’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그런데 얼마전 누군가 이 문지방을 과학자들이 시키는대로 넘어갔다가 숨진 사건이 일어났다.

게임에 몰입해 하루 10시간씩 온라인 게임을 하던 부산의 한 30대 게임방 업주가 게임 도중 심장마비로 숨졌던 것이다.이 사건에 대해 당시 경찰은 게임방 업주가 게임에 ’중독’되어 과로와 스트레스로 숨졌다고 발표했지만, 훗날 필자와 같은 사람들은 그를 가상공간에서 숨진 최초의 한국인으로 기록할지 모른다.

그는 인간의 몸이 생리적으로 유지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과 수면을 무시하고 정말로 문지방 넘어 가상 세계로 가버렸던 것이다. 현재 우리의 아날로그 세계에서 매트릭스(가상공간)로 들어가는데는 아직도 특정한 ’물리적이고,인간적인 문지방’들이 존재한다.

예컨대 우리는 아직 자장면을 시켜 먹으며 온라인게임을 하고, 조성모라는 인간의 노래를 인터넷 MP3 사이트에서 내려받고, 사랑하는 사람과는 휴대폰을 꺼놓고 섹스를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모든 물리적 문턱들이 사라지고 영화처럼 온세상이 가상 현실로 이루어졌다고 말이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앞서 숨진 게임방 업주처럼 ’중독되었다’는 말을 쓰기가 어려울지 모른다. 왜냐하면 중독이란 말은 특정한 일에 몰입해서 빠져들었을 때 쓰는 용어로서 몰입이 일상화되어버린 세상에서 중독은 이미 그 의미를 상실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기술공학자들이 추구하는 ’편재 컴퓨팅’(제록스 팔로 알토 연구소에서유래한 이 용어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정도로 컴퓨터가 도처에 편재해 비가시적으로 인간의 능력을 증가시킴을 의미한다)이란 용어는 세상에서 모든 물리적 문턱들을 없애고 궁극적으로 ’디지털 매트릭스의 일상화’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기술 자체의 가능성보다 기존의 문화로부터 학습된 인간 삶을 어떻게 중재하고,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이다.

오늘날 전자공학의 무한 질주 속에서 우리의 삶은 비물질적인 ’비트’로 이루어진 데이터로 환원된다. 우리는 육체와결부된 물리적 실존보다 컴퓨터가 통제하고 ’마음이 지시하는 공간’ 속에 놓여진다.

이는 정보와 통신망으로 구축된 가상의 환경으로서 한마디로 우리의 마음이 서식하는 ’마음의 생태계’라 할 수 있다. 가상공간에서 마음의 생태계를 기존의 아날로그 문화로부터 학습된 의미로 이해하는 가장좋은 방법은 건축이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접속을 통해 ’들어가야’한다는 점에서 일종의거주를 위한 건축적 공간으로 이해될 수 있다. 가상공간은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인터넷 웹페이지처럼 평면적 매체라기 보다는 ’건축적 구조물’의 의미에 더 가깝다.

가상공간은 신체적 거주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쇼핑몰, 도서관, 광장, 채팅방과 같은 수많은 상징적 상호작용을 위한 구조물들로 이루어진 건축적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견고한 구조물의 건축과 달리 정보, 인지, 행위에 의해 끊임없이 공간적으로 변조되는 속성을 갖는다.’마음의 행로’에 따라 정보가 유영하는 ’액질의 연속체’와 같은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상공간의 기본 구조를 이루는 하이퍼미디어는 ’직지심경’이래 인쇄매체(책)가 주로 단일한 문자 텍스트에 의존했던 것과는 달리 다중매체들이 동시에작용하는 잡종적(하이브리드) 텍스트성을 동반한다.오늘날 후기구조주의 비평 이론가들이 하이퍼미디어에 주목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가상공간에서의 모든 인간 행위는 항해와 검색 모두를 가능케하는 각종 상징적 재현들(현재는 주로 시각ㆍ청각적 기제만을 사용하고 있지만 점차 촉각, 후각, 미각 등의 오감 영역 전체로 확장될)과 사용자가 파악하는 의미 구조가 어떻게 쌍방간에 상호작용하는가에 좌우된다.이 때 중요한 것은 ▲정보의 구조화▲다중매체로 제시된 풍부한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상호작용의 역동성 등이다.

따라서 가상 공간의 디자인은 과거처럼 단순히 물리적 이미지를 멋지게 만드는 것 이상으로 정보와 인지 구조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각별한 이해가 요구된다. 자발적인 흥미를 유발하는 정보 탐색과 함께 사용자들이 지닌 다양한 ’문화적 감수성’을 이해하고 이를 의미있는 구조로 만들어내야 한다.

인터페이스(interface)란 이와같이 가상공간에서 인지적기제를 제시하는 방식이며, 인터페이스 디자인이란 이를 통해 인간이 마음의 생태계에서거주하는 방식을 해석하고 창조하는 행위를 뜻한다.

만일 이러한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기본 성격을 이해한다면 가상공간은 누군가 혁명적 양상을 부풀려 떠들어야 할 용어가 아니라 문화적 차원에서 세심하게 접점을 찾아야할 용어인것이다.

새로운 가상공간에 대한 어떠한 개발과 이해도 문화와 관련되지 않고서는 절대로 성취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상공간을 둘러싼 모든 기술적 문제는 기존의 인간 소통방식과함께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온 의미와 가치, 대중 미디어의 제도와 형태, 각종 여가와 오락공간들과 어떤 방식이로든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문화적 이슈들이 충분히 다루어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는 우리가 현재 가상공간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 용어 사용에서부터 뒤죽박죽이라는점이 입증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인터넷 웹사이트(Website)라는 말에서 3차원의 ’입체적 장소’를 지시하는 공간적 의미로 ’사이트’란 말을 쓰면서, 한편으로 ’웹페이지’(Webpage)라는 말에서 2차원적인 평면 ’쪽’의 체계로 이루어진 ’책’의 은유를 사용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이해 방식이 현재 가상공간 인터페이스 개발이 지닌 한계이자 앞으로 열려질 또 다른 가능성인지도 모른다. 만일 누군가 가상공간을 본격적인 건축적 은유로 이해한다면 현재의 웹페이지 디자인의 양상은 상당히 다른 모습을 취하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가상공간의 인터페이스에 대한 현재의 디자인은 주로 소프트웨어적 측면만이 강조되지만 실제로는 물리적 공간에서의 신체적 활동성과 관련된 ’하드웨어적 속성’의 개발이요구된다. 일례로 최근 노트북 PC로 무선 네트워킹이 가능해지면서 옥외 공간에서 활동 중에 기록하고 전송하는 일이 빈번해 지고 있다.

하지만 컴퓨터를 몸에 어떻게 휴대하고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결책은 아직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류시화의 시집 ’그대가 곁에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를 도시락 크기만한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는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과연 삶에 찌든 소시민들이 따뜻한 봄날,공원 벤치에 앉아 바람결에 시집을 넘기며 휴식을 취하던 그 낭만과 정서를 그 ’도시락통’이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전자책이 곁에 있어도 나는 책이 그립다”는 사람들을 위한 전자책은 어떤 형태와 구조적 인터페이스로 디자인되어야하는가. 어쨌든 이같은 문제들을 통해 우리는 한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새로운 기술을 기존의 문화적 의미체계를 통해 받아들이고 적응해 나간다는 점이다. 아무리급격한 기술 혁명도 문화적 인터페이스의 중재과정을 뛰어넘어 그 자체만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우리는 현재 다만 과거에 제각기 존재했던 매체들이 통합됨으로써 가능한 상상의 지평이 확장되고, 지식을 대하는 방식이 교란되고, 이를 운영하는 마음의 생태계가 동요를 겪는 ’문화적 연속성’의 한 단계를 겪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기술혁명을 무조건 찬양하거나 거부하기보다는 인간 지식과 경험의 연속선상에서 논의하려는 침착한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상공간 디자인에는 인간의 언어, 사고, 행동, 문화의 접점을 찾기 위한 인문ㆍ사회과학, 인지과학, 예술 등의학제간 네트워킹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주변에는 기술의 위력만을 융단폭격식으로 사회에 퍼붇는 가해자, 이에 극도의 사회적 공포와 학문의 위기를 느끼는 피해자, 가상공간에 ’몰입하는 인터페이스’만을 개발할 뿐 ’인문적 지혜를 지닌 인터페이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기술자, 그리고 정보, 인지, 마음의 생태계가 무엇인지 이해 못하고 단지 ’이쁜 그림’ 그리는 방법만을 가르치고 배우는 디자이너들 밖에는 없다.

바로 이것이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본질이자 아픔이 파도치는 현실인 것이다.

김민수<전서울대교수.디자인문화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