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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문화혁명> (10)‘이해 인문학’에서 ‘표현 인문학’으로 |
컴퓨터를 켜면 너도나도 인문학자’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의 만화 그리기,이것은 지난 학기 철학개론 과목의 숙제였다.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학생은 전자우편으로 제출했다. 300명 넘는 학생들의 숙제들은 하나도 낮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것이었다 몇 년 전에 같은 주제의 논술식 숙제와는 크게대조되는 현상이었다.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논술 주제는 추상적이었다. 학생들이 자신의 문제 상황에서 출발하면서도 결론을 명제로 표상 하는 동안 구체성을 담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그러나 만화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상황을 총체적 문맥에 담을 수 있었다.만화는 보편적 추상성도 ”보일 수 있었기” 때문에 논술 숙제보다 강력한 설득력을 가졌던 것 같다. 학생들은 논술 숙제보다 만화 숙제를 더 좋아했다.영상세대인 탓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좀 더 구조적으로 생각해보면 영상언어의 강력한 논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상언어의 논리는 ’나는 누구인가’란 물음이 발단시키는 인문적 경험을 자연언어의 선형적 논리보다 더 잘 표현하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이 가설은 영상언어의 통사 단위로 사용되고 있는 디지털부터 음미함으로써 지지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는 숫자 시계와 해 시계의 비교로 예시될 수 있다. 숫자 시계는 초와 분과 시간과 날짜의 숫자로 시간을 표시하는 제품임에 반하여, 해 시계는 아무런 표지가 없는 마당에 해의 광선에 의해 드리워진 말뚝의 그림자의 위치와 길이만으로 시간을 나타내는 구성물이다. 해시계같은 아날로그 언어체계는 그 통사적 단위나 의미적 단위가 분절적이지 않고 조밀하다.그러나 숫자 시계 같은 디지털 언어체계는 그러한 단위들이 분절적이지만 조밀하지는 않다.이것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에 대해 전통적으로 수용되어 온 일반적 이해이다. 그래서 해시계와 숫자 시계와 같은 상호 번역 가능한 예외적인 주제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아날로그와 디지털로 표현되는 주제들은 서로로부터 독립되어있다고 믿었다. 회화, 음악, 무용 등의 상형성 내용은 아날로그 언어로만 표현되고, 한국어 같은 자연언어, 수학, 논리 등의 선형성 기호는 디지털 언어로만 표상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의 용량과 속도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전통적 구분을 무효화시켰다. 디지털언어의 분절성 또는 계수화는 물리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상황을 통사화할 수 있다. 정보는 이제 참 문장이 아니라 모든 물리적 상황에 대한 통사구조인 것이다. 인공위성에서 기계적으로 찍힌 모든 종류의 디지털 사진들도 정보이다. 이러한 분절성은 10진법에서 2진법에로 전환되면서 그 통사적 구조의 소프트웨어는 전기의 켬(on)과 끔(off)이라는 하드웨어로 번역된 것이다. 아날로그 언어들이 주제에 따라 달라지는 독립된 문법을 가지고 있었다면 디지털 언어는 회화, 음악, 무용 등을 포함한 모든 주제들을 하나의 문법으로 통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디지털은 통합매체이다. 바벨탑에서 인간의 언어가 흩어졌다면 디지털 체계에서 인간의 언어들은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다. 인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인문학에 대한 공공 지원이 미미하고 학생들도 기피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은 20세기에 들어 혁혁한 업적을 이룬 반면에, 인문학은 전문화라는 명목으로 현실 세계로부터 오히려 멀어져 갔다. 또한 인문학의 학문논리였던 거대논리는 해체의 길을 걷고 있고, 인간에 대한 이해도 인문학의 질적 방법보다는 갤럽이나 게놈 프로젝트 같은 양적 방법에 의존한다.그리고 구조적인 이유는 인문학을 ”고전 읽기를 통한 자유 경험의 확장”이라는 조건이 전통적 모델의 핵심을 이루는데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과거시대에는 기여하였지만 현대에서는 의문시된다. 이것은 이해의 인문학이고 소극적 자유의 인문학인 것이다. 이 모델은 현대 인문학의 위기조건을 부를 만 하다고 보인다. ’고전 읽기의 자유경험’은 억압의 시대였던 과거에는 중요한 목표였다. 인간의 필요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의 강조는 현대인에게 공허하다. 이제 현대인이 추구하는 인간조건은 모두가 자기 방식대로 자기를 성취할 수 있는 적극적 자유이다. 개인은 표현을 통하여 이를 추구해 간다. 자기 성취의 표현은 사람다움이다.’성기성물(成己成物)’ 즉 ”자기를 이루는 것과 만물을 이루는 것은 맞물려 있다”라는 논리이며 유학이 제시하는 하나의 인간 충분조건일 것이다. 이해 인문학은 고대 희랍시대의 신분제나 현대 서구의 자본주의를 통하여 표현 개념을 수월성이라는 올림픽 모델에서 이해하는 경향성을 갖는다.그러나 표현 인문학은 표현개념을 밟힌 자의 고통을 가정하지 않고도 모두가 정상의 경험을 할 수 있는 등산가의 모델에서 그 논리를 구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표현 인문학은 디지털 언어와 맞는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제왕이나 천재만이 표현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모두가 컴퓨터를 통하여 표현할 수 있게되었다. 경제적 사회적 제약이 그만큼 극복된 것이다. 디지털 언어로 구성된 컴퓨터는 연필이면서 종이이고 도서관이면서 편집자인 것이다. 컴퓨터는 그 대행성(agent)으로 도구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 것이다. 문자 발견이 합리성으로 세계경험을 체계화한 동시에 또한 그 선형성으로 이만큼 세계이해를 규격화하였다면, 디지털 언어는 세계경험의 총체성을 복원하여줄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언어는 인간의 인문적 경험의 확장을 통하여 다산 정약용이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르네상스 인간을 양산하여 컨텐츠 웨어를 만들어 낼 것이다. <정대현 이화여대교수·철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