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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문화혁명> (13)디지털 존재의 철학적 의미 |
새 '디지털체'창조내 컴퓨터의 ’배경화면’에는 딸아이의 디지털 사진이 깔려 있다. 일하다가 휴식을 취하고 싶으면 나는 리니지와 같은 멀티 플레이어 온라인 게임 사이트를 거닐어 보기도 하고 3-D 가상 당구게임을 즐기기도 한다. 그러다가는 워드프로세서를 켜고 일하던 문서를 열어 계속 글을 쓰거나 아니면 전자메일을 확인하기도 한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내 딸아이의 사진, 컴퓨터 게임 속에서 나를 대신 하는 캐릭터들, 가상 당구 게임에서의 당구알, 이메일 메시지들, 그리고 그 밖에 내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다른 모든 종류의 컴퓨터 파일들은 모두 비트로 이루어져 있는 디지털 텍스트이다. 우리는 이러한 디지털 텍스트를 ”디지털 존재 (digital-being)’라 부를수 있는데, 이 때 디지털 존재는 사람이 몸으로 지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디지털 정보를 지칭한다. 물론 디지털 존재는 물리적 사물이 아니다. 그러나 디지털 존재는 물리적 사물만 가지고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던 지속성, 실체성, 외연성 등의 여러 가지 ’사물적 특성’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 데카르트는 존재를 사물인 ’연장체’와 관념인 ’인식체’라는 두가지 범주로 나눈 바 있다. 그러나 디지털 존재는 여러 가지 물적 특성과 도구성을 갖고있다는 점에서 연장체의 성격을 지니면서 또 동시에 객관적인 시공간에 편입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인식체의 특성 또한 갖고 있는 독특한 존재이다. 데카르트라면 아마도 이를 ’디지털체’라 불렀을 것이다. 하이데거의 개념을 빌리자면 컴퓨터는 하나의 ’작업도구’다. 하지만 그것의 도구로서 편리성은 디지털 존재인 일련의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서 결정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디지털 존재이지 사물로서의 컴퓨터가 아니다. 어떠한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느냐에 따라서 컴퓨터는 전혀 다른 ’도구’가 될 수 있다. 그것은 통신 수단이 될 수도 계산기가 될 수도 있으며, 타자기, 팩스, 전화, 비디오 플레이어, 라디오, TV가 될 수도 있다. 리니지와 같은 사이버세계로 통하는 은밀한 통로가 될 수도 있고 쇼핑센터가 될 수도 있다. 도구로서의 디지털 존재는 도구적 사물과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현존재가 세계에 연결되는 근본적인 방식은 도구를 통해서다. 하이데거는 도구를 ”무엇인가를 하기 위한 어떠한 것”으로 정의한다. ”하기 위한 것”에는 ’유용성, 기여성, 사용성, 편의성’등이 포함되며 이들 모두가 하나의 도구전체성을 구성한다. 사실 모든 디지털 존재는 처음부터 이미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워드프로세서, 웹브라우저, 그래픽 프로그램이, 커뮤니케이션이, 서치엔진, 통계프로그램,스프레드쉬트 프로그램 등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모든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일정한 ’유용성, 기여성, 사용성, 편의성’을 위해 디자인되고 만들어진다. 물리적 사물에서 우리는 특정한 편리함을 ’발견’하는 반면, 디지털 존재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특별한 편리함을 위해일정한 디지털 존재를 창조한다. 인터넷은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방대한 컴퓨터 시스템이며 월드와이드웹은인터넷을 통해 디지털 존재를 생산하고 교환하고 소비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우리는 인터넷을 디지털 존재를 생산하고 복제해내는 하나의 커다란 시스템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디지털존재를 웹을 통해 주고받는다는 것은 디지털 존재를 하나의 컴퓨터에서 또 다른 컴퓨터로 복제한다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인터넷은 하나의 거대한 디지털 존재의 복제기다. 인터넷 상의 디지털 존재를 통해 우리는 물리적 사물의 시공간적 조건에 제한을 넘어서 타자와의 관계를 수립할 수 있다. 여러 웹사이트를 방문하면서 나는 수 많은 타자들과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게 된다. 웹으로 이루어진 사이버-시공간은 내가 타인의 존재를 경험할수 있고 나의 존재를 타인에게 드러내는 새로운 세계의 지평을 열어준다. 인터넷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곧 타자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인터넷에서 나는 세계의 일부로서 이미 언제나 그 곳에 있는 다른 이들과 공존한다. 사이버-시공간에 있다는 것은 곧 타자와함께 존재한다는 뜻이며 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인터넷 상의 디지털 존재는 현상학의 중심 개념인 세계-내적-존재로서의 현존재에 직결되어 있다. 하이데거는 일반적 의미에서의 우주나 세계 전체, 즉 동물, 식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들의 총합이 곧 세계인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세계내부적’ 사물이며 따라서 세계 ’안에’ 있는 것이지 세계 자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세계내부적 사물들은 이미 ’세계’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총체가 곧 세계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세계의 현상학적 개념은일반적 개념의 세계와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계는 마치 현존재처럼 실존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웹은 바로 현존재의 존재 양식을 지니는 세계의 일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웹은 바로 우리 눈 앞에 있으면서도 외재적인 사물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은 현존재의 실존적 공간성의 지평을 열어 놓는다. 하나의 세계-내적-존재로서 현존재는 세계를 배려하는데, 웹은 그것을 통해 우리가 세계를배려하는 하나의 방식이라 할수 있다. 하이데거는 ”사물을 배려하는 세계-내적-존재는 그것이 배려하는 세계 안으로 편입된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웹을 통해서 신문을 읽고 TV와 영화를 보며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얻는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바처럼,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세계-내적-존재로서의 현존재가 존재하는 방식이다”. 나는 웹을 통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나는 웹을 통해 친구를 만나며 내가 사는 동시대의 다른 사람들과 논쟁을 하기도 한다. 나는 웹을 통해 시민운동에 참여하기도 하며 프라이버시 권리를 옹호하기도 한다. 웹을 통해, 한 개인으로서의 나는 알프레드 슈츠가 말하는 바의 ’공동체적 개인’이 되며 ”공유된 삶을 사는 공동체”속에서 하나의 집합적 개인이 된다. 인터넷에서 나는 다른 현존재와 함께 있을 수 있다. 하이데거가 지적한 것처럼, ”함께있는다는 것”은 물리적 근접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의자는 책상과 ”함께 있을” 수없다. 비록 의자와 책상 사이에 아무런 공간이 없다 하더라도 의자가 책상을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존재론적으로 말해서, 의자와 책상은 동일한 세계 안에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의자와 책상은 동일한 세계에 ’거주’하거나 ’머무는 것’이기 아니기 때문이다. <김주환 연세대교수·신문방송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