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이대 통섭원은 ‘신지식 제작소’

2009 07/07   위클리경향 832호

다양한 전공 학자들 머리 맞대고 새로운 길 모색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소.
‘현대판 집현전을 만들겠다.’ 국내에 통섭바람을 몰고 온 최재천 교수가 서울대를 떠나 이화여대로 옮기면서 만든 ‘통섭원’은 말 그대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서 자유롭게 자신의 전문지식을 서로 교환하며 소통하는 공간이다. 통섭원의 개설 취지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한데 묶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대학에 이런 기관이 설치된 것은 국내에서 이화여대가 처음이고 세계의 다른 대학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섭 모색
통섭학자들은 지난 20세기가 학문의 분화시대였다면 21세기는 학문의 통합시대, 즉 갈래갈래 나뉜 학문을 엮어 한 차원 높은 지식으로 승화시키는 제2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주장한다. 통섭의 움직임은 학계와 산업계 곳곳에서 활발하지만 이화여대가 설립한 ‘통섭원’은 국내 통섭연구의 메카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이화여대 통섭원에서는 통섭마당과 통섭읽기 등을 통해 각계각층의 전문가를 초빙하여 통섭에 대한 이해와 지식 공유를 정기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최재천 교수는 “통섭원은 다양한 전공의 학자들이 지식을 함께 풀어놓고 학문간 경계를 허물려는 지식의 용광로”라며 “이들 학자가 머리를 맞대면 기업이 봉착한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지는 못하더라도 발상의 전환을 통해 답을 찾는 새로운 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섭원은 생물학 연구에 중심을 둔 ‘행동생태연구실’과 생명의 구조, 기능과 생태적 삶을 산업적으로 응용해 생물학과 사회의 연구를 꾀하는 ‘의생학연구센터’ 그리고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섭을 모색하는 ‘통섭원연구그룹’으로 거시적 접근을 모색하고 있다. 행동생태연구실에서는 까치와 자바긴팔원숭이의 행동을 연구해 자연의 진화 과정과 동물의 행동을 통해 인간과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있다. 의생학은 오늘날 기업이 봉착한 창의성에 대한 갈증과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분야로 활발한 연구활동을 수행 중이다.

이화여대 통섭원세미나포스터.
의생학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분야지만 이미 서구에서는 미래학문으로 가능성이 공인된 학문이다. 예를 들어 ‘찍찍이’로 불리는 벨크로(velcro)는 먼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동물의 털에 들러붙도록 진화한 식물의 씨를 그대로 모방해 만들어진 것이다. 태양전지는 식물의 잎을, 강철섬유는 거미줄을 인간이 흉내내어 만든 것이다. 의생학은 이처럼 자연을 배우고 흉내내서 인간의 삶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학문이다. 자연에는 인간이 발명하기 전에 생명체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이것들을 배우면 농업, 의학, 재료과학, 에너지, 컴퓨팅, 비즈니스 등 다양한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성능신소재를 개발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돌고래 피부나 나비 주둥이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 우리나라 휴대전화의 미래는 동물들의 의사소통 매커니즘을 이해하는 생물학자의 머릿속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의생학의 기본적인 연구 과제다.

통념을 뛰어넘는 신개념, 차원을 달리하는 상상력을 기업들에 제공하는 것이 통섭의 사고다. 기업체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연구원이 100명이 있어도 귀뚜라미 수컷이 암컷을 부르는 소리신호에 기초한 신개념의 휴대전화를 생각해내기는 어렵지만 생물학과 물리학, 경제학과 역사학, 인지심리학과 심신철학에서 얻은 지식을 함께 풀어놓고 연구한다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의생학연구센터에서는 학계·산업계와 공동연구가 활발하다.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최재붕 교수 연구팀과는 까치둥지의 타원구조가 둥지 내부의 보온성 유지와 구조적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적응된 것임을 입증하였고, 세스랑게(몸길이 2~3㎝ 정도 되는 소형 게로 암놈은 두 집게발이 매우 작으며 숫놈은 집게발이 크다)의 주거지인 원뿔형 구조물은 서식장소 내부로 해수 유입을 방지하여 내부 온도와 유동 속도의 급격한 변화를 방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CJ식품연구소와 공동으로 인류가 진화해온 시대의 대부분인 구석기시대의 음식문화, 불의 사용으로 인한 요리의 진화, 다윈의 성선택이론 등을 통해 통섭적 방법에서 식품 분야의 적용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과는 진화와 인간 행동, 매력의 진화심리학, 귀여운 얼굴의 동물생태학적 연구, 매력적인 얼굴로 보이는 평균성과 대칭성에 대해 공동연구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SK텔레콤과는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휴대전화의 미래 모습에 대해 열띤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대, 융합 관련 학과 및 전공 개설
서울대도 최근 범학문연구에 눈을 떴다. 서울대는 올해부터 ‘세계 수준의 대학’ 프로젝트의 하나로 학문 간 경계를 허물고 첨단 분야에 대한 융합연구를 위한 7개 융합 관련 학과 및 전공을 개설하고 신입생을 모집한다고 발표했다. 지속가능한 에너지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금속재료·무기재료 재료전공 등의 학문 경계를 허물고 ‘하이브리드’ 재료전공을 개설했으며 나노스케일과 마크로스케일의 경계를 넘어서는 ‘멀티스케일’ 기계설계전을 시도한다. ‘분자의학 및 바이오제약학과’는 기초과학 실험실의 연구 성과가 병실의 환자에게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임상의학과 기초과학을 중개하는 학문이다.

이외에도 신경과학으로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뇌인지과학, 생물학의 과제에 물리학적·화학적 접근을 해 창의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생물물리 및 화학생물학과, 새로운 생체모델기술을 시도하는 바이오모듈레이션 전공도 개설했다.

또 서울대는 본격적인 융합 연구를 수행하는 차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을 지난해 11월 개원하고 3개 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나노화학, 나노물리학 등 각종 나노응용과학을 통합하는 나노융합학과, 컨텐츠연구와 컴퓨터공학을 결합한 디지털정보융합학과가 있고, 지능형시스템융합학과에서는 인간과 기계를 연구해 인공지능제품을 개발한다.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범학문통합연구소 강남준 소장은 “향후 융합기술은 신성장 동력의 기반이 될 것”이라며 “과학기술의 융합뿐 아니라 인문·사회 등의 융합을 통해 포괄적이고 넓은 안목을 가진 인재를 육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주요 대학의 학문융합 추진 현황

◆고려대 : 2004년 교과과정 개편 통해 연계전공 실시. 학부생 이중전공 의무화
◆연세대 : 신촌캠퍼스에 융복합 프로그램 개설. 송도캠퍼스(2010년 개교 예정) 융복합 관련 연구소 개설 예정
◆이화여대 : 5월 학문융합 전담 스크랜튼 대학 설립(문화연구, 디지털인문학, 사회과학심화,생명과 과학기술 4개 분야). 통섭원 개설. 파주 새 캠퍼스 화두를 ‘학문 융합’으로 결정
◆서울대 : 2008년 경기 수원 광교신도시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내 범학문통합연구소 개설
(장기발전계획) 학문융합분야 참여 교수나 연구원 인사 고과 반영, 세계적 수준의 융합분야 연구소 설립 추진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