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문학 연구 방법론의 새로운 모색(1)
이용욱(전주대)
1. 들어가는 말
정보화사회로 급속히 사회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가장 아날로그적 예술일 수 있는 문학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기왕의 문학 위기설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문학이 서사예술로서 가지는 재현의 능력에 대한 회의도 아니고, 상상력의 고갈에 따른 갈증도 아니며, 책과 문단으로 상징되는 문학 제도의 위기도 아니다. 문학이 문학 그 이상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는데 그것을 해석하고 선도해나가야 할 연구방법론의 부재에 따른 학문적 공백과 무관심에서 파생된 문학이론의 정체에 대한 불안이다.
물론 문학이 문학 그 이상으로 확장되어가는 것을(예를 들어 하이퍼텍스트나 게임서사 등의 디지털 서사) 문자 서사가 아니기에 문학이 아니라고 단정 짓고, 문학 연구의 대상 텍스트로 아예 상정하지 않는다면 위에서 언급한 ‘문학위기설’은 실체가 없어진다. 영화가 문학에 많은 빚을 지고 탄생했지만 지금은 개별적인 서사 예술로 그 예술적 지위를 확고히 했고 문학연구와 영화연구가 독자적인 학문 영역을 형성하고 있음을 상기하면서 문학과 디지털 서사를 분리하여 이해한다면 ‘문학위기설’은 무력화된다. 문학이 아닌데 그것을 연구할 방법론이 부재하다고 위기라고 말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가 제기한 ‘문학위기설’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디지털 서사가 왜 문학의 연구영역으로 포함되어야 하는지가 먼저 설명되어야 한다.
소설이라는 장르의 탄생에는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사회 질서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바뀌었고, 생산 수단의 소유가 선천적으로 주어진 귀족 계급에서 후천적 노력에 의해 획득될 수 있는 부르조아 계급으로 사회 주체 세력이 대체되었다. 중세봉건질서가 무너지고 근대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 문학은 그 재현 대상과 형식을 바꾸게 된다. 소설은 새롭게 등장한 부르조아의 일상과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재현코자 문학이 선택한 서사 양식이다. 중세를 대표했던 ‘로망스’는 그 서사적 지위를 ‘소설’에게 내주면서 역사 속으로 퇴장한 것이다. 소설은 로망스가 보여주었던 낭만적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적 일상의 세계를 텍스트에 재현하는데 집중함으로써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문학 형식으로 우월적 지위를 지금까지 누려왔다.
이제 우리는 산업혁명과 버금갈만한 혹은 그 이상의 거대한 사회 변혁의 초입에 서있다. 정보화혁명이라 일컬어지는 이 새로운 물결은 산업혁명이 그러했듯이 우리 일상의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생산 수단으로서의 ‘자본’은 ‘정보’로 주도권을 넘겼고, ‘부르조아’는 그 사회적 지배력을 ‘네티즌’에게 양도했으며, 일상적 시민계급을 지시하던 ‘대중’이라는 용어는 ‘다중’으로 변경되었다. 이 같은 사회의 변화는 당연히 문학에게 새로운 서사 양식의 출현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문학이 이 요구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서사예술로서 지금까지 담당했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며, 자본주의의 함께 그 종말을 같이하게 될 것이다.
서사문학의 발전 단계는 ‘신화 - 서사시 - 로망스 - 소설’의 순으로 진행되어 왔다. 사회의 변화에 맞춰 문학은 항상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온 것이다. 이제 문학 연구자들은 소설 그 다음에 올 서사 양식의 변화에 대해 학문적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현존하는 문학의 위기는 이론의 위기이며, 서사는 디지털로 달려가는데 우리는 여전히 문자와 소설에 머물고 있음에 대한 반성적 비판이다.
우리는 아날로그식 문학의 디지털식 확장에 주목하어야 한다. 하이퍼텍스트나 게임서사는 문자와 문학적 상상력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문자와 문자가 선택적 임의적으로 연결되어 서사의 진행이 디지털화 되거나(하이퍼텍스트), 문자가 디지털 음영(音映)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게임서사). 이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문학 서사와는 분명 다르지만 그 <다름>이 ‘단절’이 아니라 ‘확장’이기에 문학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디지털 서사는 문학 장르 그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형식적 가능성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다. 정보화사회가 앞으로 탄생시킬 문학 장르가 하이퍼텍스트나 게임 서사가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새롭게 등장할 문학 양식을 이해하는데 디지털 서사는 분명 유효한 키워드이다. 하이퍼텍스트나 게임을 문학으로 보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보여지는 디지털 서사의 시학적 특징을 연구함으로써 앞으로 진행될 문학의 진화에 대한 학문적 단서를 확보하자는 것이다.
2. 서사물에서 서사양식으로
디지털 서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문학 연구 방법론의 전제가 서사물에 대한 연구에서 서사양식에 대한 연구로 옮겨져야 한다. 물론 이 같은 이 시도는 예전에도 있어왔다. R.스콜즈와 R.켈로그는 ������서사의 본질������(1966)에서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의 불안정성, 그리고 소설을 서사 양식의 최후로 보는 일반적 통념의 허구성을 환기시켰다. 소설은 태생적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요소들-이른바 ‘역사적’, ‘모방적’, ‘낭만적’, ‘교훈적’ 요소들-로 구성된 복합적인 장르이며, 따라서 언제든지 이 다양한 요소로 다시 분해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M.바흐친도 정의한 바 있듯이 소설은 “그 자신의 고유한 형식을 가지지 않은 형식", 다시 말해 그 장르상의 속성을 확정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움직이는’ 서사 양식인 셈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소설을 고대 설화나 중세 로망스와 같은 미개한 서사 양식에서 진화된 ‘최종적’ 산물로서가 아니라, 다만 다양한 서사 유형 중의 하나에 불과한 ‘과도기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1)
그러나 기왕의 문학 연구는 “문학은 문자예술이며, 서사 양식의 변화는 문자를 통한 스토리텔링 방식의 변화와 연동된다”는 테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다. 문학의 매체가 문자라는 사실은 여타 서사예술(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과 문학을 구분 짓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었지만 역으로 문자에 강박 당함으로써 문학 연구의 대상을 문자 텍스트로 한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스스로 연구의 대상과 범위를 좁힘으로써 매체로서의 문자의 영향력이 디지털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21세기에 문학 연구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정보화시대 문학 연구가 탄력성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자의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학 연구가 서사 연구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서사 연구의 핵심이 만들어진 이야기(서사물)가 아니라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서사 양식)에 있다면 그 결과물이 굳이 문자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미 국문학 연구의 한 경향으로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같은 문자 이외의 매체 서사에 대해 문학이론을 적용한 연구 방법론이 등장하였고, 인터넷 상에 디지털 문학 텍스트에 대한 관심이 사이버문학 이론으로 연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디지털 서사를 문학 연구 대상으로 삼는데 주저하고 있다. 디지털 문학 텍스트와 디지털 서사는 다르다. 디지털 문학 텍스트는 문자(비록 비트로 표시되지만)로 쓰인 것이지만 디지털 서사는 문자와 여타 매체와의 하이브리드(hybird)이다. 디지털 문학 텍스트는 완결성을 갖지만 디지털 서사는 결말이 끊임없이 차연된다. 디지털 문학 텍스트는 서사물이지만 디지털 서사는 서사 양식이다. 우리에게 디지털 서사가 낯설고 불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록 매체는 다르지만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텍스트는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자 했을 때 이미 완결된 서사물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문학 연구자들이 완결된 서사를 분석하는데 유용한 문학 연구 방법론으로 문학 이외의 서사물을 분석하고자 할 때 서사의 완결성은 문자가 아닌 텍스트를 대상으로 삼는데서 오는 심리적 불안감을 희석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디지털 서사는 문자만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며, 서사의 완결성은 환상에 불과하고 단지 그곳으로 가기 위한 부단한 과정만이 존재한다. 따라서 디지털 서사는 문학이 아닐 뿐 아니라 기존의 서사 이론으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기괴한 양식으로 우리에게 인식된다.
결국 이것을 극복하고 디지털 서사를 문학 연구 대상으로 삼기 위해서는 문학 연구 방법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구축되어야 한다. ������학문적 문학연구에 있어서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1969년도의 에세이에서2)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는 문학적 방법의 역사를 개관하고, 현대문학연구의 하나의 ‘혁명’이 박두해 있다는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토마스 쿤(Thomas S. Kuhn)의 저술로부터 ‘패러다임(paradigm)’과 ‘과학혁명’의 개념을 빌어다가 문학연구를 자연과학의 절차와 유사한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문학연구는 사실(事實)과 증거(證據)가 점차적으로 누적되어 연속되는 각 세대로 하여금 문학이란 사실상으로 무엇인가를 인식하게 해주거나 개개의 문학작품을 올바르게 이해하게 해주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문학연구의 발전은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발전 단계의 불연속성, 독자적인 출발점 등을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한 시대에 문학연구를 주도했던 패러다임은 문학연구가 제기하는 요구사항을 만족시켜줄 수 없게 되면 버려진다. 그리고 문학연구를 위하여 보다 적합하고, 낡은 모델과는 무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폐기된 접근법을 대체한다. 그러다가 현재를 위하여 과거의 문학작품을 설명해준다고 하는 그 기능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또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된다. 이 개개의 패러다임은 비평가가 문학에의 접근에 사용하는 공인된 방법론적 절차-학문사회 내에서의 ‘정상적normal’문학연구방법-를 한정할 뿐만 아니라 공인된 문학의 정전(正典)까지도 한정한다. 다른 말로 한다면 하나의 주어진 패러다임은 해석의 기법은 물론 해석의 대상까지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3)
근본적으로 과학적 지식의 발전이 혁명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과학의 진보가 누적적이라는 종래의 귀납주의적 과학관을 부정하는, 쿤의 패러다임이론에 근거한 야우스의 이 같은 진술은 디지털 서사를 문학 연구 대상으로 삼기 위해서 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지를 설명해 준다. 기존의 서사학으로는 디지털 서사를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디지털 서사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법론이 등장해야 한다. 이 새로운 방법론은 기존 서사학의 연장 선상도 아니며 축적된 지식의 결과도 아니다. 코페르니쿠스적인 인식의 전환만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다.
필자는 이 논문을 통해 디지털 서사를 포함할 수 있는 문학 연구가 가능하기 위해 몇 가지 인식의 전환 틀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文’의 개념을 확장시켜야 한다. 디지털 시대는 우리에게 문자를 단지 읽는 것이 아니라 들을 수도 있고(聞들을 문) 말을 건넬 수도 있고(問물을 문) 어루만질 수도 있게(捫어루만질 문) 해 주었다. 정보화사회가 만들어낸 새로운 일상인 인터넷 공간에서 문자는 더 이상 글이 아니다. 글과 말의 경계에 걸쳐 있으며 글을 쓰고 읽는 행위는 ‘말한다’ 혹은 ‘듣는다’라는 행위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문자는 텍스트에 고정된 기호가 아니라 누구나 손쉽게 만지고 수정하고 삭제할 수 있는 디지털 말뭉치이다.
한자어 文의 상형적 의미가 문신을 한 모양에서 유래되었고 “몸에 새기다”라는 뜻도 갖고 있음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아날로그 시대에 쓴다는 것은 문자를 종이에 새기는 일이었다. 새기면 다시는 고치기 어려웠고, 그렇기 때문에 문자의 권위는 강력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쓴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말은 고정적이지도 확정적이지도 않다. 유동적이며 상황 의존적이며 참여적이다. 문자가 구술의 속성을 가짐으로써 강력했던 권위는 도전받는다. 텍스트에 새길 수 없음으로 디지털 공간에서 文은 言로 흩뿌려진다. 문자와 디지털이 만났을 때 이미 서사의 완결은 환상이 돼 버린 것이다.4) 따라서 문학은 수천 년을 지켜왔던 文과의 계약을(텍스트에 새기겠다던) 파기하여야 한다.5) 이제 문학은 聞學일 수도, 問學일 수도, 捫學일 수도 있다. 이것이 문학에 대한 첫 번째 코페르니쿠스적 인식 전환이다. 文의 동음이의어로 입과 귀와 손이 각각 표시되어 있는 問, 聞, 捫은 상징적이다. 인터넷은 정보화사회가 우리에게 열어놓은 새로운 일상의 門이다. 이제 우리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두 번째, 서사의 소통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 변화가 있어야 한다. 디지털 서사는 상호 소통, 상호 작용의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근간으로 형성된다. 특히 실시간이라는 특징은 기존의 어떠한 서사예술도 보여주지 못했던 파격적인 소통 방식이다.
아날로그식 문학 소통 구조의 전형적인 모델은 로만 야콥슨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야콥슨은, 「언어학과 시학」이라는 논문에서 언어적 의사 소통의 도식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관련상황 (context)
메시지 (message)
발신자 -------------------------------- 수신자
(addresser) 접촉 (contact) (addressee)
약호체계 (code)
발신자는 수신자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메시지가 전달되기 위해서는 또한 그것이 지칭하는 관련 상황이 요구되고, 이것은 수신자가 이해 가능한 것이어야 하고 언어라는 형식을 취하거나 언어화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 다음은 발신자와 수신자(다른 말로 하면 메시지를 약호로 전달하는 자와 그 해독자)에게 완전하게 아니면 적어도 부분적으로 공통적인 약호 체계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발신자와 수신자간의 물리적 회로 및 심리적 연결이 되는 접촉으로서 양자가 의사 전달을 시작하여 이를 지속할 수 있는 요소이다.6)
그러나 디지털 서사에서 발신자(작가)와 수신자(독자)는 그 기능과 역할이 수시로 자리바꿈 할 수 있는 유동적인 지위이다. 야콥슨의 언어적 의사 소통의 도식은 전통적인 문자 중심의 단방향 소통구조를 보여주는 것으로, 쌍방향 소통구조를 지향하는 디지털 서사의 소통 구조은 야콥슨의 도식을 다음과 같이 고쳐 쓴다.
상호텍스트성
상황
발신자 <------------------------------> 수신자
실시간 쌍방향 접촉
다중 언어 약호 체계
위 도식에서 발신자와 수신자를 이어주는 쌍방향 화살표는 소통구조 전체가 쌍방향 소통구조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수신자가 이해 가능한 것이어야 하며 언어라는 형식을 취하거나 언어화될 수 있는 것인 야콥슨의 관련상황(context)은 그것이 언어이든 비언어이든 디지털 서사에서는 상호텍스트성으로 대체되어진다. 하이퍼 텍스트에서 문장과 문장의 연결은 작가가 독서의 동선을 제시하고 독자가 따라 읽어가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다양한 독서 동선을 제시하면 독자가 선택적 임의적으로 스스로 동선을 만들어 가면서 읽는 것이다. 게임 서사에서도 서사의 진행은 게이머가 처한 상황에 따라 수시로 동선이 바뀐다. 수신자가 발신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텍스트와 직접 소통함으로써 context는 수신자가 이해 가능한 것이 아니라 소통 가능한 intertextuality로 치환된다.
여기서의 상호텍스트성은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이야기하고 있는 상호텍스트성을 고쳐 쓴것이다. 크리스테바에게 상호텍스트성은 과거나 미래의 모든 담론들과 상호 의존하는 텍스트의 성질이다. 그녀는 어떠한 새로운 문학 텍스트들도 곧 텍스트들의 교차(intersection)라는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즉 그것들은 변형된 과거의 텍스트들을 흡수하였고, 또한 미래의 텍스트들에 의해 흡수되고 변형되리라는 것이다. 크리스테바는 그러나 현재 텍스트가 실시간으로 변형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텍스트는 확정적이고 고정인 것이며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기에 다른 완결된 과거 혹은 미래의 서사와 연결되고 상호 영향 관계를 형성할 수는 있지만 독자에 의해 변형될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위 도식에서의 상호텍스트성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 독자가 직접적으로 텍스트와 소통함으로써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텍스트의 변형(transformation)을 의미한다. ‘상호’는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가 아니라 텍스트와 독자 사이를 지시한다.
아날로그식 소통 구조에서 발신자는 수신자에게 메시지(message)를 전달했지만 디지털식 소통 구조에서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다. 야곱슨이 제시한 도식에서 메시지는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분명한 의도 혹은 의미였다면 디지털 서사에서는 발신자와 수신자, 혹은 수신자와 텍스트가 상호 소통을 통해 메시지를 고쳐 쓸 수 있음으로 해서 메시지는 유동적이거나 가변적인 것으로 변질된다. 따라서 디지털 서사에서 발신자가 수신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수신자가 메시지를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유도하는 특정한 상황이다.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이끌어내는 서사상황이 작가에 의해 제시되면 독자는 상호텍스트성을 통해 그것을 소통 가능한 메시지로 바꾼 후 단순히 읽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임의적인 해석을 추가해 가면서 스스로 서사를 진행해 나간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접촉(contact)이 실시간 쌍방향 접촉으로 환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발신자와 수신자에게 완전하게 아니면 적어도 부분적으로 공통적인 약호체계(code)는 디지털 서사에서는 다중 언어의 약호 체계로 대체될 것이다. 다중 언어의 약호 체계는 문자를 포함하는 멀티 랭귀지이며, 뒤에 다시 논의하겠지만 선험적인 것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형성된다. 인터넷 공간은 멀티미디어 공간이다. 그 안에서 소통되는 언어는 문자, 음악, 그림, 동영상 등 다양한 매체의 결합으로 표시되지만 실제로는 HTML이라는 단일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HTML은 비트(bit)라는 디지털 코드를 통합하고 통제하는 언어이다. 디지털 시대 문자는 스스로의 독창적인 표현방식을 포기하고 HTML(Hyper Text Makeup Language)의 규칙 안으로 종속된다. 문자 텍스트에서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을 2차원적(평면적)으로 연결된다. 선형적이며 인과적인 이 방식은 내용을 읽는데(reading) 유리하였다. 그러나 HTML은 단어와 문장의 연결을 3차원적(입체적)으로 수행한다. 다시 말해 단어나 문장에 필요한 경우 어떤 의미를 갖거나 어떤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정해 줌으로써 문장을 층층의 연속체가 아니라 겹겹의 비연속체로 바꿔 놓는 것이다. HTML로 작성된 문서는 읽기(reading)가 불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의 독서는 텍스트에 집중하지 못하고 훑어보기(scanning)를 통해 의미를 생산해 내야 하는데, 사용자는 긴 문서를 스크롤해 가며 큰 제목, 작은 제목, 리스트, 핫워드 등을 보면서 중간 중간의 하이퍼 링크를 따라 다닌다. 이 페이지는 가독성을 위한 최적의 행간, 단락 나눔, 소제목과 적당한 하이퍼링크로 사용자가 페이지의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7) 이 방식은 분명 전통적인 독서 방식과 다르다.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꼼꼼히 읽는 방식에서 이미 디자인된 표제어를 먼저 훑어보고 그중 관심이 가는 부분만을 선택적으로 찾아 읽는 방식은 독서 동선의 일관성과 인과성, 선조성을 해체시키고 있다. 훑어보기와 선택적 독서, 독서 동선의 자의성이 정보화시대 독서 패턴의 특징이라면 미래의 문학은 스토리와 플롯의 구성에 있어 아주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 책의 본문은 문자가 중심이었다. 다른 매체가 문자의 의미를 보충해 주거나 이해를 돕는 보조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문자만으로도 모든 의미는 충분히 전달될 수 있었다. 문자는 다른 매체와 경쟁할 필요가 없었고 책은 문자의 권위를 강조하고 재생산해내는 중요한 도구였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책의 본문에서 문자는 다른 여타 매체들과 경쟁해야 한다. 문자 역시 HTML 코드로 치환됨으로써 ‘읽기’라는 독창적인 방식을 포기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문학을 읽는 것으로만 한정짓는다면 다른 서사예술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는 어렵다. 동시에 ‘읽기’를 가장 오래된 관습으로 유지해 온 문학이 그것을 포기한다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디지털 서사는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 읽기와 쓰기를 동시에 진행하는 서사, 작가의 영역과 독자의 영역이 서로 남나드는 서사라는 디지털 서사의 소통 방식은 인류가 창조해낸 어떤 서사 방식보다도 진보적이며 혁명적이다.
야콥슨의 언어적 의사 소통의 도식을 원용하여 레이먼 셀던이 만들어낸 아래 도식 역시 작가를 발신자로 독자를 수신자로 놓고, 텍스트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는 아날로그식 소통 구조를 맥락화한 것이다. 이 도식만을 놓고 보면 작가는 텍스트를 통해 독자에게 의미를 전달하고, 독자는 텍스트를 통해 그 의미를 전달받을 뿐이다
문맥
작가 작품 독자
언어
그러나 디지털 서사는 실시간 쌍방향 소통구조를 통해 텍스트의 다성성을 지향하며, 의미 구축 작업의 주체로 작가와 독자 모두가 참여하는 체험형 문학이다. 따라서 셀던의 도식 역시 다음과 같이 고쳐 쓸 수 있다.
불확정적 문맥
초작가 참여적 텍스트 초독자
다중 언어
독자(초독자)는 작가에게 질문하거나 고쳐 쓸 것을 요구할 수 있으며, 작가(초작가) 또한 텍스트를 독자에게 열어놓음으로써 그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텍스트는 끊임없이 고쳐 써질 수 있는 여지로 인해 다성적인 텍스트가 되며, 의미의 확정은 끊임없이 연기된다. 오히려 의미는 초독자의 참여 상황과 독서 동선에 따라 그때그때 ‘새로 고침(refresh)’된다. 불확정적인 문맥이 우리에게 불안감을 준다면 그것은 ‘서사의 완결’이라는 문학의 환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확정성은 읽기와 쓰기를 동시에 진행하는 서사, 작가의 영역과 독자의 영역이 서로 남나드는 디지털 서사의 미학적 가치이자, 아날로그 환경(책)이 아닌 디지털 환경(인터넷)에서 문학이 문자가 여타 매체들과 경쟁하기 위해서 서사 구조에 양식화해야 할 중요한 맥락이다.
바흐친은 문학 텍스트의 의미가 마치 마을의 공유지처럼 주어진 사회 집단의 구성원들에 의해 서로 함께 공유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오직 의사 소통의 한 행위로서 개인과 개인, 주관적 의식과 주관적 의식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창출된다. 따라서 그의 경우 텍스트의 의미에는 최초의 의미도, 마지막 의미도 있을 수 없다. 이해될 수 있는 모든 것은 항상 의미라는 쇠사슬의 한 고리로서 다른 의미 사이에서 존재하며, 총체성 속에서의 의미만이 오직 유일하게 진실될 수 있다.8) 바흐친이 말하는 ‘공유하는 텍스트’야 말로 가장 이상적인 디지털 서사의 텍스트이나, 동시에 ‘총체성’을 거부하는 텍스트이다. 총체성이야말로 기존의 문학 관습이 가져다준 가장 견고한 환상에 불과하다. 다성적인 텍스트는 이미 총체성의 맥락 바깥에 위치해 있으며, 디지털 서사의 언어적 기반인 다중 언어는 총체성을 생래적으로 구현할 수 없는 언어이다. 이 시대의 총체성은 정전(또는 원본)과 함께 소멸되어버린 것이다.
야콥슨과 셀던의 도식을 고쳐봄으로써 이제 우리는 문학에 대한 두 번째 코페르니쿠스적 인식 전환을 도출해 낼 수 있다. 텍스트는 이제 더 이상 고정적이거나 확정적인 것이 아니며 독자의 참여에 의해 물리적 형태의 변형이 실시간으로 가능한 열려 있는 다중 언어의 절합(切合)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서사는 만들어진 결과물만 놓고 보면 결코 문학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서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여전히 문학적 서사 양식들이 존재한다. 서사물에서 서사양식으로 문학 연구의 대상이 옮겨가야 하는 것은 디지털 서사가 이어 쓰고 고쳐 쓰고 있는 문학의 서사 양식과 그 양상이 문학의 미래를 추론해 볼 수 있는 학문적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리얼리티에서 버추얼 리얼리티로
정보화사회는 우리에게 의사 체험의 공간인 가상 현실의 세계를 활짝 열어주었다. 현실 세계가 물질적인 공간이라면 가상 현실의 세계는 비물질적인 공간이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오직 ‘볼 수 있는 것’만을 보아 왔다. 그러나 가상현실(Virtial Reality)로 대표되는 정보화의 진전에 의해, 현실세계에서 보는 것과는 구별되는 또 하나의 방식(컴퓨터를 통해 본다고 하는)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인지와 이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9) 현실 공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컴퓨터를 통한 비현실 공간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모두 ‘보고 있다’라고 우리에게 인지된다 했을 때, 당연히 현실에서 ‘보는 것’과 비현실에서 ‘보는 것’의 거리만큼 ‘보여질 수 있는’ 상상의 세계 또한 분명히 달라진다. ‘이전부터 존재해 왔던 일상세계’와 ‘가상 현실로 구성되는 새로운 일상세계’가 공존하고 있는 지금, ‘보는 것’을 토대로 ‘보여질 수 있는’ 세계를 구현하고자 하는 문학의 상상력은 기왕의 일상세계와 새로운 일상세계가 어떤 공간적 특성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그 형질 변화가 수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가상 현실의 세계가 보편화되거나 현실 세계와 동등한 비중을 지니게 될 때, 문학적 리얼리티는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전혀 새로운 형질을 갖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리얼리티 논의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실재(재현대상)와 재현 사이의 지시 관계의 문제이다. 여기서 논점을 다시 두 가지로 나누어 보자. 실재 즉 재현 대상의 성격과 그것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그 하나라면, 재현가능성 혹은 재현의 자기창조성 문제가 다른 하나이다.
첫 번째 문제는 철저하게 현실 변화와 그에 따른 인식론의 문제를 닮아 있다. 특히 격변하는 요즘의 현실과 문학에서 대단히 문제적인 대목이다. 소박한 의미에서의 리얼리즘 시대에는 재현대상은 질서정연하게 실재하는 것으로 여겨졌기에 재현과 실재 사이의 지시관계는 아무 명료하였다. 그러나 가상 공간의 대두로 인한 버추얼 리얼리티의 대두는 리얼리즘 자체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재현 대상이 비물질적이며, 시공간의 거리가 무화되어 있을 때 과연 그것을 ‘실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정보화사회의 문학은 바로 이 재현의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 나가는냐에 따라 새로운 문학 패러다임을 생산해낼지, 아니면 기존의 패러다임에 의지하여 전통적인 리얼리티의 세계로 침잠할지가 결정난다.
두 번째 문제인 재현가능성, 혹은 재현의 자기창조성 역시 버추얼 리얼리티를 리얼리티로 볼 것인지, 아니면 감각에 의존하는 환상으로 판단할 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버추얼 리얼리티를 리얼리티로 상정하고 그 재현 가능성을 전제한다면 문학적 실천이 기왕의 리얼리티와는 다른 재현의 자기창조성을 획득할 것이지만, 감각에 의존하는 환상으로 판단한다면, 버추얼 리얼리티는 기왕의 환상소설이나 과학소설의 상상력과 별반 다를 바 없게 된다.10)
마이클 하임은 가상적인(Virtual)을 형상적으로는(주관과 독립해서 객관적으로) 인지되거나 허용되지는 않지만 본질적으로 또는 효력을 미치는 면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현실(Reality)을 실제적인 사건, 사물 또는 일의 상태라고 해석하고, 버추얼 리얼리티를 효력 면에서는 실제적이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은 사건이나 사물이라고 정의하였다.11) 언듯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개념과 유사한 듯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시뮬라크르가 후기산업사회가 대중에게 제공한 감각적 이미지라면, 버추얼 리얼리티는 정보화사회가 대중에게 선사한 공감각적 이미지이다. 제공한 사회 패러다임의 문제가 아니라 제공된 이미지의 문제이다. 시뮬라크르가 시각을 우선시하는 반면, 버추얼 리얼리티는 우리의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공감각적인 이미지이다. 마이클 하임도 이 점에 착안해 버추얼 리얼리티의 일곱 가지 특징 중의 ‘상호작용’과 ‘온몸몰입’을 강조하고 있다.12)
상호작용과 온몸몰입은 버추얼 리얼리티가 공감적인 이미지임을 드러내 준다. 우리는 가상 공간 안에서 실재하지 않는 무수한 이미지들과 상호 작용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구체화시키며, 그 과정은 가상과 현실의 빗금을 지우는 온몸몰입을 통해 이루어진다. 상호작용과 온몸몰입은 주체로 하여금 실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을 모호하게 해 준다. 당연히 주체가 바라보고 재현하고자 하는 대상도 지금 자신과 상호 작용을 하면서 주체로 하여금 몰입의 경험을 가져다주는 버추얼 리얼리티가 리얼리티로 부각되어진다. 의미의 실재 또한 상정할 수 없음으로 해서 추구해야할 새로운 문학적 질서가 보이지 않는 이 시대에 문학은 몸을 바꾸어야만 한다. 문학이 진정 새로운 시대에 걸 맞는 새로운 몸을 갖고 싶다면, 버추얼 리얼리티를 리얼리티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해야만 할 것이며 그 전범을 디지털 서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디지털 서사 중 온라인 게임 서사는 버추얼 리얼리티를 ‘놀이’의 형태로 재현하는 서사 양식이다. 온라인 게임이 제공하는 버추얼리얼리티는 ‘온몸몰입’을 통해 확실하게 구현된다. 문학 역시 ‘몰입’의 경험을 제공하지만 온라인 게임의 ‘온몸몰입’과는 다르다. 문학은 감각의 모든 채널이 언어로만 대체될 수 있을 뿐이지만, 버추얼 리얼리티는 그 채널이 육체와 직접 연결된다. 우리의 몸이 곧 우리의 인터페이스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과 온라인 게임을 동일 선상에 놓고 몰입이라는 의식적 수준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몰입의 경험 역시 문학과 버추얼 리얼리티는 그 층위가 다르다. 문학의 몰입은 단기간의 기억에 의존하며 점강(漸降)적이지만, 버추얼 리얼리티의 몰입은 지우지 않는 한 영속적으로 보존되는 컴퓨터의 기억에 의존하며 그 세계 안으로 뛰어들 때마다 항상 새로운 몰입을 경험할 수 있어 점층(漸層)적이다.
나관중의 ������삼국지������를 읽을 때 독자들이 경험하는 몰입은 바로 그 직전에 읽은 내용을 기억함으로써 가능하며, 그 기억은 책을 덮는 순간 사라진다. 또 동일한 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몰입의 강도는 현저하게 약해진다. 작중 화자가 보여주는 것이 항상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는 유저가 게임 도중에 그만두게 되면 다음에 게임을 할 때까지 컴퓨터가 대신 기억하고 있다가 고스란히 유저에게 복원시켜 준다. 동일한 게임을 다시 시작해도 누구를 플레이어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몰입은 매번 새로워진다. 소설이 버추얼 리얼리티만큼이나 강한 몰입 경험을 창조해내기 위해서는 텍스트의 형질 자체가 쌍방향의 멀티미디어 환경으로 변화하여야 하고, 인공 지능형의 하이퍼텍스트 기술이 요구되며 게임의 서사 양식을 차용해 와야 한다.
온라인 게임의 상상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에 의해 소멸된 로망스의 상상력과 유사하다. 선과 악의 대립, 영웅의 등장과 그에게 주어지는 임무, 합당한 보상 등 온라인 게임 서사의 원형적 상상력은 지극히 신화적이며 동시에 중세적이다.
로망스와 소설의 차이를 구분하면서 노드랍 프라이는 로망스가 “모든 문학의 형식 중에서 욕구 충족에 꿈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 하였다. 로망스는 지배계급에 속한 사람들의 이상이 투영됨으로써 덕(virtue) 있는 주인공들과 아름다운 주인공들이 그들의 이상을 표상하고 악인들이 그것을 방해한다. 로망스의 플롯에서 본질적인 요소는 편력(quest)이기 때문에 자연히 로망스는 연속적이고 과정적인 형식을 지닌다. 또한 이 편력은 성공적으로 끝마치게 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또한 등장인물의 성격이 너무 복잡하면 좋지 않기 때문에 로망스의 성격 묘사는 일반적으로 변증법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다.13) 프라이가 요약한 로망스의 특징은 온라인 게임 서사와 너무도 흡사하다. 온라인 게임 역시 단순하지만 전형적인 아바타(캐릭터)를 등장시켜 인간이 현실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욕망 충족의 서사와 편력의 서사를 보여준다. 한 가지 차이점은 로망스의 서사가 대리만족에 머문다면 온라인 게임의 서사는 직접 참여를 통해 몰입의 내러티브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로망스가 환상(fantasy)이었다면 온라인게임은 가상(virtual)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소설이 있다.
로망스가 소설과 비교하여 가장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성격 묘사의 구상에서이다. 로망스 작가가 살아 움직이는 인간보다는 오히려 인간 심리의 원형에 가까운 인물을 창조하는데 비해 소설가는 사회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물을 창조한다. 다시 말해 로망스 작가는 진공(vacuo)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의 개성을 취급하기 때문에 이상화된 인물을 창조할 수밖에 없고, 소설가는 사회적인 가면(persona)을 쓴 등장인물들의 인격을 다루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에 주목하여 아우얼바흐나 불튼 등은 로망스와 소설이 리얼리즘 정신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인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아우얼바흐는 그의 주저인 ������미메시스������에서 소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작품 대상으로서의 현실의 사실적 표현방법에 있다고 보았다. 요컨대 로망스의 뒤를 이어 소설이 등장하였다고 보는 이론들을 종합해보면, 근대사회로의 이행과 더불어 로망스적인 이상과 원형이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되면서 보다 합리적리고 실제적인 시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소설이 등장하였다는 것이다.14)
소설은 사회와 일상에 대한 부르조아 계급의 욕망을 경험 가능한 세계의 재현을 통해 충족시키고자 하였다. ‘경험 가능한’이라는 테제는 근대시민사회에 의해 붕괴된 중세봉건질서와 그것을 문학적으로 수호하고자 했던 로망스에 대한 안티테제의 성격이 강하다. 소설이 등장함으로써 환타지는 반리얼리티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미학적 가치를 상실했으며 리얼리즘이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였다. 그렇다면 왜 온라인 게임은 리얼리티가 아니라 버추얼 리얼리티를 미학적 품성으로 선택하였을까? 만약 그것이 ‘경험 가능한 세계의 구현’이라는 소설의 서사 양식에 대한 반발이나 자본주의사회의 일상성에 대한 싫증 때문이라면 소설은 로망스와 동일한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그 파국을 막기 위해 소설이 해야 할 일은 소설이 잊고 있었던 미학적 가치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버추얼 리얼리티를 통한 환상성으로의 복귀. 어쩌면 로망스가 문학의 미래를 여는 중요한 키워드일 지도 모른다.
4. 나오는 말
디지털 시대 문학 연구 방법론을 제안코자 하는 목적으로 쓰인 이 논문에서 필자는 ‘서사물에서 서사양식으로’, ‘리얼리티에서 버추얼 리얼리티로’라는 두 개의 테제를 제시하였다. 원래 기획은 ‘현실화에서 가상화로’와 ‘선험에서 체험으로’라는 두 개의 테제가 더 있었으나 이는 다음 작업의 과제로 넘기고자 한다.
아직 디지털 시대를 아우를 수 있는 문학이론이 정립돼지 않은 상황에서 필자의 주장은 체계화된 이론이라기보다는 시론에 가깝다. 서론에서도 문제 제기를 했듯이 현재 한국문학은 극심한 이론의 위기에 처해있다. 1990년대 중반 사이버문학론이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디지털 시대의 문학’에 대한 각론은 다양한 방식으로 쏟아져 나왔지만 ‘창작과의 괴리’, ‘지시대상의 불분명함’, ‘문학에 대한 완고한 신념’ 등의 이유로 문학 연구자들의 지지를 얻는데는 실패하였다. 사이버문학론의 이론적 실패는 디지털 시대 문학 연구의 방향이 단순히 현상에 대한 이해와 해석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준다. 앞으로 펼쳐질 문학 연구는 나무가 아니라 숲을 바라봐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디지털 시대 문학은 과연 유효한가?’라는 원론적인 문제 제기를 통한 문학 자체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디지털 서사는 아직 미개척지이다. 한국 현대문학이론에 이론적 자양분을 제공해 주었던 서구에서도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우리와 비슷한 수준에 놓여있다. 이론의 공백이 길어질수록 문학은 다른 서사예술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은 서구에서의 디지털 서사 연구가 하이퍼 텍스트나 웹아트 같은 ‘기술형 서사’를 주목하는 반면, 국내 디지털 서사 연구는 온라인 게임 서사로 대표되는 ‘체험형 서사’에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 온라인 게임 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을 보여주고 있고, 초고속 인터넷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게임이 일상화되고 있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디지털 서사를 문학 연구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디지털 서사를 연구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지 모른다.
인터넷은 정보화사회가 우리에게 열어놓은 새로운 門이다. 그것은 문학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인쇄술이라는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소설이 탄생할 수 있었듯이 디지털 기술 역시 새로운 문학 장르를 탄생시킬 것이다. 디지털 서사에 대한 연구는 분명 그 시기를 앞당기게 될 것이다.
1) 변지연, ‘소설에서 서사로’, ������21세기 문예이론������, 문학사상, 2005, pp.157-158.
2) Hans Robert Jauss,������Paradigmawechsel in der Literaturwissenschaft������, Linguistische Berichte, no.3. 1969, pp. 44-56.
3) 로버트 C. 홀럽 저, 최상규 역, ������수용이론������, 삼지원, 1985, pp.13-14.
4) 디지털 문학 텍스트가 서사의 완결성을 보여주는 것은 매체만 바뀌었을 뿐 기왕의 문학적 관습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시와 소설이 디지털 문학 텍스트의 유력한 장르가 되고 있음이 그 증거이다.
5) 문자를 새기는 행위는 개인적 활동이며 그 행위가 끝나는 순간 완성되지만 말을 하는 행위는 화자와 청자가 설정된 집단적 활동이며 화자와 청자 중 누군가가 더 이상 대화할 의사가 없을 때 끝이 난다. 완성이 미루어지는 것이다.
6) 로만 야콥슨 저, 신문수 편역, ������문학 속의 언어학������, 문학과지성사, 1989, pp.54-55.
7) 이만재 이상선 공저, ������멀티미디어교과서������, 안그래픽스, 2005. p.201.
8) 김욱동, ������대화적 상상력������, 문학과지성사, 1988, p.272.
9) ������정보교류의 사회학������, 한국정보문화센터, 1995, pp. 177-178. (재인용)
10) 우찬제, 「모든 것은 리얼하다」, ������포에티카������ 97년 봄호, pp.101-102.
11) 마이클 하임, 여명숙, ������가상현실의 철학적 이해������, 책세상, 1997, p.180.
12) 마이클 하임이 제시한 <버추얼 리얼리티>의 일곱 가지 개념은 시뮬라크르, 상호작용, 인공성, 몰입, 원격현전, 온몸몰입, 망으로 연결된 커뮤니케이션 등이다.
13) 노드랍 프라이 저, 임철규 역, ������비평의 해부������, 한길사, 1982, pp.260-271. (부분 요약)
14) 김외곤, ������한국현대소설탐구������, 도서출판 역락, 2002, (부분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