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사유’ 미래화두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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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도체공학 발자취
  • ④인간과 로봇, 몸의 철학
  • ⑤인간, 동물 그리고 진화

  • (좌로부터) 유인경 삼성종합기술원 유인경연구팀장·상무(재료공학)

    · 반도체 재료·설계 연구, 미래 반도체 메모리 연구
    · 강유전체 메모리 세계 첫 개발(1996), 산화물반도체 첫 개발(2004)

    성태용 건국대 교수(철학)
    · 사서삼경 연구, 가상현실과 동양철학 등 연구

    · 저서: <오늘에 풀어보는 동양사상> <주역과 21세기> 등

    인문의 창으로 본 과학의 풍경

    ①신화와 우주론
    ②유전자복제
    ③뇌는 마음을 얼마나 알까
    ④인간과 로봇, 몸의 철학
    ⑤인간, 동물 그리고 진화
    ⑥동양철학의 디지털문명답사
    ⑦수학과 미술의 물음, 아름다움이란
    ⑧우주개척시대, 지구 밖 인간의 존재
    ⑨나노과학과 미시역사의 눈
    ⑩세계와 입자의 근원

    퍼가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데 별로 퍼가려는 사람이 없는 것이 인문학의 고민이다. 반대로, 맘대로 퍼가는 사람이 있으면 큰일 나는데 무단으로 퍼가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걱정인 것이 첨단 과학기술 분야일 것이다. 경기 용인 삼성종합기술원의 엄한 출입통제에서 이를 실감하면서, ‘오늘은 최첨단 기기를 이용한 연구현장에서 최첨단 이론을 보고 듣게 되겠구나. 얼마나 이해하고 대담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유인경 박사는 만난 지 몇 분도 되지 않아 색다른 충격으로 나의 이런 긴장감을 날려버렸다. 그의 책상 위에서 내가 저자로 참여했던 책을 발견할 줄이야. 나의 글을 다 읽고 그 내용을 추출하여 반도체 이론을 설명하는 틀로 만들어서는, “동양철학의 이론을 반도체 이론 등과 이렇게 맞춰 보면 어떨까요?” 하고 내밀 때, 그것을 받아드는 나의 심정이 어땠을 것인가? 처음엔 ‘논문 몇 편을 써도 안 될 이야기를 이렇게 쉽게?’ 하는 경계와 반발의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과감한 시도가 전혀 다른 두 영역의 만남에 대화의 통로를 마련하려는 배려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는 고마운 마음으로 대담을 진행했다. 적어도 내게는 충격적 효과를 주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믿어지는 그 친절을 이 지면을 통해서도 베풀어 보자.

    보편·개별성 따른 이기론이
    반도체 원리에 담겨 평면구현
    ‘극과 극’ 소통 발견 줄잇지만
    디지털회로는 마음변화 못담고
    가상공간은 새 정신지평 못돼
    ‘과감한 접점찾기’ 공동숙제

    ● 리(理)는 보편성의 원리요, 기(氣)는 개별성의 원리라는 ‘이기론’을 반도체에 적용시켜보자. 유 박사는 금이나 규소·모래 같은 물질재료는 바로 기에 해당되고 전기전도 법칙은 리에 해당된다고 보았다. 나아가 그 물질재료와 그 위에 구현되는 법칙을 상대적으로 보는 것은 이기 이원론(二元論)에 가깝지만, 바로 그 물질성 위에서 법칙성이 구현된다고 하는 측면에서는 이와 기가 별개로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이기 일원론(一元論)의 관점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과학으로 본 인문’ 착각마저

    또한 “물은 어디에 있으나 물이지만 그 모습은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근 모습이 되고 모난 그릇에 담기면 모난 모습이 된다”는 율곡의 이통기국론(理通氣局論)은 “규소는 어디에 있으나 규소이지만 그 모습은 붕소와 섞이면 양전도체 모습이 되고 인과 섞이면 음전도체 모습이 된다”는 반도체에 대한 설명으로 이끌려졌다. 불교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함께 인정하는 원효의 “열면 무량무변한 뜻이 종(宗)이 되고 닫으면 두 문과 한 마음(二門一心)의 법이 요(要)가 된다”는 종요론(宗要論)은 “열면 음양이 통로로 연결되고 트랜지스터가 스위치의 요체가 된다”는 반도체 구조와 상응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런 설명을, 그것도 파워포인트를 이용한 자료화면을 통해 듣는 자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애초 이 기획의 의도와는 반대로 ‘과학기술의 창으로 본 동양철학’의 자리가 되고 말았다. 이기론이 좌표 평면을 통해 표현되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며 놀라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가 쓴 글이 저렇게 이해될 수 있나?’ 하는 물음이 마음 속에 오가는, 낯설지만 새로운 시도를 대하는 충격이 계속된 시간이었다.


    △  동양철학자 송태용 교수와 반도체공학자 유인경 상무가 경기 용인의 삼성종합기술원 안 유 상무의 연구실에서 만나 유 상무가 최근 개발한 산화물반도체의 전시물을 함께 살펴보며 동양철학과 디지털문명의 상호소통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용인/ 강창광 기자

    ● 물론 유 박사의 동양철학 원리에 대한 이해에 전적으로 찬동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하여 그 이해의 정확성을 따질 자리도 아니다. 관념 속에서 맴돌던 이야기가 가시적 평면 위에 명료하게 표현되는 점은 좋지만, 미묘한 철학적 사유를 너무 단순화하는 데서 오는 위험성 또한 지니고 있다. 디지털적 사고가 동양철학에 적용된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그런 명료한 표현 방식이 주는 장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한 측면이 있음도 분명하다.

    가상현실에 정신잣대를

    대담이 진행되면서 계속 확인되는 것은 인문학이나 과학기술이나 사고방식의 패턴에서는 공통분모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양자역학이나 첨단 물리학 영역의 새로운 이론 창출에는 구체적 실험보다도 창의적 직관이 가장 중요하며, 많은 경우에 동양철학의 이론들이 그러한 창의적 직관에 원천이 된다는 현대 물리학의 이야기들도 머리에 떠올랐다. 그렇다면 혹시 앞으로 동양적 사유방식이 과학기술의 발달을 촉진시키는 새로운 촉매로 각광을 받으며 등장할 수도 있을까?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동양철학의 심원한 이론들은 대체적으로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세계와 자신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하며, 무한한 정신적 자유의 영역으로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대 과학의 발전을 보면 동양철학의 이론들이 그대로 현실로 구현되는 것 같은 예를 보게 된다.

    ● 손톱만한 크기에 어마어마한 정보를 담아내는 반도체를 보면 “겨자씨 속에 수미산이 들어간다”는 불교의 문자가 무색하다.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넘나드는 많은 군상들은 “장자가 나비꿈을 꾼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장자꿈을 꾸고 있는것인가?”를 묻던 장자를 연상시킨다. 현란하게 펼쳐지는 인터넷 망은 불교의 화엄학(華嚴學)에서 말하는, 모든 존재가 다른 모든 존재와 연결되고 투영되기에 결국 한 존재 속에 모든 존재가 드러나는 무한중중연기(無限重重緣起)의 세계가 그대로 펼쳐진 듯하다.

    문제는 그러한 것들이 현대 문명 속에서는 물질화되고 기계화되어 오히려 인간을 소외시키고 정신을 피폐시키는 부작용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장자는 조그만 편리성을 추구하는 마음[機心]이 한번 일어나면 계속 그것을 추구하느라 영원히 자유를 잃어버린다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평소의 의문을 담아서 몇가지 질문을 던져 보았는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답이 돌아왔다. 주역은 컴퓨터의 원리와 흡사한 음양이라는 이분법적 사유를 근본으로 하면서도 음이 극에 달하면 양으로, 양이 극에 달하면 음으로 전환되는 아날로그적 측면까지 내포하고 있는데, 컴퓨터나 반도체에도 그러한 원리를 도입할 수 있는지? 핀잔을 각오하면서 문외한의 질문을 던졌더니 간단하게 “불가능하다”는 응답이 돌아왔다. 디지털의 논리회로에는 미묘한 마음(?)의 변화가 담길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또 디지털 문명의 강력한 특징인 가상 공간의 등장이 혹 인류의 새로운 정신적 지평을 열어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하여도 한마디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단정적인 답이 돌아왔다. 자신의 인격을 도야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서 매트릭스와 같은 비인격적인 존재를 의지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  [큰 이미지보기]



    ● 어떤 분야에 종사하면 사고방식도 그에 동화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마음과 인간관계의 영역은 디지털적인 방식으로 될 수 없다는 확신을 표명하는 유 박사를 보면서, 이렇게 쉽게 두 영역을 나눠보는 것이 혹 디지털적인 마인드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잠깐 스치고…. 뒤이어 가상공간이 이미 하나의 현실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면, 그 의미와 기능, 그리고 가치를 포괄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오히려 인문학 영역에서 발벗고 나서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랑나비 꿈을 통해 초탈의 세계를 엿본 장자와는 달리 가상현실의 중독성에 매몰되어 현실을 망각하는 사람들이 이미 대량 생산되고 있지 않은가? 유 박사같은 아직은 익지 않았지만 과감한 시도를 하는 사람이 과학기술 분야에 있듯이 인문학 분야에서도 좀더 과감하게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그것과의 접목을 위해 나서야 할 것이다.

    “디지털 문명과 인문학은 대립이나 우열관계가 아니라 조화와 상호보완의 관계”라는 ‘과학기술의 창으로 본 동양철학’ 브리핑의 마무리. 그것이 눈앞의 현실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통의 목표라는 데 공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성태용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