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 미학이란 무엇인가?


                                                                                                                                                                                   심혜련 (홍대 예술학과 겸임교수)


1. 왜 매체 미학이 필요한가?

1.1 매체 의존적 사회
현대 사회를 분석하는 많은 이론들과 개념들이 있다. 많은 이론가들은 각각의 학문 영역과 또 각각의 학문적 입장에 따라 현대 사회를 나름대로 구성한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각 학문 간의 간극과 학문적 입장에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모두가 부인할 수 없는 하나의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디지털 매체 시대의 사회이고, 우리는 점점 이 매체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일상적인 삶과 경험은 점점 더 매체 의존적으로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세계의 관계 맺음에 있어서 직접적 관계보다는 매체에 의해 매개된, 매체에 의해 변형된 경험을 주로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1.2 예술과 매체: 필연적 상관 관계
예술 또한 이런 상황에서 결코 예외적인 존재일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예술이 무언가를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 매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할 때, 예술은 매체의 발전 정도 그리고 새로운 매체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예술은 애초부터 매체, 도구 또는 기술과 밀접한 상관 관계를 맺어 왔다. 현재의 디지털 매체 예술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은 이를 전제하고 있다. 즉 도구 없이 예술 작품의 탄생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매체, 도구 기술을 기반으로 전혀 새로운 예술 형식이 등장하기도 한다(사진, 영화, 디지털 매체 예술 등등). 따라서 현재 예술은 디지털 매체와 밀접한 상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디지털 매체가 등장하고, 더 나아가 디지털 매체가 개인용 컴퓨터(PC)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대중화되면서 예술에 일어난 변화는 무엇인가? 단순한 표현 도구나 표현 수단의 전환만을 가져온 것인가? 물감과 붓의 자리에 단순히 컴퓨터와 카메라 등이 등장한 것을 의미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매체의 변화, 특히 디지털 매체의 등장은 예술의 영역에서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디지털 매체의 등장은 예술 작품 그 자체의 성격과 특성, 그리고 그것의 수용 방식을 바꾸어났기 때문이다.

1.3 새로운 형식의 예술 작품들의 등장과 새로운 예술의 필요성
전통적인 예술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예술 작품들이 등장하고 이것의 수용 방식 또한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예술을 둘러싼 새로운 지형도가 등장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새로운 지형도를 읽기 위한 예술 이론, 즉 미학도 역시 큰 내부적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것은 자명한 일이다. 분석 대상이 바뀌었다면, 그것을 읽고 해석하는 이론 또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미학 안에서의 시도인 매체 미학은 현대의 예술과 미적 상황을 설명하는데 매우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조형예술의 범위에서 살펴보면, 전통적인 예술 작품에서 이미지는 움직이지 않는 정적이고 완전한 형태로 존재했다. 그러나 매체 예술에서 이미지는 움직이는 이미지를 기본으로 한다. 따라서 정적인 이미지에 근거한 전통적 미학으로는 움직이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는 현재의 매체 예술을 설명할 수 없다(Peter Weibel). 따라서 새로운 미학이 요청된다.

2. 매체 미학에 대한 일반적 정의
: 매체 미학은 80년대 중반부터 독일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제기된 미학 분야에서의 새로운 조류다. 넓은 의미에서 매체 미학은 매체에 의한 매개(die Vermitttlung durch Medien)을 주제로 한다.

2.1 전통적 미학에 대한 반론 제기
지금까지 전통적인 미학은 아름다움에 관한 철학이거나 혹은 예술 작품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시도했었다. 미학이란 학문이 학문계에 모습을 드러낸 역사는 예술에 대한 담론의 역사가 플라톤 이래로 철학과 인류의 사상사와 함께 발전한 것과는 달리, 그다지 역사가 길지 않다. 미학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18세기 독일의 미학자 바움가르텐(Baumgarten)이 사용하면서부터였다. 바움가르텐이 미학을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문”이라고 규정하면서부터였다. 바움가르텐은 고대 그리스어인 ‘아이스테시스(aisthesis)’라는 단어를 기초로 해서 미학, 즉 ?sthetik이란 명칭을 만든 것이다. ‘아이스테시스’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감응(Empfindung)과 지각(Wahrnehmung)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우리말로 하면, 일종의 감성적 지각이자 또는 감응적 지각인 것이다.
바움가르텐이 ‘미학’이라는 명칭을 통해 시도하고자했던 것은 감성적 지각에 대한 특수성을 인식하고 이것을 설명하고자했기 보다는 오히려 독일 관념론 철학 체계에서 늘 이차적이고 부차적인 것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감성과 지각을 철학적 체계 내에서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성과 오성적인 측면에서 감성과 지각을 철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의도였던 것이다. ‘감성의 논리’를 추구하고자 함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움가르텐의 이러한 시도는 그의 논의에서도 또 그 후의 미학의 전개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았다. 즉 여전히 미학은 감성의 논리 그 자체보다는 이성의 논리와 또 이성의 논리에 종속된 감성의 논리를 주로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현대 미학에서는 이러한 미학의 전개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감성, 또는 감각의 논리에 대한 제반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미학사에서 이러한 경향을 가진 미학자들을 적극적으로 제 조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매체 미학 또한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러한 시도들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즉 감성적 지각 이론으로서의 미학 이론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합리성과 이성에 비해 그 동안 정당한 평가를 받아오지 못한 감성에 대한 재평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2.2 아이스테시스(감성적 지각)에 대한 이론으로서의 미학
매체 미학이란 시청각적 매체에 의한 지각 형식과 표현 형식을 이론적으로, 발전사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규정하려는 시도이다. 사물의 현상 형태와 그것의 지각 방식을 집중적으로 고찰하고자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매체 미학은 “현상의 미학(?sthetik des Erscheinens)”이다. 따라서 이러한 매체 미학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감성적 지각, 즉 아이스테시스이다. 다른 말로 하면, 매체 미학이란 ‘아이스테스’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다.
아이스테스를 중시하는 미학인 매체 미학은 무엇보다도 현대의 대부분의 경험이 매체에 의해 매개된 경험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따라서 매체 미학은 기계적 매체에 의해 매개된 지각 경험을 핵심 주제로 삼는다.
그렇다면 왜 매체 미학에서는 기존의 전통적인 다른 미학적 범주보다는 지각을 중시하면서 미학을 하나의 지각 이론으로 규정하는가? 아름다움이나 예술을 판단하는 많은 전통적인 범주들이 있다. 즉 아름다움, 진리, 선, 창조성 등등의 개념들이 있다. 매체 미학을 주창하는 이론가들은 이런 전통적인 미적 범주들이 현대의 매체 예술을 평가하는데 적합한 범주가 아니라고 한다. 매체 예술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에서도 이런 전통적인 범주들로만 예술 작품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전통적인 아름다움이 지금의 예술 작품에서 재현되는 것도 아니고, 고대의 평가처럼 아름다움이 선함과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예술이 진리의 담지체로 작용하는 것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미적 체험은 반드시 소위 예술 작품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도처에서 많은 사물들 속에서 미적 체험을 한다. ‘심미적(?sthetisch)’이란 형용사와 이것에 관한 추구는 하나의 유행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체 미학은 이런 현실적 상황 속에서 과연 예술 작품을 평가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를 묻는다. 이들은 새로운 미학적 탐구의 길을 바로 지각이라는 범주에서 찾는다.

2.3 매체 미학의 핵심 문제
지각이론으로서의 매체 미학에서 중심 문제로 설정한 것은 예술 작품 그 자체에 대한 분석, 또는 아름다움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예술 작품과 수용자간의 관계에서 ‘어떻게 수용자들이 매체의 전달 과정에서 예술 작품을 지각하는가?’하는 것이다. 즉 대상을 수용하는 주체의 측면에서 예술 작품에 접근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지각은 하나의 중요한 미적 범주로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매체 미학은 현재의 매체적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이미지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룬다.
매체의 발전사를 보면 그것은 이미지의 생산, 분배 그리고 수용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시각 예술의 경우에는 이러한 과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시각 예술에서 이미지의 생산, 분배 그리고 수용의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체 미학은 이미지 문제를 중심으로 이미지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하고자 시도한다고 볼 수 있다.

3. 매체 미학의 여러 방향들

3.1 매체 예술론
이러한 입장의 근본 전제는 매체 예술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바이벨, 뢰쳐 등등).
이러한 입장은 미학이 기본적으로 예술에 대한 논의라는 전제아래에서 매체 예술 일반을 매체 미학의 대상으로 삼는 경향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의 논의는 주로 비디오 아트에서 출발해서 현대의 디지털 매체 예술(주로 미술관을 중심으로 전시되고 상영되는)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의 매체 예술은 기술적 이미지를 전제로 하는 모든 예술을 의미한다. 즉 60년대 플럭서스 운동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해프닝, 설치 그리고 비디오 예술 등은 이미 매체 예술이었다. 이러한 매체 예술을 가능케했던 것들은 바로 기술적 이미지의 핵심인 사진과 영화의 등장이다. 사진과 영화야말로 매체 예술의 출발점이자 근본으로 작용한다.
좁은 의미에서 매체 예술이란 디지털 매체 시대에 디지털 매체로 인해 구현되는 예술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매체 예술(Media-Art, Medien-Kunst)은 디지털 매체 예술이다. 디지털 매체 예술의 특징은 그 매체가 가지고 있는 상호 작용성을 예술 작품에도 그대로 구현한다는 것이다. 즉 예술의 수용에 있어서 상호 작용성이 전제가 된다.

3.2 시각 대중 매체론
이 입장은 예술 개념 그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매체 미학은 시각 대중 매체 일반을 다루어야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이다(볼츠, 달리 등등). 여기에서는 디지털 매체에 의해 매개된 예술들과 디지털 매체의 기술적 발전이 잘 발휘되는 영상 일반을 그 대상으로 한다. 즉 예술이라고 명명된 것 외에도 영화, 컴퓨터 게임, 애니메이션 그리고 다양한 컴퓨터 그래픽과 인터페이스 디자인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입장에 속하는 이론가들이 무엇보다도 주목하는 것은 ‘문자 문화에서 시각 문화로의 전환’과 ‘대중 매체로서의 시각 매체’의 등장이다.
문자 문화에서 시각 문화로의 전환은 매체 미학의 매우 중요한 전제이다. 합리성이 중시되던 서구의 전통에서 보면, 전통적인 매체는 문자 중심의 매체였다. 물론 문자와 더불어 회화도 중요한 매체의 한 부분이었지만, 중심 매체는 문자였다. 주로 문자를 이용해서 지식과 정보 등이 전승되었다. 이러한 문자 문화의 전통은 본격적인 대중 매체의 등장으로 인해서 흔들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대중 매체는 문자 문화적 전통에서 벗어나 시각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기술 발전에 의존한 대중 매체의 발달로 인하여 사람들은 책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다른 다양한 시각 매체를 통해서 많은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게 되었고, 또 이전과는 다른 체험들이 가능해졌다.
새롭게 등장한 시각 매체의 본질적인 특성은 그것이 대중 매체라는데 있다. 예술의 재생산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예술은 자신만을 위한, 또는 특정 계층을 위한 울타리에서 벗어나 말 그대로 대중들에게 자신으로 향한 문을 열게 되었다. 예술의 영역에서 기술 재생산이 가져온 결정적인 변화는 바로 벤야민의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아우라의 몰락’이다. 이제 누구든지 예술에 다가서고자 한다면,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언제든지 접근 가능하고, 반복 가능하고, 재생 가능하고, 무조건적으로 복제가 가능한 대중 매체는 긍정적 의미에서 보면, 문화 일반과 예술 그 자체의 몰락이라는 부정적 폄하와는 달리 말 그대로 대중이 접근할 수 있는 대중 문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오늘을 살아하는 현대인에게 무엇을 읽었는가보다는 무엇을 보았는가가 주된 일상 대화의 대상으로 등장한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문학적이고 알파벳적인 것의 낡은 헤게모니”(볼츠)는 현대의 시각 매체와 복합 매체 문화에 의해서 지위가 흔들린다. 무너진 문자 문화의 헤게모니에서 새로운 시각 문화적 헤게모니가 생성된다.

3.3 문학이론
문학이야말로 근원적인 매체이고, 문학사는 매체사이다(파울슈티히 등등). 이 입장에 속하는 사람들은 문학과 커뮤니케이션 이론 등에 관심을 가지고 매체 미학을 전개해간다.

3.4 디자인이론
디지털 매체는 무엇보다도 현상과 그리고 이미지과 관련이 있다. 표면성에서 전개되는 이미지의 문제와 현상과 재현의 문제를 다룬다고 했을 때, 이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게 디지털 디자인이라고 보는 입장이 여기에 속한다. 따라서 이 입장에 속하는 이론가들은 디자인 이론적 측면에서 현상과 재현의 심미적 관계에 관한 문제를 다루어야한다고 주장한다(렉크, 볼츠 등등). 뿐만 아니라, 디지털 매체 예술은 근본적으로 디지털 디자인, 인터페이스 등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접근이 유효할 수 있다. 특히 매체 미학이 현상과 ‘추가된 현실’이라는 문제를 다룬다고 하면, 이 논의는 디자인의 문제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즉 심미적 재현 관계가 중심 문제이고 , 이 과정의 핵심에 있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라는 것이다(Hans Ulrich Reck와 Bolz 이론).
대표적 매체 미학자인 볼츠는 이와 관련해서 예술 개념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즉 예술의 종말을 이야기하면서, 예술 대신에 디자인이 미학 대신에 디자인 이론이 들어설 것을 주장한다.

4. 매체 미학의 주요 주제들
◎ 기술 이미지
◎ 매체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 작품의 특징: 원본성을 중심으로
◎ 이미지의 복제와 이미지 변형의 문제
◎ 가상 현실: 작품의 전시 공간이자 수용 공간
◎ 지각 방식: 몰입, 촉각성, 상호 작용 등등
◎ 매체 예술이 가져온 변화: 일상 생활의 영역과 예술의 영역에서

5. 매체 미학에서 논의되는 주요 사상가들: 벤야민, 아도르노, 하이데거, 맥루한, 안더스, 풀루서, 달리, 볼츠, 바이벨, 비릴리오, 보드리야르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