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소설은 예전에는 이우혁의 퇴마록이나 이영도의 드래곤라쟈 같은 작품이 거론, 대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소설들은 그 작품성을 나름 인정받아 현재 본 글쓴이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책으로 읽혀져 많이 알려져있는 작품들이다.

  요즘 우리 세대에서는 '인터넷소설'이란 단어를 들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는 바로 '귀여니'라는 인물이다.  귀여니는 인터넷소설로 요즘 젊은이들 세대에서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소설만으로 명문대에 특차입학한 것만 봐도 가히 부러움의 대상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과연 그녀의 소설이 소설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  더불어 인터넷소설이란 것을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까?

  위의 두 대답에는 본 글쓴이는 단연코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본인은 귀여니 作의 영화인 '늑대의 유혹'을 꽤나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난다.  그러나 여느 신세대들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라는 것 뿐이다.  영화를 본 후에 책을 읽어보았다.  그제야 알았다.  영화는 영화감독에 의해 새롭게 재창조되는 것이란 것을. 책으로 읽어본 귀여니 소설은 그저 단순하기 짝이 없는 글일 뿐이었다.

  모든 작가들이 읽는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쓰는 '묘사'란 것은 모두 이모티콘이 대변해주었고, 작품의 신선성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가 보기엔 그저 인터넷의 자유로 인해 '퇴고'라는 개념으로 모르고 그저 무작정 키보드를 연타한 졸작으로 보일 뿐이었다.

여기서 인터넷소설을 소설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이란 모든 사용자에게 자유를 부여하며 사용이 가능한 가상의 공간이다.  등단이란 것을 해야만 작가라는 이름을 부여받을 수 있는 현실과는 달리 인터넷에선 누구나 자유롭게 작가의 이름을 달고 글을 쓴다.

  귀여니는 그저 선착순 달리기에서 1등을 한 행운의 인물일 뿐이지, 현실세계에서 작가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창작의 고뇌와 퇴고의 고통을 모르고 태어난, 운좋게 작품을 과대평가받은 인물이 과연 작가라 불릴 수 있을까?  창작의 고뇌, 그리고 퇴고..... 이 두 가지 개념을 진정으로 안고 끝없이 작품에 매달리며 이를 끝까지 완성한 인물이야 말로 진정으로 작가라고 불릴 수 있지 않을까?

  귀여니소설로 인해 많은 이들이 '이거 뭐야?  이 정돈 나도 쓸 수 있겠다!'라며 사이버문학의 세계에 도전하였다.  여기서 인터넷소설을 소설이라 부를 수 없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아직까지 귀여니 이후로 새로운 인터넷소설의 성공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귀여니는 그저 운이 좋은 케이스일 뿐이다.  이미 일어난 행운이 다른 이에게도 똑같이 일어난다고는 보장 못 한다.

그리고 그 중 몇명은 창작의 고뇌와 퇴고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키보드에서 손을 뗀다.  그 중 본 글쓴이도 속해있다는 사실은 부끄럽지만 말해두고 싶다.  본인도 판타지와 무협을 좋아하여 일찍이 질풍노도의 시기에 무작정 키보드를 연타하여 글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점차 창작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고 퇴고가 느껴지지 않는 본인의 작품에 나 자신이 실망하여 결국 키보드에서 손을 떼버린 케이스이다.

  이후부터 느꼈다.  인터넷소설은 소설이 아니란 것을.  창작의 고뇌와 퇴고의 고통의 개념에 '자유'라는 말은 무색하다.  하지만 인터넷은 그 두 개념에 자유란 것을 심어버린다.  이런 가상공간에서 과연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맨 처음에 언급했던 이우혁 같은 이들도 자신을 인터넷소설작가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데, 과연 그들보다 젊은 귀여니는 무슨생각을 하며 창작을 하고 있을까?  키보드를 놓아버린 나로써는 그녀의 심정을 알지 못 할 뿐이다.

  결론은 이렇다.  창작의 고뇌와 퇴고의 개념에서 멋대로 자유를 주는 인터넷 공간에서 쓰는 글은 '게시글'일 뿐이지, 소설이 아니다.  게시글의 조회수에 희열을 느끼는 우물안 개구리 작가가 되기 보다는, 작자가 죽은 이후에도 베스트셀러로써 이름을 떨치며 그 후손들까지도 저작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써내야만 진실로 작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